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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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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요. (2021.06.08)


2018년 4월,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글이 한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 제대로 진상 규명되지 못한 세월호 참사와 달리 1995년 일어난 삼풍백화점 참사는 일개 공무원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처벌 받았음에도 그 불행으로 인해 15년간 지옥에서 살았다는 고백이었다. 이 글은 국가적 재난이 어떻게 개인을 망가뜨리는지 낱낱이 공개하고,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지금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렸다고 역설한다. 

그의 글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에게는 경종을 울리고,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반성을 안겨주었다. 이 글을 통해 작가가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말한다. 모르면 그럴 수 있다고. 그러니 계속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 이게 어떤 슬픔이고 또 고통인지 사람들이 알 때까지 자꾸자꾸 말하기 위해 쓴다. 모든 국가적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지가 낳은 비난의 화살이 날아가지 않도록.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다짐의 기록이다.



올해가 삼풍백화점 참사 26주기(1995.6.29.)예요.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날의 이야기를 꺼낼 결심을 하신 이유가 있나요? 개인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시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요. 이런 식의 사회적 참사가 어떻게 개인의 생의 지축을 흔드는지 사람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나는 아니까, 겪었으니까, 그래서 말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힘드시겠지만, 사고 당일 기억나는 것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6월 말이라 무더위가 한창이었는데, 종일 백화점 안이 무척 더웠어요. 오전부터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덕분에 손님들이 평소보다 적어 한가했고요. 사고가 나기 불과 몇 초 전에 저는 무너진 건물에서 무너지지 않은 건물로 막 발걸음을 옮겼던 때였는데, 그때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고 바람이 몹시 불었어요. 나중에 알았어요. 건물의 상판이 한층 한 층 차례로 무너지면서 그 압력으로 건물 내부에서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에 사람이 빨려 들어가고 튀어나오기도 했다는 사실을요. 사고가 나자 바로 암전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웅크리고 자리에 주저앉는 바람에 머리에서 등 발 뒤꿈치까지 건물 잔해에 맞아 외상을 심하게 입었어요. 그런데도 너무 놀라서 아프지도 않았어요. 단지 뜨거운 액체가 몸에서 흐르고 있다 정도만 느낄 수 있었죠. 비상구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한테 피비린내가 났어요. 겨우겨우 출구를 빠져나오니 천지에 회색 먼지가 가득했어요.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되겠네요”라는 주변의 물음에 “그렇지 않다, 쓸수록 아프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종의 죄책감이 들었어요. 제가 침묵하는 동안에도 삼풍백화점은 계속해서 형태와 이름을 바꾸어가며 우리 사회에 나타났으니까요. 그러다 끝내 2014년에 터진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이 일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인지 자세하게 기록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저는 2014년에 투표권이 있던 어른이고 시민이었기에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식의 사회적 참사가 대한민국에서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람 목숨보다 돈이 좋다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를 다치게 하며 쓰는 글이라고 해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면 피를 내서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싫어하는 혹은 내키지 않는 일도 하는 순간 사람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하게는 지하철에서 먼저 내리고 탈 수 있게 기다려 준다거나, 뛰어오는 이를 위해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잠깐이라도 잡고 있다던가 하는 일들이요. 이렇게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갖추게 되는 순간이 습관과 태도로 자리 잡으면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일들을 겪어냈음에도 “슬프지 않았던 날들이 모두 행복이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많은 트라우마와 불행 앞에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을까요? 

흔히 이런 말을 하잖아요. “청춘과 행복은 과대 포장되어 있다.” 이 말에 동의해요. 불행들을 겪고 보니까 오히려 행복이 어떤 건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한동안 행복을 오해했어요. 불행이 너무 선명하게 찾아와서 행복도 그렇게 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에요. 행복은 불행처럼 어느 날 내 방 창문을 부수며 들어오지 않아요. 서서히 조용히 일상에 머물죠. 제 기준에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은 상태거든요. 오전에 집을 나간 가족들이 전부 돌아와 함께 식탁에 앉는 평범한 날들이요. 아니면 오랜 만에 전화한 친구의 목소리가 밝고 건강해 한참을 웃으며 서로 통화할 때 같은 순간들. 사실 이런 별것 아닌 일상들이 진짜 행복인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런 일상들을 잃기 전에는 몰라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아요. 저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상실’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아요. 내가 빼앗긴 게 과연 무엇인지 말이에요.

불행을 겪은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까요? 가장 도움이 되었던 위로의 순간은 언제이셨나요?

일단 본인 스스로 불행을 이해하고 납득할 시간과 여력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과도한 관심과 지나친 애정은 오히려 부담스럽거든요. 생각해보세요. 마음이 아프든 몸이 아프든 원없이 망가져 머리를 감지 않아 떡이 진 머리를 하고 일주일 넘게 누워 있는데 굳이 평소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손님이 찾아오면 어떻겠어요. 그들이 온전한 선의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려 입고 왔다고 해도 마냥 달갑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불행을 겪은 이들의 마음은 정말 간장 종지만큼 좁아져요. 쉽게 상처 입고요. 이때는 위로의 말들도 대체로 고깝게 들려요. 그러니 말은 아끼고 묵묵히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상대에게 건조한 사인만 건네세요. ‘나 여기 있어, 언제든 힘들 때 연락해’ 정도로요. 제 경우에는 오히려 별로 친하지 않은 필리핀에 사는 전화 영어 선생의 위로가 그 누구에게 받은 위로보다 진심으로 느껴졌어요. 그러니 이런저런 틀에 박힌 형식적인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진심은 어떻게 해도 다 느껴지는데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평소에 저는 이른바 ‘잉여 인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 애초에 경쟁 선에 애초에 서보지도 못한 사람들, 오랜 불행으로 무기력해진 사람들, 그리고 억울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찾아 세상에 소개하고 싶어요. 저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믿어요. 인간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겠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모두가 돈을 말하는 요즘 같은 시절에 투자 지침서가 아닌 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미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고 지적이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분들이라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농담이고요(웃음). 아마 제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고 공감하기 위해 읽지 않으실까 하는 짐작합니다. 그런 분들께 저는, 제가 어떻게 힘들게 살았는지에 대해 너무 집중해서 읽지 말고, 트라우마와 이런저런 생의 불행들을 견디려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대해 더 눈여겨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산만언니

1995년, 스무 살에 삼풍백화점에서 일당 3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몹시 아팠다. 밖에서는 멀쩡히 웃고 떠들고 잘 지내고 돌아와 가만히 손목을 긋기도 했고, 일하다 말고 갑자기 집으로 가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삼키고 누워 있기도 했다. 그 후로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고, 그 일을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은 생존자가 침묵하는 딱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는 침묵하지 않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의 생존자가 말한다〉를 썼고, 이를 계기로 딴지일보에 〈저는 삼풍의 생존자입니다〉를 정식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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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저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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