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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의 하루] 나는 오늘도 춤추러 간다 – 김국주

에세이스트의 하루 17편 – 김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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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밸리댄스 경력은 4년, 적지 않은 경력이다. 심지어 자격증도 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또 다른 4년의 공백. 이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나는 이 공백을 채워야 했다. (2021.09.01)


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언스플래쉬

아, 뜨거운 숨이 차오른다. 

6월의 때 이른 폭염 속, 등에는 6개월짜리 막둥이를 들러업고, 양손에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무겁게 발을 뗄 때마다 땀이 귓가를 거쳐 턱에 맺혀 떨어진다. 그리고 내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다.

나는 지금 춤추러 간다. 

얼마 전, 시소속 문화재단의 버스킹 팀 모집에 지원했다. 내 상황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원서를 넣어버린 것이다. 솔직히… 합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팀은 경력도 전무하거니와 멤버도 둘 뿐인 초라한 듀오 팀이었으니까. 그래서 넣었다. 그야말로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팀명도 대충 지었다. 떨어질 테니까. 올해는 떨어지더라도 내년에 제대로 준비해서 지원하면 붙을 것이다. 이번엔 그냥 경험 삼아 넣고, 내년에 제대로 지원하자. 내년부터는 꼭 다시 시작하… 려고 했는데 덜컥 합격 통보가 왔다?!?

진정 당황했다. 왜지? 왜 합격한 거지? 왜 통과시킨 걸까? 도대체 이유가… 아… 그 이유를 찾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의 밸리댄스 경력은 4년, 적지 않은 경력이다. 심지어 자격증도 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또 다른 4년의 공백. 이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나는 이 공백을 채워야 했다. 부랴부랴 연습실을 빌렸다. 6개월짜리 막둥이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서 들쳐메고 왔다. 하여 지금 이렇게 길바닥에 땀을 흩뿌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그 첫날이다. 에너지의 팔 할을 오는 길에 다 쏟아버렸지만, 그딴거 따질 여유는 없었다.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막둥이의 배부터 채워줘야 했다. 그래야 얼마 남지 않은 이 에너지라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아마도. 

막둥이를 눕히고 분유병을 쥐여준 후 음악을 재생시켰다. 만 4년 만이다. 나는 지금부터 4년 전의 안무를 찾아야 한다. 자… 이제 시작해볼… 막둥이가 빈 분유병을 집어던지고 울기 시작했다. 젠장. 빠르기도 하여라. 플랜 B로 진입한다. 막둥이에게 한 짐 잔뜩 챙겨온 장난감을 하나하나 면접 보이듯 선보여줬다. 건반이 달린 피아노 책, 탈락. 도대체 왜!! 어제까지는 너의 최애 장난감이었거늘!! 불 들어오는 자동차 장난감, 패대기... 이건 또 왜!!! 어제 사준 거잖아!! 그 뒤로 몇 개의 후보들이 더 탈락하고 뮤직볼이 당첨됐다. 뮤직볼은 다채로운 소리를 내며 홀을 굴러다녔고, 녀석도 다채로운 소리를 내며 기어 다녔다. 

하아…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굴러다니는 뮤직볼과 기어 다니는 녀석이 밟히지만 않게 잘 피해서 연습하면 될 것이다. 다시 음악을 켜고 안무를 시작했… 하려고 하는데, 내 심장이 뜨거워졌다. 안무가 초입부부터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음악이 나에게 처음 뵙겠다는 인사를 하는 듯했다. 아하하하. 망했다. 내가 추는 이것을 과연 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때 녀석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런… 내 새끼가. 

순간 직감했다. 아니, 사실은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험난할 것이다. 나는 결국 녀석을 아기띠에 담아서 앞에 메고 다시 시작했다. 

30년 같은 30분이 흘렀다. 드디어 녀석이 잠들었다. 너는 이 상황에서도 잠이 오는구나. 고맙다. 내새끼야. 녀석을 살포시 눕혔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어? 그런데 이번엔… 골반이 안 돌아간다. 이거 왜 이러지? 아까는 백지화된 안무때문에 영혼이 탈곡되어 눈치채지 못했는데, 내 몸이… 댄스 불능이 되었다?!? 진즉에 들었어야 할 합리적인 의심이 이제서야 들었다. 나 과연… 버스킹 이거… 가능하긴 한 걸까?

그걸 본 나의 댄스 메이트가 말했다. 

“어?? 언니, 골반이랑 가슴이 전혀 작동을 안 하네?! 근육 다 사라졌나 보다.”

“아… 진짜…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근육 길러야지.”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골반에 윤활유를 뿌려서 돌린 것이 아니었다. 밸리를 하다 보면 이런 말들을 많이 듣는다. 

“우와, 밸리 하면 유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유연성이 좋으면 좋다. 하지만 그게 필수 덕목은 아니다. 밸리댄스도 결국은 근육을 쓰는 춤이다. 근육이 없으면 밸리의 그 어떤 동작도 불가능하다. 하여 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교통수단도, 안무도, 윤활유도, 보모도 아닌… 근육이었다. 

알고 있다. 근육 만드는 것이 살 빼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니까. 하여 다음 날 헬스장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저 살 빼러 온 거 아닙니다. 근육 만들러 온 겁니다.”

나름 멋지게 선언했건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신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뇨, 회원님… 살도 반드시 빼셔야 해요.”

아… 눼… 이 여정도 만만치는 않겠군요. 

그렇게 험난한 여정을 꾸역꾸역해오길 어느덧 6년째, 나는 아직도 버스킹을 한다. 

막둥이는 7살이 되어 더이상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현재 내 근육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안무는… 단 한 번도 완벽하게 외운 적이 없다. 내가 추면 그게 안무다. 춤 실력은? 길가는 행인보다는 내가 잘 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왜냐면 나는 버스커니까. 

나는 오늘도 춤추러 간다. 



*김국주

춤과 책과 맥주를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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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국주(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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