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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이제재 시인, 쏟아지는 빛 속에서 너를 만난다면

『글라스드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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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쓰면서 아름다움의 효과에서 도움을 받고 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었어요. 아름다움을 느낄 때, 살아가고 말하고 쓰고 싶어지는구나. 사실 나는 ‘우리는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021.10.29)


『글라스드 아이즈』는 반사되는 빛과 평행세계가 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다. 시집을 펼치면 표지의 홀로그램처럼 환한 빛과 마주치고,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끊임없이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고 있는 소년도 소녀도 아닌 ‘이제재’. 자신을 열어젖히는 이 솔직한 시집에서 독자는 기꺼이 낯선 존재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게 된다.

이제재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독자를 만나는 신예다. 39편의 시를 통해, 시인은 ‘나’로 존재하는 법을 모색한다. 현실에서 자신의 몸과 불화하던 화자는 시에서만큼은 다른 차원의 평행세계를 살며 다른 몸을 꿈꾼다. 그리고 이 분투가 도달하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다. 쏟아지는 빛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시는 나의 또 다른 몸

‘글라스드 아이즈’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정해졌나요?

시집의 제목은 밴드 라디오헤드의 노래 ‘글라스 아이즈’에서 가져왔어요. 어느 날, 이 곡을 듣는데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난해한데도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예술은 이런 것을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제 시집의 반사되는 빛과 거울이 있는 세계관을 드러내면서도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제목으로 정했죠.

이번 시집으로 처음 독자를 만나게 됐어요. 시를 언제부터 썼는지 궁금했어요.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 처음 시를 썼어요. 어릴 때는 말이 없는 아이였거든요. 말 대신 몸짓과 미소로 의사를 표현할 정도로요. 시를 쓰면서부터 언어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과거의 나는 어땠지, 나는 뭘 좋아하지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조금씩 알아갔어요. 시를 쓸 때마다 ‘너는 참 할 말이 많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시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군요.

시를 쓰면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 시를 쓸 때만 해도 세상에는 저 같은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비슷한 정체성을 쓰는 사람도 없었고, 보인다 해도 혐오의 시선으로 왜곡되거나 불행한 이야기만 많았죠. 난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은데, 내게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결국, 시를 쓰면 나로 있을 수 있겠더라고요.

 “시는 나의 또 다른 몸”이라고도 했어요.

시를 통해 다르게 존재하고 싶었어요. 늘 제 몸과 불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몸의 이미지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계속 거울을 봤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몸으로 사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평행세계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지닌 나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시를 안 쓰려고 했던 시간도 있었다고요.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시가 제 모든 것이 되어 있었어요. 친구를 만나도 시 이야기만 하고,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면서 시를 쓰고. 제 삶보다 시가 너무 커져 버려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실제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어떤 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다시 시를 쓰겠다고 결심하니까 낫는 거예요. 그때 내 몸이 시와 연결되어 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등단 제도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을 때는 한 가지 길만 보였어요. 한동안 등단을 해야만 시인으로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죠. 나는 계속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살 수 있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시집을 혼자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간만 하면 되는 시점에 아침달에 투고하게 됐어요. 등단 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환경은 파괴적인 것 같아요. 작품의 창작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저도 아침달에 시집을 투고하면서, 「성장기」라는 시를 쓸 수 있었거든요.



뒤로 뻗은 팔로 나아가기

첫 시 「배영」으로 시집을 시작한 것이 좋았어요. 시집 전체는 ‘나’로 살아가려는 분투인데, 여는 시에서는 시쓰기의 자유와 생에 대한 감각이 느껴졌어요.

질문을 받고 ‘뒤로 뻗은 팔로도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이라는 구절을 다시 떠올려 봤어요. 다른 말로 하면, ‘과거를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아닐까요.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들은 과거 자체이지만, 처음의 「배영」과 마지막의 에세이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기’가 된 것 같아요.

「성장기」는 굉장히 솔직한 시예요. ‘굴 소년’을 통해, 유년기에 겪은 정체성의 혼란이 표현되는데요. 쓰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열어젖히기 때문에, 읽는 사람도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성장기」는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시예요. 7년 전에 「중성인간」을 쓸 때부터 정체성에 대해 쓰려고 시도해왔거든요. 계속 실패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용기를 냈죠. 무엇보다 힘이 된 건, 보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어요. 내가 보일 때,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구나. 편견의 말로 오염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솔직하게 쓰고 나니 보편성도 생기더라고요. 성장기는 누구나 겪으니까요.

시집 전체에서 반사되는 빛, 거울, 유리의 이미지와 운동이 중요하게 등장해요. 

처음에 제 안에 들어온 건 ‘거울’이었어요. 거울에 비친 제 몸의 이미지가 익숙해지지 않았거든요. 내가 나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보니, 문득 저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에도 그런 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실제로도 많이 죽고, 살아 있어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너무 두려워해요. 왜 우리는 이렇게 죽고 싶어 할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묻다 보니, ‘반사되는 빛’이 영향력을 지닌 매개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빛이 ‘나’에게서 ‘우리’로 퍼져 나가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굴의 아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작시가 인상적이었어요. 딱딱한 껍데기 속에서 뚝뚝 흐르고 축축한 굴.

원래 저는 굴을 싫어했어요.(웃음) 뭔가 기괴하기도 하고, 여자가 생리를 할 때 ‘굴이 떨어진다’는표현도 있어서, 제게는 꺼려지는 이미지였거든요. 어느 날 정말 싫어하는 것을 떠올려보다가 ‘나는 몸을 싫어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굴과 몸을 엮어보게 됐어요. 내가 굴을 좋아할 수 있다면, 나도 내 몸을 좋아할 수 있을까 하다가 시작한 시들이에요. 어릴 때 읽었던 팀 버튼 감독의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영향을 받기도 했어요.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굴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로 인해 불화가 생기고 아버지가 굴 소년을 잡아먹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저도 모르게 굉장히 큰 두려움을 느끼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굴 이미지를 오래 붙잡고 있다 보니, 다른 시를 쓰고 있는데도 자꾸 침투하더라고요. 그렇게 굴 연작시가 된 거예요.

「아게르, 까마귀 마을」 같은 시들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을 받았어요. 화자는 수신자가 없는 편지를 쓰거나 가상인물의 이름을 부르죠.

시집을 다 쓰고 난 뒤의 생각인데요. 나 혼자만 있으면 매번 똑같은 ‘나’이겠지만, 인물이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 변화가 생기고 가능성이 열리는 것 같아요. ‘나’의 또 다른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기도 한 가상인물이 떠오른 거죠. 결국, 진짜 말을 건네고 싶었던 대상은 ‘우리’ 같아요. ‘나’도 1인칭이지만, ‘우리’도 1인칭이잖아요. 구체적인 얼굴을 모르더라도 ‘나’와 느슨하게 연결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나’에게서 ‘우리’로 이어지는 빛

시 「글라스드 아이즈」에서 ‘우리’는 ‘아름다움’과 만나요. ‘우리는 아름다움에 속지 않으려 했는데 우리를 더럽다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데도 아름다움이 있었어’(14쪽)

원래 의식하며 살았던 말은 아름답다의 반댓말인 ‘더럽다’였어요. 그 말이 제 주변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왔고 한동안 아름다움을 굉장히 경계했어요. 한때 ‘No Respect for Beauty’라는 제목의 시를 쓸 정도로요. 그런데 시집을 쓰는 후반부에 아름다움의 효과에서 도움을 받고 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었어요. 아름다움을 느낄 때, 살아가고 말하고 쓰고 싶어지는구나. 사실 나는 ‘우리는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요즘 저는 그 힘을 제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집의 마지막 에세이 「반사되는 빛」에서는 시를 쓰는 ‘이제재’의 일상이 나오죠. 어떤 상태에서 시를 쓰는지 궁금했어요.

시를 쓰려고 앉으면 어마어마하게 큰 불안이 찾아와요. 그 불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명상을 하면서 몸을 이완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씁니다. 평소에는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데요. 책은 굉장히 느리게 읽는 편이에요.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서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집중해서 읽기도 하고, 독서의 순간에 찾아오는 내 몸의 반응을 즐기기도 해요. 영상을 좋아해서, 이래경 감독의 뮤직비디오를 자주 보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영상을 매개로 시적인 것을 체험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싶어요.

곧 네덜란드 ‘틸뷔르흐’로 떠날 예정이라고요.

틸뷔르흐는 고흐가 처음 그림을 배웠던 곳이기도 하고, 직물로 유명한 도시인데요. 이번 겨울에도 몇 달간 머무를 계획이에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요. 언뜻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이제재

1993년 3월 4일생. 생년월일이 같은 아이를 두 번 만난 적 있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글라스드 아이즈』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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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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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스드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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