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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지 작가의 창작 그림책 『산책 가자』 이야기

『산책 가자』 윤예지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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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지의 『산책 가자』는 길 위의 풍경과 걷는 존재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책이다. 가지각색 살림들이 만드는 골목의 표정, 발바닥이 보도블록에 닿는 익숙한 감촉, 자전거 자동차 킥보드 같은 탈것과 사계절의 공기가 윤예지 화가만의 독특한 필터를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다. (2021.08.18)

비비와 작업실에서

출판 미술은 물론이고 다양한 대중매체나 브랜드와의 협업, 환경과 동물을 주제로 한 캠페인, 독립 출판 등 수많은 분야에서 자신의 세계를 활짝 펼쳐 보여주고 있는 윤예지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산책 가자』의 장면 장면 속에는 천진함과 뾰족함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윤예지의 장난기가 유쾌하게 담겼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요즘 어떤 나날을 보내고 계신가요? 독자들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먼저 들은 말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림책 출간의 기쁨도 잠시, 다른 작업이 많아서 계속 작업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대형서점에 가서 제 책이 매대에 있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 아직 작업실 밖을 나갈 짬이 잘 안 나네요. 코로나 이후로는 이벤트가 없으니 생활이 단순해졌어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작업실로 가고, 끼니를 해먹고, 가끔 운동하고, 다시 퇴근하고 자는 일상의 반복이에요.  

출간 이후에 듣게 된 말들 중에는, 힘 빼고 그려서 편안하고 좋았다는 얘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처음 이 작업을 구상했을 때는 독립출판으로 만들자, 내 맘대로 쉽게 쉽게 그려야지, 하고 쓱쓱 그렸죠. 평소의 꽉 찬 그림체가 아니라 슬슬 드로잉처럼 만들어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도 안 했던 것 같아요. 만약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그렸으면 이렇게 만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야기도 그림도 더 힘을 줘 버렸을 것 같은데 끝까지 힘을 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집에만 있으니 우울하다, 산책이나 나가자.” 첫 장면에 등장한 갈색 푸들의 이 한마디가 정말 가슴에 와닿는 요즘입니다. 이야기의 발단이 된 어떤 순간이나 계기가 있나요? ‘산책’을 주제로 삼게 된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어디 가지 못하고 작업실 혹은 집에만 있게 되니 좀 걷기라도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길을 일부러 걸어서 다녀 보기 시작했어요. 언제나 같은 길이니 루트를 바꿔 걸어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매일 다른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가끔은 굉장한 순간들도 발견하고요. 제가 같이 사는 동물이 없다 보니 길 위에서 만나는 털뭉치들을 유독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매일 보던 애들이 또 있기도 하고, 새로운 애들이 있기도 하고 그런 걸 발견하는 게 재밌었어요. 연트럴파크를 포함한 경의선 숲길을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겨울에 눈이 온 날은 눈사람이나 눈오리가 잔뜩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그거 다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의 귀여움에 혼자 흥분하기도 하고, 그렇게 소소한 재미를 만들어 내며 지냈어요. 사진으로, 마음으로, 또 그림으로 제 마음에 들어온 귀여운 풍경, 기이한 장면들을 기록하다 보니 이게 모여 결국엔 이렇게 그림책 한 권이 만들어졌네요. 모두가 마스크를 쓴 광경이야말로 정말로 놀랍고 기이한 일상이긴 하지만요.

장면장면의 구성이 음악적으로 느껴져요. 곳곳에 숨겨둔 귀여움을 발견하는 재미도 넘칩니다. 처음엔 갈색 푸들의 매력에 푹 빠졌다가, 이어서 변화무쌍한 구도가 만들어 내는 리듬,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에 대한 감각, 또 한편 에너지 넘치는 색감이 주는 과감한 기분 등을 연이어 발견하게 됩니다. 팬들이라면 윤예지 작가의 지난 작업과의 작은 연결감이나 시그니처 같은 것을 찾으며 반가운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듯요. 즐길 거리가 정말 많은 그림책인데요. 독자들이 이것만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혹시 있나요?   

꼭 캐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혹시 발견할 수 있다면 더 즐길 거리들이 있는데 여기에 잠깐 적어 볼게요. 우선 풍경에 사계절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려고 했어요. 시간의 흐름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며 카페에서 취식을 못하게 했던 시절, 길거리 쓰레기통에 쌓이는 플라스틱 컵들 숫자가 정말 많이 늘었었거든요. 그걸 보는 게 조금 괴로웠는데, 플라스틱 숲 장면을 약간의 경각심을 의도하고 그렸어요.

두 명이 함께 킥보드를 타는 풍경도 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행위지만 지금 이 시대의 단면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그려 넣었어요. 작년에 길에서 너무 많이 봤어요. 참, 사람들 패션 디테일에도 신경을 썼는데 그 킥보드 커플의 신발이라든가 (내 맘대로 나이키 조던과 마르지엘라 타비 부츠) 날이 추워지면 자주 보이는 중년 여성들의 보라색 패딩, 겨울의 블랙 패딩 군단 같은 것들도 그리면서 재미있었어요.  



산책길에 발견한 풍경들에서 출발한 이야기여서, 그림책 속 장면의 실제 모델들도 궁금해요. 살짝 소개해 주시겠어요? 

자전거 주차장 장면에 나오는 친구들은 2020년 여름 동안 경의선 숲길에 제가 자전거를 주차해 놓는 차고에서 항상 만나던 검은 고양이 노란 고양이에요. 이 동네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사람을 정말 싫어했어요. 이렇게 마음을 열지 않고 끝까지 경계심을 놓지 않는 녀석들은 처음이었어요. 두 녀석이 항상 함께였는데 가을쯤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췄어요. 기다리는데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아마도 여기 다른 고양이들 세력 싸움에 떠나 버린 것 같아요. 제 작업 노트에 검고 노고 드로잉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코코로라고, 인스타그램에 유명한 갈색 푸들이 있어요. 그림책의 첫 장면 (푸들의 뒷모습)을 그릴때 영감이 되었던 강아지예요. 코코로의 귀여운 모습은 그림을 그리는 내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번 그림책을 얼마 전에 코코로에게 보내 드렸어요.) 

줌 화면 속의 친구들은 실제의 제 친구들이에요. 제 작업실에서 잠시 지냈던 친구들의 고양이 인턴들. 마무, 은식이, 토리, 비비. 작업실 옆방에 출근했던 강아지 비스킷. 저에게 첫 강아지 사랑을 알게 해 준, 지금은 베를린에 사는 레옹이…. 사실 많은 장면들이 제가 실제로 찍어 놓은 사진들을 자료로 그려졌답니다.



그동안 여행지에서 발아한 감정들을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로 남겨 오셨는데요. 여행을 즐기던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일상의 멈춤과 지속에 대한 감각을 다시 조절할 수밖에 없는 시기인 것 같아요. 우연한 만남이 있고 낯선 풍경이 있고 중간중간 익숙하고 편안한 안정감이 필요하다면 그 어느 것이라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당장 내일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면, 어디로 가시겠어요?

요새 지난 태국 여행들 생각이 부쩍 많이 나요. 바다가 있는 여름 나라를 가장 가고 싶은 것 같아요. 코로나 직전에 끊어 놓았던 비행기 티켓이 발리 행이었는데 환불받지 못하고 그대로 바우처로 가지고 있어요. 가능하다면 그 비행기표 바로 쓰고 싶네요. 

최근 관심을 두는 주제가 있다면요? 다음 작업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 궁금해요. 

올해 불현듯 주식을 시작하면서 경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재테크나 투자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었는데 제 인생에 어떤 뉴스보다도 경제 뉴스를 제일 재밌게 듣고 있는 시기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역시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초보의 길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요. 그것과 연관해서 제가 요새 주목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라는 감정, 혹은 투자 속의 유머 같은 걸로 뭔가 재밌게 만들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런 것도 그림책이 될까요? (어디서든지 유머를 찾아내는 게 제 특기인 것 같아요.)

한때는 웃긴 당근마켓 후기들로 뭔가 그려 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그만큼 거래를 많이 못해서 에피소드가 많이 못 모였어요. 그림책으로 그리고 싶은 단상들은 이것저것 있는데 이야기로 묶을 만한 것은 아직 없어서 이리저리 흩어 놓은 채로 있습니다. 



『산책 가자』의 원고를 작업하면서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어떤 장면이 가장 안 풀렸었는지 궁금해요. 그때 들었던 음악이나 보았던 영화, 먹었던 메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면요?  

작년에 그나마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 <환상의 마로나>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극장에 무려 두 번을 가서 봤어요.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동물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본문 장면 중에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사람이 있어요. 서 있는 사람이 고양이에게 빌딩처럼 크게 보이는 뷰를 완성하고 흡족했어요. 동물들이 사람을 봤을 땐 정말 엄청난 크기일 텐데 그 존재가 나를 만지려고 손을 뻗는다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경계심이 들겠죠? 그런데도 그 존재에게 믿고 몸을 맡기는 동물들을 보면 가끔은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이들은 우리를 이렇게 무한 신뢰할까요?




*윤예지(화가,작가)

일상을 상상으로 엮어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출판, 포스터,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국적의 클라이언트들과 작업하고 있다.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움을 경험하고 영감을 받는 것을 좋아해 왔지만 팬데믹 이후 달라진 세상에서는 일상의 익숙하고 소소한 것들을 더 관찰하게 되었다. 『산책 가자』는 그렇게 만난 길 위의 풍경들을 재료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자유와 공상, 미지와 삶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상상력 가득한 일러스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기억할 수 있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이외의 직업은 상상해본 적이 없기에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또 시간과 공간을 확장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 포스터,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국적의 클라이언트들과 작업하고 있습니다.



산책 가자
산책 가자
윤예지 글그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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