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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가장 독자를 생각했던 책이에요 (G. 박연준 시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02회) 『쓰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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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옆에 "바라지 말 것. 바라려면 오직 스스로에게만 바랄 것"이라고 말하는, 산문집 『쓰는 기분』을 출간한 박연준 시인님 나오셨습니다. (2021.08.26)


시라니.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 시는 어렵고 내게서 멀리 있는 거야. 거짓말입니다. 당신은 직관으로 시가 뭔지 알고 있어요. 혼자 무언가 끼적이는 일. 속으로 두런두런 혼잣말하는 일. 뻔하게 말고,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일. 슬프다고 하지 않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하고 말하는 일. 당신이 이런 적이 있다면, 혹은 이런 상태를 눈치챈다면 당신은 이미 시를 쓰고 있는 거예요. 시는 당신 옆과 뒤,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박연준 시인님의 산문집 『쓰는 기분』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쓴다면 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책은 손끝에서 생각이 자유로워질 때의 기분, 현실에서 만질 수 없는 ‘나’들을 모아 종이 위에 심어두는 근사한 기분, 바로 쓰는 기분을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쓰는 기분』을 쓰신 박연준 시인님이 함께 해요. 시인님의 뜨거운 시 사랑과 시 쓰는 일의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함께 쓰자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님의 손짓에 화답해주세요. 




<인터뷰 – 박연준 편>

오은: 박연준 시인님은 저희 <책읽아웃> 애청자로도 잘 알려져 있죠. 매주 목요일 아침 목욕하고 나서 듣는 루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요. 다른 팟캐스트도 많고, 유튜브 채널도 많을 텐데 <책읽아웃>이라는 팟캐스트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박연준: 게스트 분들의 이야기가 다 도움이 돼요. <책읽아웃>은 특히 게스트를 고를 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어떤 사람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1-2시간 정도 들으면 배울 게 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들어요. 듣는 게 공부라는 생각을 해요. 

오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뭔가요? 

박연준: 두 번 들은 방송이 되게 많아요. 일주일에 두 번밖에 안 하잖아요.(웃음) 그런데 김혜순 시인님 편은 네 번 정도 들은 것 같아요. 듣고 있으면 뭔가 정화되는 기분이거든요. 선생님이 좀 순하시잖아요. 제가 어디에도 썼는데, 저는 순하게 빛나는 걸 좋아해요. 빛나는 스타도 그렇고, 빛나는 사람들, 위인들을 보면 뾰족하게 빛나는 사람은 되게 많은데요. 좀 순하게, 유연한 상태로 빛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권위를 내려놓은 상태로 빛나는 사람 말이에요. 김혜순 시인님은 저에게 그런 선생님 같습니다. 

오은: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독자들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다고 말하는, 포기하지 않고 더듬더듬 끝까지 쓰겠다고 말하는 시인. 연탄 쌓인 좁은 골목길, 다닥다닥 가게들이 붙어 있는 도시의 변두리에서 성장했다. 집에서는 박연준을 다람쥐, 라고 불렀다. 전파상, 쌀집, 작은 가겟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을 다람쥐처럼 다니던 시절이었다. 엄격했던 고모가 한글을 깨치게 하려고 동시 외우기, 동화 베껴 쓰기 같은 과제를 내준 덕분에 다람쥐처럼 다니면서도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일찍부터 문학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장래희망은 라디오 DJ였지만 뭔가를 늘 끼적이는 게 일상인 학생이었고, 12살 때부터 오랫동안 장국영을 좋아했다.

박연준은 자신의 20대를 언제나 세상에 화가 나 있었던 시절로 기억한다. 생활고로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고, 삶은 퍽퍽하고 힘들었다.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작은 방으로 돌아와 엎드려 시를 썼는데 시를 쓰고 나면 살 것 같았다. 자다가도 뭐가 떠올라 써야 했던 그 시절, 그는 공책을 옆에 두고 잤다. 일어나면 쓰던 시를 고칠 생각에 두근거리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두세 달마다 한 권씩 두꺼운 공책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좋아하는 걸 하는 것보다 하기 싫은 걸 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 박연준은 자명한 ‘개’과 인간이다. 추위를 아주 많이 타고, 엄살이 무척 많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패배를 아는 사람들, 이기는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굳이 안 그러고 지는 사람들이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동시에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 속이 편치 않을 때는 언제라도 나무를 보곤 한다. 끝내 시 속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싶다.” 시인님, 어린 시절에 다람쥐가 별명이었어요?

박연준: 와전된 건데요. 어린 시절이 아니라 요즘 별명이에요.(웃음) 남편이 부르는 별명인데요. 제가 온갖 가게들 구경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고, 가게 사장님들과도 친하거든요. 소품 가게, 과일가게, 커피숍 할 것 없이 그곳 사장님들과 다 친구가 돼요. 그렇게 해서 생긴 별명이고요. 어린 시절에는 그냥 집에 있던, 내성적인 그런 아이였어요. 

오은: 세상에 화가 나 있던 시절이 20대였어요. 다른 꿈이 있지만 생활고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그랬을까요?

박연준: 20대 때는 ‘왜 나는 나 이외의 것이 이렇게 힘들까’ 하는 문제로 화가 나 있었어요. 보통 친구들을 보면 나 자신 때문에 힘들고, 그렇지 않으면 해맑게 지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저는 해결이 안 되는 바깥의 문제들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제가 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칼을 뽑아 들고 헤쳐 나가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문제를 피하거나 문제 뒤에 숨는 사람이 전혀 못 돼요. 그런 사람인데 주변에 늘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것들이 벅차서 늘 동동거렸고, 그나마 제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시였던 거죠. 시에서는 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나 고민들이 종이 한 장만큼의 크기로 작아졌어요. 제가 조금이나마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되더라고요. 슬픔도 조금 무대 위에 슬픔 같아지고요. 

오은: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먼저 시인님께서 『쓰는 기분』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주세요. 

박연준: 이 책은 제가 많은 사람들과 쓸 때의 기분을 나누고 싶어서 쓴 책입니다. 이 문장을 미리 써놨었던 것 같아요. “당신에게 부드러운 용기, 작은 추동을 일으키는 바람, 따뜻한 격려를 건네고 싶다.” 여기서 ‘추동’이 저에겐 중요했어요. 그래서 이 책이 우아한 실용서처럼 느껴졌으면 좋겠고요. 글 외에도 무언가 창작하는 분들이 어떤 페이지를 보더라도 자극이 되는 책이면 좋겠어요. 그런 아주 가볍고 막 다뤄도 되는 실용서로 다뤄지길 바라요. 무엇보다 제가 지금까지 쓴 모든 책 중에 가장 독자를 생각했던, 철저하게 바깥의 사람을 생각하면서 쓴 책인 것 같아요. 

오은: 제목을 보고 약간 묘한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나 태도가 아닌 ‘기분’이잖아요. 쓰는 기분이라고 하면 뭔가 큰 이야기에서 조금 내려오는 느낌이거든요. 『쓰는 기분』이라고 제목을 정한 이유도 듣고 싶었어요. 

박연준: 시를 쓰고 나면 뭐가 남는가를 생각해봤어요. 시가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재화가 되지 않고, 사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장르도 아니에요. 많이들 읽어주시는 분야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왜 시인들은 한사코 시를 쓸까, 시집을 많이 읽어주지도 않는데 때가 되면 왜 시집을 그토록 정성스럽게 낼까, 생각했거든요. 저는 그게 기분이 다인 일 같아요. 효율을 따지면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일이 없지만 저는 나 혼자 흡족하고 좋아서 쓰는 경우가 전부더라고요. 이게 나에게 좋은 거면 누군가도 이 기분을 같이 느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쓰는 사람도 못 쓰는 사람도, 그냥 시를 쓰고 나서 별 연락 없고 달라지는 일 없고 그런 거라면 우리 그냥 이 좋은 기분을 한번 느껴보자고요.

오은: 아마도 박연준 시인께서 시를 쓰기 전과 후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뭐 손을 내미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연준: 저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 영혼과 지금 내 상태가, 바라는 영혼과도 일치하고 합일을 이룰 때 행복하고 평안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시를 쓰면 그게 잠시라도 일치가 돼요. 그러니까 달라지죠. 그게 쌓이면 달라져요. 20대까지만 해도 저는 굉장히 어두운 사람이었거든요. 그냥 슬픈 아이였어요. 근데 시를 통해서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서 제가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삶이 그렇게 바뀐 것 같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글을 쓰라는 게 아니라 그냥 뭔가를 밖으로 써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연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늘 내 인생의 선생님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존 버거예요. 저는 글이 안 되든 삶이 안 되든 할 때 항상 존 버거의 책을 꺼내 보거든요. 그 중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을 소개하고 싶어요. 존 버거는 틈, 균열, 보이지 않는 곳,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얘기하는데요. 저는 그곳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곳에 뭐가 있다, 죽은 사람과의 대화가 가장 좋다고요. 저도 가족 중에도 죽은 사람이 있고 한데요. 그들과 대화를 정말 많이 하거든요. 거기서 얻는 게 있어요. 그 사람이 정말 나에게 대답한 게 아니고, 내가 그 사람 대답을 상상까지 해서 하는 대화지만 거기 되게 뭐가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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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쓰는 기분
박연준 저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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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쓰는 기분

<박연준> 저12,600원(10% + 5%)

“시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당신은 자신할 수 있나요?” 박연준 작가의 신작 산문집 『쓰는 기분』이 출간되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 그리고 산문집 『소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등 다방면으로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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