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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싶었어요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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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기가 궁금하고 배우고 싶은 걸 공부하면 노는 거랑 공부하는 걸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아도 돼요. (2021.07.05)


박혜윤 작가는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 미국의 외진 시골에서 인터넷도 없이 7년간 살았기 때문이다. 돈 또한 거의 벌지도 쓰지도 않았다. 그런 그의 실험이 된 삶과 철학을 담은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가 최근 다산초당에서 출간되어 예상치 못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문장 수집 생활』의 작가 이유미는 이 책을 두고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까지 밑줄 그으며 읽은 책, 아직 안 읽은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책, 처음 꼽아 보는 올해의 책”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에세이인가 하면 철학서고, 남의 삶인데 이상하게 내 삶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이 책을 쓴 박혜윤 작가를 만났다. 



책 제목이 『숲속의 자본주의자』입니다. 흥미롭고 어리둥절한 제목이에요. 인문서 같기도 하고, 분야를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도 들어요. 작가님은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고 원고를 쓰셨나요?

‘숲속’과 ‘자본주의자’처럼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분법적인 사고예요. 저는 숲의 생활도 자본주의도 사실 선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긴 대량생산 덕분에 어지간해서 굶을 걱정은 안 하고 살 수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이전만큼이나 고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제가 살아갈 방법에 대해 고민했어요. 제가 결국 하려던 이야기는 현재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귀촌과 도시에 사는 것, 자본주의를 등지는 것과 열심히 생산 투자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두 개로 칼로 자르듯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가정과 일을 다 잡는다든지, 일도 하고 자기계발도 해야 한다든지 등 양쪽을 다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도 달라요. 이런 과부하도 사실은 두 개를 구분하니까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이들이 학교 다니면서 학교 공부랑 노는 건 양자택일해야 하는 이분법의 대상이잖아요. 그런데 어린 인간은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게 돼 있거든요. 놀이식 수업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궁금하고 배우고 싶은 걸 공부하면 노는 거랑 공부하는 걸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아도 돼요. 

독자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이 책을 통해 어떤 독자들을 만나고 싶으셨나요?

저에게 가르침을 주는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여기서 말하는 가르침이란 위에서 아래로 정해진 진리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에요. 대등한 관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 역시 자신 삶의 주인공이자 작가라는 느낌을 갖기를 바랐어요. 독자들이 그런 느낌을 담아서 쓴 서평을 보면 제가 배워요.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담아서 쓰는 서평들이 많아서 기뻐요. 독자와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적으로 오래 알았던 지인인데, 책을 읽고 난 후에 자신의 삶의 고유함, 독특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며, 그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이전에는 사적으로 속속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였어요. 이렇게 독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삶이고 그 삶의 주인공이 ‘나’라는 확실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은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 악으로도 선으로도 해석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시는데요, 작가님의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이 따로 있나요? 

자본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학문적인 논의는 제가 알 수 없는 분야에요.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요. 하지만 인류의 대부분이 자본주의의 틀 안에 살아요.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환경파괴가 가속화된 건 사실이에요. 인류 전체가 당면한 어려운 과제죠. 하지만 이건 인류 집단의 문제예요. 저는 자본주의가 전제 조건이 된 지금의 사회에서 개인으로 살아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런데 개인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자본주의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 중에 하나가 개인의 소외거든요. 자본주의가 성숙할수록 돈의 순환과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개인이 단절되어야 한다고 해요. 온 가족이 함께 살면서 밥해 먹고 협동해서 살면, 돈을 쓰는 경제 활동이 발생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개인으로 쪼개지면 돈으로 거래되는 시장이 생겨요. 외식도 해야 하고, 어린애도 같이 사는 친척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돈 주고 맡겨야 하고.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렇게 온 가족이 모여 살 때가 천국이었나요? 가족의 억압에 짓눌려서 여성이나 어린애들은 자아라는 게 없이 살았잖아요. 저는 지금의 상태가 좋거나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외로울 수도 있고, 드디어 나다운 자아를 발견할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개인의 선택이 많아져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드디어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요. 



『월든』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느껴져요. 독자들 중에서도 『월든』을 다시 읽어보겠다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여기에 대해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책을 통해 독자들이 『월든』을 버리기를 바라는지, 혹은 『월든』에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어요. 불교 관련 책에 뻔질나게 나오지만, 매번 마음이 덜컹하는 부분은 ‘부처를 버려라, 부처를 죽여라’라는 말이에요. 부처의 가르침을 반박한다거나 『월든』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과는 다르지요.

『월든』과 함께 언급되는 책이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에요. 사실 제가 막연하게나마 시골에서 살아볼까를 생각하게 된 게 십 몇 년 전 『조화로운 삶』을 읽고 나서부터였어요. 무척 열광했고, 니어링 부부처럼 살고 싶었어요. 반면, 『월든』은 대학 전공 수업 때문에 훨씬 먼저 읽었는데도, 처음 읽었을 때 괴상하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그런데 『조화로운 삶』은 저에게 절망감을 줬어요. 그들 부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위대한 현자예요. 『조화로운 삶』에 하루에 4시간만 노동을 하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거든요. 저도 따라 하느라 하루 4시간 노동을 했더니 죽을 것 같았어요. 니어링 부부가 하는 단식이나 식단도 따라 해보려고 했는데, ‘난 밥을 먹어야 행복해지는 돼지구나’하는 깨달음을 얻고 정말 우울해졌지요. 그때 『월든』이 왜 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언뜻 생각이 났어요. 니어링 부부에 비하면 소로는 전혀 완벽하지 않은 거예요. 숲에 들어가 산 것도 겨우 2년이고, 책도 사실 이런저런 변명처럼 들리는 것들이 무척 많아요. 하버드 대학까지 나와서 나약한 지식인이나 사회 부적응자처럼 투덜거리기도 하고. 

그러던 중 스코트 니어링이 아들을 만나지 않고 살았다는 걸 읽게 됐어요. 아들이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금융회사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말이죠. 아들이 그만둘 때까지 만나지 않겠다고 했대요. 그때 저에게 있어서 『월든』 『조화로운 삶』이 다르게 읽히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숲에서 살고, 농사를 짓고, 자본주의의 나쁜 점을 개선하는 방법을 따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로가 보여준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태도를 닮고 싶은 거였죠. 니어링 같은 현자가 되어서 그 반대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배척하면서 살아갈 깜냥이 저에게는 없다는 걸 알았어요. 

물론 『월든』도 자연을 예찬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소로의 삶의 과정이 더 중요한 거예요. 『월든』이 괴상하게 느껴졌던 건 그만큼 그가 자신의 삶의 고유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월든』을 마구 찬양하고 싶지 않았어요. 소로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싶지만, 소로처럼 살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시골에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은 막연히 ‘부럽다, 자유롭겠다’ 말하기도 하고 ‘회피했다’라고 단정 짓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보시는 작가님의 선택은 어떤 것인가요?

저희 가족이 엄청나게 특이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 시대의 흐름에 가장 앞도 아니고, 중간보다는 조금 앞서 나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시대가 바뀌면 개인들의 생각도 일상도 바뀌는데, 그 변화가 모두에게 동일한 시점에 오는 건 아니니까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지는 옛날이라, 자발적이든 강제로든 누구나 어느 나이에 백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고요. 저나 남편이 일간지 기자로 일할 때도 이미 전 세계의 전통적인 미디어가 몰락한다는 이야기는 흔했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시골에서 살겠다, 미국에서 살겠다, 은퇴를 하겠다고 딱 결정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결정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세상도 아니고요. 시골이든 도시든, 심지어 집에 인터넷이 없어도 도서관에만 가면 공짜로 전 세계와 연결될 수 있고, 이민을 가도 한국과 사적으로나 일적으로도 연결되는 게 이 시대의 변화잖아요. 이 시대에는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떤 국가, 직장, 학교에 소속된 것이 어떤 보장이 아니니까요. 일단 시골에 온 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구하고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직접 경험이 갖는 힘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시골이나 다른 나라로 이사 가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직접 경험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날것의 경험 말이에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자기는 시골에 갈 생각이 없는데도 지금의 삶을 되묻게 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비판받는 기분이 들지 않아 좋다는 이야기도 많았고요. 작가님의 이야기가 왜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 걸까요?

아. 그건…… 제가 딱 그런 사람이라서 그럴 거예요. 비판받을 만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죠. 시골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도 아니고요. 사실 적응하려는 노력도 많이 안 한 셈이에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하드코어로 자연친화적으로 삶을 꾸리고, 자급자족하는 재주도 뛰어난 분들이 요새는 정말 많아지고 있어요.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분들인데, 저는 그 경지 근처에도 못 가요. 책에도 썼지만, 농사도 조금 짓다 말다, 저희 가족은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패스트푸드점 가는 걸 손꼽아 기다리고, 빵도 밀을 직접 갈긴 하지만 자연발효 대신에 이스트를 사용해서 구워요. 아이들도 홈스쿨 하면 정말 좋은데, 저는 도저히 귀찮은 걸 감당할 수 없어서 그냥 공립학교에 보내요. 어느 분야에도 남을 가르치고 할 만한 게 없죠. 그렇게 엄청나게 느리고, 때로 뒷걸음도 많이 치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삶의 방향을 기억해요. 그것도 항상 365일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잊었다가도 다시 생각해내는 거죠. 그건 도시든 시골이든 미국이든 한국에 살든 동일한 마음의 자세니까요.



글이 여러 편 실려 있는데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 있다면 어느 것일까요?

‘꿈이 삶을 가로막을 때’라는 글이요. 제가 강렬하게 이루고 싶은 꿈도 없고, 그러다 보니 포기를 잘하는 게 콤플렉스였어요. 꿈을 향해 가면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사람에게는 괜찮다는 위로를 할 수도 있고 희망을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도 해당이 안 돼서 창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동안 ‘포기해도 괜찮은 법’ 그런 주제로 폴더를 만들어서 원고를 쓰기도 했어요. 그런 제 자신에게 건넨 위로이자, 채찍질 같은 거예요. 억지로 꿈을 만들어내지 말고,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하되, 그럼에도 평범한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뜨겁게 사랑하고 싶었으니까요. 그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의 결말은 평범하고 허무해서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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