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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의 공포 때문에 글 쓰는 재미를 잃어버린다면

<아이가 글쓰기를 싫어한다면>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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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학년은 맞춤법을 완벽하게 떼는 시기가 아니다. 맞춤법을 비롯해 우리말, 우리글의 특징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리고 맞춤법의 공포보다는 글을 쓰는 재미를 느껴야 할 때다. (2021.11.02)

언스플래쉬

우리말, 우리글에 관한 퀴즈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글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쓰던 말도 유래나 의미를 알면 ‘그게 그 말이었구나’ 하면서 내가 제대로 알고 쓰던 말이 아니구나 싶다. 또 습관처럼 하던 말도 바르게 써보라고 하면 뭔가 어색하고, 맞게 쓴 건지 확신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한글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처음 배우기는 참 쉬운데 배우면 배울수록 한글이 가진 의미와 깊이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게 된다.

1학년이 되면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한다. 읽기를 시작하고 낱말만 쓸 때는 한글이 참 재미있다. 조금 배웠는데 읽고 쓸 줄 아는 글자가 엄청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장을 쓰면서부터 갑자기 어려워진다. 가령 ‘맛있다’를 쓰고 싶은데 소리 나는 대로 쓰자니 ‘마시따’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런 모양의 글자는 그림책에서도 본 적이 없어서 막상 쓰지를 못한다.

이런 증상은 스스로 글자를 잘 쓴다고 여기는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알 것 같기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자’ 하고 넘어가지를 못한다. 어느 낱말에서 탁 막히면 그대로 글쓰기를 멈춰버린다. 뭘 쓰려고 했는지 다 까먹고 가만히 앉아서 ‘그 글자를 어떻게 쓰더라?’만 계속 생각한다.

1학년 아이들은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가는 편이라 중간에 멈추었다가 쓰려고 하면 내용을 금세 잊어버리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되기 쉽다. 특히 맞춤법에 맞게 쓰기를 강요받은 아이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글 한 편에 한두 개의 글자만 막히는 게 아니다. 소리와 표기가 다른 낱말이 어디 한두 개인가. 소리글자라 하지만 연음법칙, 두음법칙, 구개음화와 같은 한글 맞춤법은 6개의 장, 15개의 절, 57개의 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띄어쓰기와 문장부호에 관한 부록도 따로 있다. 소리 나는 대로 쓰면 안 되는 이유나 별도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이만큼이나 많다.

초등학교 국어 교육과정에서는 6년 동안 꾸준히 한글의 법칙에 대해서 배운다. 가장 자주 쓰는 법칙부터 배우지만, 그야말로 꾸준히 배우고 여러 번 연습해야 올바르게 쓰는 것이 가능하다. 어른들도 제대로 알고 쓰기보다는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모양새로 ‘이렇게 쓰면 맞겠지?’ 하고 쓰는 말들이 많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띄어쓰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고 한 번만 되물어도 바로 꼬리가 내려갈 정도로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많은 어른들이 1학년 때 맞춤법을 가장 강조한다. 오히려 고학년이 되어서 틀리면 한숨 한 번 내쉬는 정도, 그래서 되겠냐는 잔소리 정도에 그친다. 게다가 어른이 맞춤법을 틀리면 눈이 안 보여서 그렇다, 한글이 너무 어렵다, 뜻만 통하면 되지 하면서 아주 넓은 아량을 보인다. 1, 2학년이 이 사실을 알면 주먹을 불끈 쥘 일이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우고 소리를 듣고 적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한글 맞춤법을 계속 지적하고 가르치려 들면 글쓰기는 한 문장도 나아가기가 어렵다. 교과서 지문에서 골라놓은 받아쓰기 급수표처럼 미리 알려준 문장만 바르게 쓸 줄 알게 된다. 하지만 자기가 들은 소리, 자기의 생각을 쓰는 게 아니라 받아쓰기 급수표에 있는 문장만 바르게 쓴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글자는 맞춤법에 맞게 쓸지 몰라도 글쓰기와는 멀어진다. 받아쓰기로 배운 낱말로는 글쓰기를 충분히 할 수 없다. 글자를 틀리게 쓰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자기 생각을, 자기가 겪은 일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이 쓸 수 있는 낱말로만 간단하게 적고 만다. 맞춤법은 좀 틀려도 되니까 떠오르는 대로, 머리에서 생각나는 소리대로 적어도 된다는 것을 꼭 알려줘야 한다.

또한 맞춤법으로 계속 지적당한 아이는 자기가 모르는 글자를 발견해도 바로바로 묻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또 혼날까봐서다. 평상시에 우리가 주고받는 말은 아나운서가 말하듯이 소리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글자로 쓰려고 하면 ‘정확한 소리가 뭐였지?’ 하고 다시 떠올리게 된다. 말소리가 어눌하고 앞뒤 맥락 없이 말하는 아이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도 그렇게 들리기 때문에 ‘글자로 어떻게 적어야 하나’ 하고 망설인다. 게다가 알고 있는 낱말도 충분하지 않아서 뭐라고 써야 올바른 표현인지 모를 때가 많다. 보통 ‘한글을 다 뗐다’고 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맞춤법, 띄어쓰기, 어휘력은 꾸준히 말하고 듣고 쓰고 읽으면서 차츰 알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학년 때의 단순하지만 진리 같은 표현들은 점점 사라진다. 더 어려운 낱말들로, 더 정확한 표현으로 글은 바뀌겠지만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어린아이의 신선한 표현은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

1, 2학년은 맞춤법을 완벽하게 떼는 시기가 아니다. 맞춤법을 비롯해 우리말, 우리글의 특징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리고 맞춤법의 공포보다는 글을 쓰는 재미를 느껴야 할 때다.



여덟 살 글쓰기
여덟 살 글쓰기
오은경 저
이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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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은경(초등학교 교사)

경북 울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25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글쓰기 공책에 쓴 이야기를 혼자만 보기 아까워 문집을 만들고 책으로 묶어주는데, 그럼 부모님들이 글을 쓴 아이들보다 책을 만들어준 나를 더 고맙게 생각해주어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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