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병에 담긴 ‘오늘’을 마시면,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상회』 한라경·김유진 저자 인터뷰
'나는 언제 다시 살고 싶을까?'를 놓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삶을 느끼게 한다는 걸 깨달았죠. (2021.10.25)
어스름한 새벽, 어느 곳보다도 일찍 오늘 상회가 문을 엽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들러 ‘오늘’을 마셔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도 오늘 상회를 찾아왔습니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어린아이였을 때, 조금 자라 소녀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매일 오늘 상회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상회로 향하던 할머니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오늘을 느낄 수 있을까요?
한라경 작가님, 김유진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늘 상회』가 발간과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너무 축하드립니다! 작가님들이 보시기에 『오늘 상회』의 어떤 점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한라경 : 표지에 그려진 신비로운 상회의 모습과 제목을 보고, 『오늘 상회』의 문을 열어 보신 게 아닐까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오늘을 ‘사야’ 한다는 설정도 재미있게 보신 거 같아요. 많은 분이 읽어 주시고 서평도 정성스럽게 적어 주셨더라고요. 서평을 통해 독자님들의 ‘오늘’을 저도 잘 읽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유진 : 우선 한라경 작가님이 좋은 글을 써 주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로 따뜻하고 편안하게 잘 풀어 주셨거든요. 그리고 그림책 독자층이 꽤 확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 분들에게도 저희 책이 많이 와 닿았던 거 같아요. 실제로 ‘어른들도 보기에 좋은 그림책’이라는 평을 많이 접했고요.
『오늘 상회』의 서정적이고도 독특한 분위기가 참 매력적입니다. 특히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오늘’을 ‘상회’라는 공간과 연결한 점도 인상 깊었고요. 어떻게 이런 설정을 떠올리게 되셨나요? 더구나 그림에서는 낯선 설정의 공간과 인물을 구상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라경 :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실제로 ‘오늘 상회’라는 간판을 봤어요. 순간 그 가게가 정말 오늘을 팔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집에 오는 내내 ‘오늘은 어떻게 팔지’, ‘누구에게 팔지’를 고민했어요. 어느새 제가 『오늘 상회』의 주인처럼 생각하게 된 거죠. 그렇게 오늘을 파는 방식을 정한 다음, 다시 오늘을 사는 사람이 되어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살지’, ‘오늘을 받아 어떤 인생을 살지’를 고민하며 이야기를 꾸렸습니다.
김유진 : 『오늘 상회』의 주인은 사람들에게 ‘오늘’이란 시간을 건네줍니다. 이러한 설정에서 주인이 신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고민했습니다. 독자들이 그에 대해 어떤 것도 알 수 없기에 더 자유로이 상상할 수 있도록요. 가게의 모습도 어느 곳에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우리 가까이에는 없는 모습을 그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상회 외관은 영국 하트필드(Hatfield)에 위치한 ‘푸 코너(Pooh Corner)’를 모델로 했습니다. 15년 전에 여행 갔다가 본 곳인데, 관광지도 아닌 시골 마을에 홀로 아기 곰 푸를 기념하며 서 있던 조그만 가게가 문득 떠올랐어요. 거기에 덧붙여 주변 배경은 제가 즐겨 산책하는 인천 대공원을 참고하여 그렸습니다. 무척 아름다운 곳이에요. 참, 그리고 주인의 곁을 지키는 노란 고양이는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저희 고양이를 모델로 했습니다. 오늘 상회와 같은 다정한 곳에 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어요. 써 놓고 보니 이래저래 제가 좋아하고 감명 받았던 것들을 혼합해서 구상한 것 같네요.
『오늘 상회』는 두 분이서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작품인데, 서로의 원고를 처음 보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한라경 : 처음에 김유진 작가님의 스케치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는 오늘 상회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있었던 정겹고 낡은 공간 정도로 상상했는데, 작가님은 제가 원했던 공간에 신비로움까지 더해서 그려 주셨더라고요. 작가님의 스케치를 보는 순간, ‘아, 오늘 상회는 이런 공간이구나!’, ‘오늘 병은 이런 모양이구나!’ 하고 저도 작가님의 그림을 따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세계를 구성해 주신 김유진 작가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김유진 : 저도 중년의 나이다 보니, 식구들을 먼저 보내고 난 후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상상만으로도 무섭고 아득하죠. 누구나 들 수 있는 그런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글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을 하며 원고를 읽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상회』를 작업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셨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혹은 기억에 남는 문구나 장면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한라경 : 후반부에 할머니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다시 삶을 택하는 부분을 놓고 많이 고민했어요. 극적인 사건을 넣어 다시 삶을 택하게 하는 설정도 해 보았죠. 그런데 그런 극적인 사건은 우리 삶에 자주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래서 ‘나는 언제 다시 살고 싶을까?’를 놓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 모여 삶을 느끼게 한다는 걸 깨달았죠. 책에는 사소한 온도, 사소한 소리, 사소한 친절을 만나고 다시 오늘 상회에 가는 할머니를 이야기했어요.
김유진 : 할머니가 다시 오늘 상회로 향하는 장면이요. ‘젊음의 시간도 지나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도 떠나고,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나를 살아가게 해 주는 건 무얼까?’라는 고민을 하며 그렸습니다. 그럴 때도 변함없이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게끔 표현하고 싶었어요. 마음에 햇볕이 비치고, 눈에는 꽃이 들어오고,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는 그런 곳으로요.
『오늘 상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작은 병에 담긴 ‘오늘’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작가님들께서는 요즘 어떤 ‘오늘’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시나요?
한라경 : 오늘도 강아지 ‘그래’가 저를 깨우면서 하루를 시작했어요. 일어나면 조금 여유롭게, 긴장하지 않고, 천천히 오늘을 느끼자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분주해지고, 막막해지기도 해요. 그럴 때면 ‘오늘은 오늘 뿐’이라는 걸 생각하며 다시 숨을 고릅니다.
김유진 : 창문으로 뒷산을 보며 날씨를 가늠하는 것으로 오늘을 시작해요. 화창한 날이면 긴 산책을 가거든요. 요즘 제 일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작업도 하고, 살림도 하고, 게으름도 부리는 매일을 보내고 있어요. 특별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단조로운 일과를 보내는 것 같아요.
평소 그림책 작업하시면서 소재나 구성에 있어 영감을 받은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라경 :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나한테 온다고 생각해요. ‘오늘 상회’라는 가게 간판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요. 하지만 늘 이야기는 절반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붙잡고 뒷이야기를 붙이는 건 작가의 몫이죠. 『오늘 상회』도 계속 구성이 바뀌었고, 정말 여러 버전이 있었어요. 지금은 열 번째 버전의 『오늘 상회』가 되겠네요. 함께 고민해 주신 편집자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김유진 :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산책을 하며 만나는 작은 꽃들이나 동물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생활에 활력이 얻거든요. 저의 작품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오늘 상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한라경 : 오늘을 보낸 모든 존재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것 같아요. 저도 요즘 자기 전에 남편과 강아지, 그리고 저를 칭찬하는 시간을 가져요. 독자님들도 오늘을 보낸 모든 존재를 쓰다듬어 주면 어떨까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들, 작지만 소중한 존재들을 발견하는 ‘오늘’을 보내시길 바라요.
김유진 : 『오늘 상회』를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소중한 오늘을 응원하겠습니다!
*한라경 국문학과 아동복지학을 공부하고, 어린이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아빠가 아플 때』, 『엄마는 겨울에 뭐하고 놀았어?』, 『머리카락 선물』 등이 있다. “강아지 ‘그래’가 제 손을 햝으면 저의 오늘이 시작됩니다. 이 책은 아침마다 저를 오늘로 이끄는 작은 존재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의 오늘을 채운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김유진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비단 공장의 비밀』, 『소방관 고양이 초이』가 있으며 그린 책으로는 『바람숲 도서관』, 『고양이네 박물관』, 『3월이 방학인 학교』가 있다. “한 점 한 점, 오늘이라는 붓질이 모여 우리 삶의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작업했습니다. 글과 그림을 통해 받은 즐거움을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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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경> 글/<김유진> 그림11,700원(10% + 5%)
반짝이는 작은 병에 담긴 ‘오늘’을 마시면 하루가 시작됩니다. 오늘 상회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과 누군가의 이야기 어스름한 새벽, 그 어느 곳보다 일찍 오늘 상회가 문을 열었습니다. 주인은 수많은 병을 하나하나 반짝이게 닦고 병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합니다. 사라진 이름도 있고 오늘 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