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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담긴 죽음의 여러 모습, 모순들 『죽음을 그리다』

『죽음을 그리다』 이연식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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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는 인류의 숙명을 의식하며, 소박하게는 죽음을 견디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예술에 드러난 죽음의 여러 모습과 그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죽음의 여러 모순을 이야기하려 한다. _‘작가의 말’ 중에서 (2021.11.19)

이연식 작가

『죽음을 그리다』는 ‘괴물’, ‘멜랑콜리’, ‘위작’ 등 독특한 주제를 내세운 미술 책을 여러 권 써 온 미술사가 이연식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죽음’을 전면에 내세웠다. 예술의 뒷모습을 파고드는 작가라는 수식답게 그가 펼치는 이야기는 늘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죽음을 다루었다고 해서 시종일관 엄숙하고 진지할 것만 같았는데 곳곳에 놓인 유머와 재기발랄한 질문에 금방 무장 해제되고 만다. 그가 펼친 죽음 담론은 무엇이 다를까, 왜 이 책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걸까?



제목을 들었을 때,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실내 공간이고, 어둡고, 조용한... 흔히 이야기하는 임종 장면이었어요.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이미지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죽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죽음을 그리다』는 어떤 책인가요?

언젠가 죽음과 죽음의 과정을 낱낱이 밝히는 책을 써 보고 싶다는 바람을 오래전부터 가졌습니다. 그 결과물이 『죽음을 그리다』가 된 셈이죠. 그사이 아버지의 죽음을 비롯하여 가깝고 먼 죽음들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죽음에 얽힌 인간사는 온갖 사연으로 가득하죠. 그래서 하나의 이미지 혹은 정형성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왜 ‘이미지’로 살펴보냐고 묻는다면 이미지는 죽어 사라지는 것, 죽어 없어져 보이지 않게 되는 존재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속에서 죽음은 물질적이고 구체적이 되거든요. 정리하면 『죽음을 그리다』는 ‘이미지’라는 구체적인 물질로 죽음의 온갖 모습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죽음의 얼굴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보여 주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형벌, 살인, 자살 등 이미 온갖 방법의 죽음을 인식하고 익히 알고 있음에도 왜 그런 것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지 의아해질 정도였습니다.

예전에는 신문 사회면이나 저녁 뉴스에서 별의별 사건들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요즘도 인터넷 뉴스와 각종 SNS에는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죽음의 사례들이 넘쳐 납니다. 우리들은 관성적으로 그런 뉴스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곤 하죠. 그런데도 정작 죽음을 자기 일처럼 여기지는 않는다고 할까요? 인간이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라는 사실을 철저히 부인하려 합니다. 그 저류에는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죽음의 과정을 가능한 한 여러 국면으로 나누어 따져 보려고 했습니다. 성향과 기질의 차이겠지만 어떤 주제든 냉정하고 차분하고 똑바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는 대개 죽음을 두루뭉수리하게 다루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처럼 여러 국면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파헤치다 보면 끝내 복잡함과 모순이 도드라지게 됩니다.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것들을 의식하게 하려는 방식입니다.

듣다 보니 집필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거라는 느낌이 오는데요. 늘 새로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지치지 않고 책을 쓰시는 원동력도 궁금합니다.

열 권 넘는 책을 출간했지만 한 번도 쉬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모든 작가들이 격하게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죽음을 그리다』 역시 기획에서 출간까지, 4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절반은 아무리 써도 지지부진하고, 이리저리 생각하거나 그 생각을 좇는 시간이었고요. 원래 방향을 잡는 기간이 가장 길고 지난한 법이죠. 

죽음에 대한 책을 써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덥석 수락했지만 어떻게 써 나가야 할지 끙끙댔던 남모를 고통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초고를 마치고서는 두세 번의 수정 과정이 있었습니다. 처음과 비교했을 때 목차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공을 들여 완성도를 높이려 했습니다. 이것이 최선인지, 다르게 생각할 수 없는지 등은 마지막까지 고심하고 또 고심합니다. 

영화감독 신연식과 가수 하림의 추천사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 분 모두 문학적인 면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보입니다.

두 분 모두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감성의 세계를 독자적으로 탐구하여 대중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여 주는 뛰어난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또 두 분이 써 주신 글은 영화와 음악 못지않게 좋은 글이라 크게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제 나름대로는 출판에서 그런 작업을 시도하고자 고군분투 중입니다. 두 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작가님의 저술에는 늘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죽음을 그리다』에도 성경, 영화, 책, 드라마, 애니메이션까지 나오는데요. 미술과 이야기는 어떤 관계인 걸까요? 

이야기에 기대면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수월하거든요. 모두 예술의 영역 안에 있는 것들이라 연관성도 크고요. 어떻게 하면 미술과 예술의 풍부하고도 흥미로운 모습을 전달할까 고민하는 것이 제 일이라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끌어오는 게 습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자리에도 이야기는 그곳을 빛나게 해 준다고 여깁니다. 물론 적절하고 좋은 이야기여야만 하겠죠. 

『죽음을 그리다』에 나오는 여러 예술 작품 가운데 이 작품은 꼭 독자들이 살펴 주었으면 좋겠다, 혹은 이 이야기는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생각하시는 게 있을까요?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애착 가는 작품 혹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식 중 누가 제일 예쁘냐 같은 질문인데요. 여기 실린 작품들은 나름대로 고심하여 고르고 골랐고, 다들 뜻깊은 작품들입니다. 반드시 골라야 한다면… 3장에서 소개한 「필리프 포의 묘석」과 6장에서 소개한 니콜로 델라르카의 「그리스도를 애도함」을 새삼 되새김질해 보고 싶네요. 이들 작품은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형식적으로 완숙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기이한 날것의 에너지를 뿜어내거든요. 작품의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성격, 충분히 정돈되지 않은 형식이라는 게 죽음을 맞으며 인간 집단이 내보이게 되는 태도와 통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이 낯선 만큼 낯선 작품들을 처음 마주할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죽음을 그리다』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래도 독자 여러분께 ‘이게 새로운 내용입니다, 이런 면들이 있습니다’라며 말을 건네는 입장이었지만,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다릅니다. 누구나 언젠가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어 우리 모두 죽음 앞에서는 같은 처지니까요. 독자들과 같은 줄에 서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또 깊이 고민하고 고심한 내용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진심이 어느 정도라도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연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미술사가로 예술에 대한 저술, 번역,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불안의 미술관』, 『뒷모습』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쉽게 읽는 서양미술사』, 『레 미제라블 106장면』,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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