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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비원 “왜 인문학책은 읽기 어려울까요?”

『왜 읽을 수 없는가』 지비원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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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말을 다시 어렵게 정리하는 것이 인문학의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그런 이미지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2021.07.09)


5초에 한 번씩 빵빵 터지게 해주는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이 몰려간다. 왜 전문가가 조금만 재미있게 설명한다 싶으면 시청률이 그렇게 뛰어오를까? 왜 ‘넓고 얕은 지식’을 표방하는데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릴까? 사람들은 교양을 쌓고 싶어 하고 기왕이면 머릿속을 채우는 게 채우지 않는 것보다 백배 낫다는 사실을 잘 안다. 쉽고 얄팍해 보이는 프로그램이나 책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사람들의 지식욕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할 수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글, 웹소설과 웹툰 댓글을 보면 무언가를 읽고 해석하려는 욕망도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관심 분야라면 어떻게든 전문 용어를 익히고 마음만 먹으면 이 용어를 구사해 광고성 글을 쓰기까지 한다. 그런데 ‘인문 교양서’에 나오는 ‘전문 용어’는 어렵다며 고개를 돌린다. 

왜 어떤 글은 읽히고, 어떤 글을 읽히지 않을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글쓴이’인가 ‘못 읽는 독자’인가? 오랫동안 편집자이자 번역가로 일한 지비원 씨는 어떤 ‘글’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은 우선 글쓴이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안 읽는’ 독자들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쓴 글에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왜 읽을 수 없는가』에서 그는 ‘인문학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이유’를 분석한다.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독서 통계가 있습니다. 책을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전통적인 의미의 독서를 하지 않는 건 확실합니다.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하루 중 대부분을 넷(net) 세상에서 뭔가 읽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독서력이 떨어진다는 한탄이 끊임없이 들리는데, 선생님은 이런 진단에 의문을 제기하셨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을 뿐’이지 인터넷과 연결되어 끊임없이 뭔가를 읽어요.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다들 비관적으로 보지만 사실 인터넷이 없었던 마지막 시대인 1990년대 초중반을 돌이켜보면 입시 공부 외의 독서는 딱히 권장된 적이 없습니다. 독서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시가 끝난 후에 하라고 계속 유예했다는 말이죠. 인터넷 세상에서의 읽기와 독서가 연결고리가 약한 건 독서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중적인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주위를 둘러보면 독서가 절대 일반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걸 아실 거예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읽지만 안 읽는 사람은 다가가려고도 하지 않거든요. 입시가 끝난 이후에 좀 더 넓고 깊은 지식의 세계로 건너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는커녕 책이라면 꼴도 보기 싫게 만드는 게 이 사회의 교육제도 같습니다. 독서는 언제나 독서를 즐거워한 사람들만의 특수한 체험이었어요. 그리고 이젠 인터넷이 있는데 독서를 왜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못 내놓는 것 같아요. 책 말고도 읽을 것들, 읽어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치니까요. 

사람들은 관심 분야가 있다면 어떻게든 전문 용어를 익히고, (웹소설과 웹툰 댓글을 보면) 텍스트를 해석하려는 욕망도 크다고 하셨지요. 

‘마데카소사이드’ ‘스핀오프’ ‘오쏘라이트’ ‘유효 화소수’가 뭘까요? 뷰티, 드라마, 슈즈, 디지털 카메라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다 아는 용어들이에요.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눈에 불을 켜고 광고 문구를 샅샅이 비교하며 용어들을 익힙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런 용어들을 구사해서 광고성 글을 쓰기도 해요.

저는 웹툰을 좋아해서 연재물을 꽤 챙겨 보는 편입니다. 웹툰의 역사는 대략 20여 년 정도로 잡는데, 7~8년 넘게 장기 연재되는 작품도 있어요.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댓글을 보게 돼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댓글도 많지만 이른바 ‘베스트댓글’을 보면 사람들이 자신이 보는 작품에 얼마나 애착을 품고 있으며, 사소해 보이는 컷에서조차 ‘작가의 의도’ ‘작품의 주제’를 읽어내려고 애쓰는지가 보여요. 조회수 상위권 작품의 ‘베댓’이 ‘좋아요’를 몇 개나 받는지 살펴본 사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나도 그렇게 느꼈고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 거예요.

기본적으로 사람은 아, 이것만 알면 끝이야, 이것만 알면 돼,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하나를 알면 또 다른 앎을 추구하는 게 사람이에요. 다만 이런 사람들이 ‘인문학적 지식’에 접근할 길을 못 찾고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거둔 성과나 하루에 한쪽씩 읽으라는 책이 호평을 받는 현상은 어떻게 보시나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일단 사람들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드는 게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대넓얕』 같은 책을 살 때는 이런 마음이 작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 이 정도는 나도 읽을 수 있겠다, 한꺼번에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하루에 한두 페이지 정도는 읽을 수 있겠다’ 같은 자신감요. 몇백 페이지나 되는 책이 순간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일종의 마법이 작용하죠. 

『지대넓얕』은 인문학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줬다고 생각해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다음에는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징검다리가 될 만한 책을 만들지 고민해야겠지요. 이런 책들이 반짝 팔리고 끝나버리면 모처럼 만들어진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또 다른 책이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어요.

1980, 90년대를 운동과 학술과 교양의 결합체로서 책을 소비하던 시대라고 정의하셨어요. 당시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인문사회계 대표 필자로 활약했어요. 이분들의 글쓰기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그분들의 글쓰기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글이 신문 칼럼이라고 생각해서 책에도 몇몇 글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런 단일 토지세론보다 현대 사회에 더 묵직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은 그의 정치경제학 밑바탕에 흐르는 자연정의론적 세계관이다.” “사회문제에서 옳고 그름은 형식논리라는 진공상태에서만 판단될 수 없다. 메시지는 언제나 맥락 의존적이며 맥락의 결정적 요소는 권력관계다.” 신문 칼럼의 일부입니다. 문장에 등장하는 개념들을 정확히 알거나 상당한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매스미디어인 신문에 실립니다. 학술적 글쓰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는 측면을 충족시키지는 못해요.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낯설고 어렵고 나를 위한 글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사람들은 곧바로 뒤로가기를 클릭합니다. 

1980년대에는 교양과 학술에 체계적인 구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책에서 1980년대의 사회과학 서적을 상징하는 ‘신서’라는 책들을 예로 들었는데, 학생운동의 이론적 근거이자 새로운 교양이라고 생각했던 ‘신서’가 사실은 ‘학술’에 가까웠던 책이에요. 신서를 읽은 사람들은 사실 매우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신서가 담은 지식을 교양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훗날에도 공부를 계속했고, 그런 ‘신서’의 글쓰기, 학술의 글쓰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 분들이 주도한 학술 비평에 가까운 글들이 잡지를 비롯한 매체에 많이 실리면서 대중적인 글쓰기로 자리매김이 되었고 지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문학책이 특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개념어’라는 장벽이 큰 원인입니다. 선생님은 개념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신줏단지 모시듯이 할 필요가 없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는 사람이 하는 ‘바꾸어 말하기’가 중요하다, 라고 하셨어요.  

‘밥은 먹었니?’라는 말을 ‘식사는 했어?’라고 바꾸어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 말뜻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개념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바꾸어 써야 할지 모르는 것 아닐까요? 

또 늘 그렇게 써왔으니까, 내 스승님이 그 개념을 썼고, 스승님의 스승님도 그 개념을 썼으니까 마치 자연어처럼 돼서 바꿀 수 없다고 믿는 거 아닐까요? 물론 다르게 쓰기가 어려운 말이 정말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개념’이라는 말을 지금 당장 다른 말로 어떻게 고치겠어요? 하지만 ‘개념’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분명 다른 표현으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일대일로 바꾸지 않더라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 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제가 보기에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인문교양이 간과하는 큰 문제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인문학 초짜’로 출판계에 입문하여 여전히 인문학을 읽으려고 애쓰신다고 했는데, 초보자가 인문학에 접근하게 하려면 어떤 글과 책이 적절할까요? 그런 글과 책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까요?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들이 있어요. 왜 인간은 혼자 살지 못할까? 왜 세상 모든 것에는 필연적으로 시작과 끝이 있을까?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건 정말 없을까? 왜 인간은 물물교환부터 시작해서 이토록 거대한 경제를 발전시켰을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 정도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평범한 내 삶과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학술적 글 사이의 간극을 정확히 이해하고 보통 사람의 말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그런 시도가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 책의 4장에 모델이 될 만한 책을 몇 종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말을 다시 어렵게 정리하는 것이 인문학의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그런 이미지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건 다 알지만 가면 갈수록 인문학과 평범한 사람이 구사하는 말과 글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그 간극을 좁혀야 하는 이들은 분명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어요. 연구자들이 얼마나 힘든 시대를 사는지 잘 알지만 ‘잘 아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궁리를 하고 힘을 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문학책을 왜 읽을 수 없는지’ 지금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당장 어떤 책을 읽으면 된다거나 어떤 강의를 들어보라고 권유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 적어서 인문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저도 인문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왜 나는 읽지 못할까? 재능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지 않나? 어떻게 노력해야 하나? 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쓰인 책은 없을까? ‘나는 초보며 무지하다,’ 라는 생각을 늘 해왔고 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을 만들면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여전히 제게 남은 과제예요.

인문학책을 못 읽는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자괴감을 느낄 일이 전혀 아닙니다. 결코 스스로가 모자라거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중요한 점 하나는 인문학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건 공부하려는 독자 탓이 아니라는 겁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정도는 알고 오라는 식의 독자를 향한 질책도 이젠 끝낼 때가 됐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야만 내용과 형식 면에서 인문학이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길을 찾을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해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으니까요. 



*지비원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2001년부터 편집자로 일했고 2013년부터 일본어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 등을 번역했다.



왜 읽을 수 없는가
왜 읽을 수 없는가
지비원 저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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