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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귀신들은 왜 그리도 한이 많았을까 - 『여성, 귀신이 되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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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의 『여성, 귀신이 되다』는 이와 같은 한국 기담 속 주목받지 않았던 부분을 입체적으로 돌아보는 책이다. (2021.10.05)


최근 우리집 아이들은 <신비아파트>라는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다. TV를 볼 기회가 생기면 망설임 없이 외치곤 한다. “신비아파트 틀어주세요!”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썩 탐탁지 않은데, 아무리 만화라지만 귀신이 잔뜩 나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둘째의 경우 그런 밤이면 어김없이 무서운 꿈을 꾸면서 잠을 설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엄마를 아랑곳 않고 아이들은 열광한다. 땀이 난 두 손을 꼭 움켜쥔 채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무서워서 고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집중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한데,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이 방영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끝까지 보곤 했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혼자 화장실도 못 가고, 악몽을 꿀 것을 알면서도. 뻐꾸기가 우는 야심한 밤, 인적이 드문 산골에 하얀 소복을 입고 입에 피를 묻히고 나타난 귀신을 보고 소름이 돋았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식은땀이 날만큼 무서운 장면이었지만 거기에는 쉽게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짜릿한 마력이 있었다.

그때는 무서운 이야기가 왜 그렇게 재미있게 느껴졌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니 공포라는 감각 그 자체도 자극적이었지만, 어쩌면 기담이나 괴담 속에 우리 사회의 뒤틀리고 일그러진 민낯이 숨어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평상시라면 접하기 어려운 사회의 맨얼굴이나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을 무서운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엿본 것이다. 이다혜 작가는 저서인 『아무튼, 스릴러』에서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고 했는데, 기담이나 괴담 역시 해당 사회의 어두운 욕망과 깊이 내재되어 있는 공포를 표출한다는 점에서 풍토병의 일종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그래서일까. 자라면서 친구들과 농담 삼아 주고받았던 각국 공포영화나 기담의 특징이 지금은 꽤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당시에는 어째서 한국 기담에는 하얀 소복에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유독 자주 등장하는지,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는 서양 괴담이나 이유도 없이 무차별 공격을 일삼는 일본 귀신과 다르게 왜 우리나라 귀신들은 한결같이 청승맞고 한스러운지에 대해 우스갯소리 삼아 이야기하곤 했는데, 실은 여기에도 각국의 어떤 고유한 지점이 녹아있는 것이다.

한국 기담에 한 맺힌 귀신들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 기본적으로 ‘한’을 유발하기 쉬운 환경이었으며, 그로 인해 한 맺힌 귀신 이야기가 그만큼 많이 생겨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귀신들은 왜 그리도 한이 많았던 것일까?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분했을까? 그리고 그런 귀신들은 왜 대부분 여성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남성 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제껏 무심코 넘겨왔던 사실들이 돌연 기묘한 공통점으로 느껴진다.



전혜진의 『여성, 귀신이 되다』는 이와 같은 한국 기담 속 주목받지 않았던 부분을 입체적으로 돌아보는 책이다. 아랑설화에서 출발하여 장화 홍련을 거쳐 무당을 비롯한 여러 토속신앙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우리가 자주 듣고 접했던 여러 기담 및 괴담, 각종 미신 속 ‘여성’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왜 여자들은 귀신이 되었는지, 귀신이 되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사회는 그런 귀신 이야기를 어떻게 소비하고 활용했는지에 관하여.

그러니까 귀신 이야기로 말할 것 같으면 당대에 하소연하거나 토로할 대상이 달리 없었던 이들의 응어리와 울분이 담긴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사회 시스템을 통한 공식적인 대응이 불가능할 때 약자의 울음소리는 자주 뒷길로 우회하고, 그러다보면 ‘도시전설’ 속으로 녹아드는 경우도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법적’으로 성차별이 거의 없어진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성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여성을 남성의 밑으로 법에 명시했던 과거에 여성의 현실은 과연 어떠했을 것인가. 부모로부터의 학대, 형제나 배우자의 폭력, 그 밖에 국가나 사회가 가하는 억압들.

지금도 그렇지만 무려 '은장도'와 '열녀비'가 존재하던 과거에는 여성이 설사 폭력을 당했다 할지라도 쉽사리 입밖으로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성폭력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설령 증명이 된다 한들 은장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혹은 소리를 죽이고 죽은 듯 살기를 암암리에 종용받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죽어서 귀신으로 나타나는 것밖에 더 있었겠는가.

책은 다양한 사료를 체계적으로 제시하며 약자들에게 가해졌던 당대의 억압을 면밀하게 짚어내는데, 읽으며 새롭게 주목하게 된 사실 중에는 한국 기담 속 귀신들이 지나치게 깔끔하게 사라졌다는 부분이 있다. 그러고보니 대다수의 귀신이 ‘원한’만 해결해주면 마치 간밤에 내린 서리가 아침 햇살에 녹아 사라지듯 그대로 사라져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한을 풀어준 대상을 과거에 급제시키거나, 나라의 부름을 받도록 만들거나, 명성을 널리 퍼트리는 등 은혜까지 갚으면서.

이런 차원에서 보면 여성들은 죽어서까지 가부장제에 의해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죽은 뒤에도 여성이 겪은 억압과 고통을 고발하는 주체가 되기보다는, 사대부의 유능함을 한껏 부각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 것이다. 이는 기담이 당대의 어두운 뒷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대부나 주류 기득권층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을 만큼 그들의 욕망에도 부합했음을 보여준다. 실은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해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불행히도 오늘날 여성의 현실은 책에서 소개되는 기담 속 배경이 되는 시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들은 성폭력 사건에서 진위를 의심받고, 애인이나 배우자, 혹은 스토커 등에게 맞거나 살해 당하며, 임신·출산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취급당하는 경우 또한 잦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책장을 덮으며 문득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100년 후에는 우리 사회에 어떤 ‘기담’이 돌고 있을지에 대하여.



여성, 귀신이 되다
여성, 귀신이 되다
전혜진 저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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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승혜(작가)

작가. 에세이『다정한 무관심』,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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