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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9월 우수상 - 엄마노래 폴더를 추가하시겠습니까

내 인생의 노래 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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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주부, 아내, 며느리로만 가득 채워졌던 하루에서 내 시간을 조금 덜어내고, 나를 위한 노래를 더하니 6년 넘게 방치해 두었던 내가, 내 마음이 비로소 보인다. (2021.09.06)

언스플래쉬

"당신 진짜 불쌍하다. 요리하면서 레이디버그(아이가 좋아하는 만화)가 웬 말이야" 

퇴근해 들어오던 남편 눈에는 땀 뻘뻘 흘리며 불 앞에 서서 만화 주제곡을 웅얼거리는 내가 꽤나 불쌍해 보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제법 긴 시간 손가락 품을 들여서 마음에 드는 노래를 찾고, 듣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 노동의 순간에도 아이 맞춤형 노래를 틀어 둔 내가 퍽 가여웠을 테다. 

"그러게 말이야. 엄마도 엄마 노래 좀 듣자! 맨날 레이디 버그, 엑스가리온, 애니멀포스가 뭐니 정말." 내 편 들어주는 사람 있으니 옳다쿠나 일단 뱉었다. 그럼 이제 엄마 노래 들으란다. 어라? 생각나는 노래가 없다. 엄마 노래는 뭐지? 아까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젠 정말 내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 취향의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없는 사람이었던가? 노래 어플을 뒤적거린다. 검색 내역에는 온통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워 온 노래, 아이가 듣고 싶은 만화 주제곡들 뿐이다. '나는 엄마니까'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노래들이면 충분하다 여겨온 결과였다.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 봤다.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도 있지만, 국악 연주곡들이 좋아 하루 종일, 며칠을 반복해 듣기도 했던 임신 기간. 우연히 알게 된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그룹에 반해 찾고 찾아 모든 노래를 듣고, 콘서트까지 쫓아다녔던 20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내외 뉴에이지 앨범은 모두 담겨 있었던 MP3가 보물이었던 고등학생 시절, 그 보다 전에는 라디오 시간 맞춰 좋아하는 가수 노래들 테이프에 녹음하고 악보 사서 피아노 연주를 하던 중학생 때까지.  나도 분명 나만의 취향이 있는, 내 인생의 노래 한 곡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는 달랐다. 시작은 내 아이를 위한 클래식, IQ니 EQ니 더 나아가 SQ니 하는 것들에 도움이 되는 음악 등이었다. 그다음 수순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아이들을 키운 뽀통령과 아기 상어, 기타 등등의 만화 주제곡들. 아이 취향에 따라 곡들도 달라졌을 뿐 내 핸드폰의 플레이리스트에 나를 위한 노래는 없었다. 내 노래를 들을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거다. 다섯 살까지는 가정보육을 했으니 일 년에 고작 몇 번,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제한된 시간을 노래 고르는 데 쓰기는 아까워 운전할 때는 라디오, 걸을 때는 어플의 추천 곡 리스트면 충분했다. 드디어 아이가 기관 생활을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1년 반 정도 공부를 하면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공부할 때 듣는 노래', '집중력 높이는 브금' 등의 너무나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만들어 둔 리스트만 번갈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는 게 까마득히 기억 저 편으로 잊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6년은. 

 '엄마 노래'라는 걸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 동요, 아이 영어노래, 디즈니 주제곡 영어/한글, 영어 듣기, 자장가뿐이던 플레이리스트에 폴더 하나를 추가했다. 심플하게 폴더명은 내 이름. 나를 위한 '엄마 노래'들을 찬찬히 채우기 시작했다. 좋아했었던 가수들의 노래를 다시 들어본다. 여전히 좋은 노래들도 있지만,  20대 때 좋아했던 노래가 40대를 목전에 둔 아줌마 마음을 똑같이 울리지는 못하기도 한다. 남편의 플레이리스트를 귀담아들어 본다.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하면 바로 제목을 알려달라고 해 검색하고 추가한다. 어플의 도움도 받아본다. 추천곡들을 마구잡이로 듣다 끌리는 곡이 있으면 추가. 상가나 식당, 전시회에서 나오는 음악 중에도 귀에 들어오는 노래는 검색 후 또 추가. 그렇게 찬찬히 나만의 취향을 담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중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며 내 노래들을 듣는다. 내 이름으로 만든 폴더에 담긴 노래들은 나를 위한 시간을 더 풍부하게 채워준다. 하늘공원 갈대밭 사이로, 응봉산 개나리꽃 길 가운데로, 구름이 예뻐 뛰어 나가 한강 다리 위로 카메라를 들고 걷는다. 계절, 공기, 그때의 분위기와 딱 맞는 노래를 내 폴더에서 고른다. 가끔은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며 셔터를 누른다. 찰칵. 나를 나로 채워 준 시간들에 멜로디가 더해졌다. 엄마, 주부, 아내, 며느리로만 가득 채워졌던 하루에서 내 시간을 조금 덜어내고, 나를 위한 노래를 더하니 6년 넘게 방치해 두었던 내가, 내 마음이 비로소 보인다.

엄마 일하는 동안 뭐 좀 틀어달라는 아이와 이제는 거래를 한다. 네 노래 세 곡 듣고, 다음은 '엄마 노래' 듣자고. 


강초롱 장래희망란에 적었던 작가의 꿈을 아직 놓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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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초롱(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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