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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영의 멸종 위기의 나날들] 단편 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대한 서평

<노승영의 멸종 위기의 나날들>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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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상상은 이만하고 일단은 팔을 걷어붙인 작가들이 국회의원들과 손잡고 대한민국예술원법을 개정하여 가장 필요한 곳에 지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길 응원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모두의 몫이니까. (2021.09.03)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펴내는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제37호(2021년 7/8월)에 특이한 단편 소설이 실렸다. 「도래할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방안(문학 분과를 중심으로)」이라는 부제의 이 보고서…… 아니, 소설은 『악스트』 210~229쪽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인 이기호 작가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대한민국예술원이라는 기관의 난맥상을 고발하고 자성과 변화를 촉구한다. 그나저나 고발의 형식이 소설이라면 동참의 형식은 서평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번 칼럼은 서평으로 갈음하기로 한다.

이 소설은 ‘제1장 서론, 제2장 대한민국예술원 역사 및 현황, 제3장 예술원에 대한 인식조사, 제4장 해외 예술원 사례, 제5장 대한민국예술원의 목표와 방향, 제6장 결론’의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대한민국예술원이 무슨 기관인지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예술원이요? 그게 뭔가요? 학원 같은 건가요?”라고 반문한 청주의 59세 여성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소설에 따르면 대한민국예술원은 “1952년 시행된 「문화보호법」에 근거하여 1954년 7월 17일 설립되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법 제1조(목적)에 따르면 “예술창작에 현저한 공적(功績)이 있는 예술가를 우대·지원하고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을 함으로써 예술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프랑스의 아카데미보자르, 미국의 미국문예아카데미, 독일의 독일예술원 등 외국에도 비슷한 성격의 기관이 있는 것을 보면 언뜻 ‘우리나라도 이런 기관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스플래쉬 

그런데 대한민국예술원은 외국의 유사 기관들과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외국 기관들은 개인 수당이 없을뿐더러 미국의 경우는 오히려 회비를 내기까지 하는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은 정부로부터 매달 180만 원의 수당을 받는다. 둘째, 외국 기관들은 젊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예술 진흥을 위한 교육·시상·레지던시 사업을 운영하지만 대한민국예술원은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예술원상 사업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다고 한다. 셋째, 외국 기관들은 예술원의 문호를 다양한 장르와 외국인에게까지 개방하는 등 저변을 넓히고 있는 반면에 대한민국예술원은 정원 100명의 “회원들이 직접 회원을 뽑는” 방식이어서 “이런 구도가 변하질 않”을 우려가 있다.

저자가 이런 문제를 제기한 배경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여건이 더 열악해지고 기성 문단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증폭되는 현실이 있다. 2021년 아르코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총 2172건 중 108건만 선정되었고 이 당시 문학 부문 청년예술가 지원 예산은 4000만 원에 불과했는데, 2020년 예술원 전체 예산은 32억 6500만 원이었으며 그중 대부분이 개인 수당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38세의 시인 C 씨는 “다른 분야는 소득 하위 70%에 지원하는 것을 문학은 상위 1%에만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기호 작가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이런 관행이 ‘분배 정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보고서에서는 대한민국예술원에 대한 일반인의 의식을 조사했는데, 그중 가장 안쓰러운 사람은 16세 청소년이었다. 그는 “와우, 죽이네요. 저도 커서 예술원 회원 되고 싶어요. …… 금메달 따면 평생 연금 나오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네. 저도 오늘부터 시 쓸 거예요”라며 시인의 꿈을 불태웠다. 하지만 시를 아무리 잘 써도 분과회원 재적 3분의 2에 찬성 3분의 2를 얻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임을 이해하려면 그는 세상의 때가 좀 더 묻어야 할 것이다.

동료 예술인 인식조사에 참여한 49세의 소설가 A씨는 이기호 작가 못지않은 입담을 지닌 사람이다. “사실 저도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글을 쓰는데 ……. 이게 좀 비겁한 거잖아요? …… 그러면 예술 앞에선 좀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대학교수이고, 직장인이면 일부러 아르코창작기금 같은 건 아예 신청도 안 하는데……”라는 그의 죽비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교수 겸 번역가인 평행우주에서 나는 과연 정부 기금 앞에서 초연할 수 있을까?

부제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도래할 위협’이라는 표현이었다. 여기서 위협은 사회·문화적 조건이 변화하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일까? 생산수단의 사유화라는 경제적 조건의 변화로 인해 잉여가치가 하락하면 사회주의 혁명이 필연적으로 도래한다고 본 마르크스처럼 말이다. 하지만 레닌이 경제적 하부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농업국가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듯 어떤 사람들은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미래를 도래‘시키’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악스트』가 출간된 지 두 주 뒤인 7월 21일「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과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 대통령령의 개정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되어 2707명의 참여로 8월 20일 마감되었다. 그와 더불어 8월 19일 한국작가회의에서는 「대한민국예술원 혁신을 위한 우리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문인 744명과 타 분야 예술가 329명의 참여로 발표했다. 

사실 내가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난 주 토요일(8월 28일)에 칼럼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 ‘왜 이렇게 쓸거리가 없지?’라고 한탄하며 멍하니 유튜브를 뒤적이다 CBS <한판승부>에 이기호 작가가 출연한 동영상을 보게 된 덕분이다. 부끄럽게도 소설이 발표되고 국민청원이 제기되고 성명서가 발표될 때까지도 나는 까맣게 몰랐다. 어제 뒤늦게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을 하려 했으나 이미 마감되어 등록할 수도 없었다. 문인 아닌 예술가도 329명이나 성명서에 참여했다는데, 왜 내겐 아무도 동참해달라고 청하지 않았을까? 기꺼이 서명하고 주위에 널리 알렸을 텐데.

한참 고민하다 문득 깨달았다. 대한민국예술원은 애초에 번역가와는 상관없는 기관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예술원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의 네 분과로 나뉘고 문학 분과에는 현재 시, 소설, 평론 분야에 총 26명이 회원으로 있다. 프랑스어 번역가가 한 명 있긴 하지만 번역가가 아니라 평론가 자격으로 선출된 것이다. 게다가 보고서의 제언처럼 예술원 회원들이 “현재 지급되는 정액 수당을 전액 반환하”더라도 청년 번역가들에게는 돌아오는 것이 없다. 편집자들에게서 ‘선생님’, ‘작가님’ 소리를 들으며 잠시 착각하다가 냉엄한 현실을 직시했달까.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예술원이라면 번역가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편이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르겠지만.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받을 일이 없는 번역가들은 우리끼리라도 뭉쳐서 서로 도왔으면 좋겠다. 번역가 단체를 결성하여 미국문예아카데미처럼 연회비를 받고 기부금을 모아 프랑스의 아카데미보자르처럼 장학 제도를 실시하여 번역가 지망생들을 지원하고 번역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번역가들이 선정하는 번역상도 만들고 독일예술원처럼 국제 교류를 확대하여 전 세계 번역가들이 끈끈하게 연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내의 어떤 출판사도 출간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꼭 번역되어야 할 고전들을 번역가들로 하여금 2년에 한 권 정도 적정한 번역료를 받으며 번역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기금을 조성하여 일감이 떨어졌을 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금전적 지원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즐거운 상상은 이만하고 일단은 팔을 걷어붙인 작가들이 국회의원들과 손잡고 대한민국예술원법을 개정하여 가장 필요한 곳에 지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길 응원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모두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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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승영(번역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썼으며,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당신의 머리 밖 세상』, 『헤겔』, 『마르크스』, 『자본가의 탄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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