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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의 그래도, 서점] 헛되이 유명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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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돈 때문이다. 책 읽는 인구는 줄어들고 마진율은 낮고 아무리 팔아도 유지가 어렵다보니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 모임도 모으고, 행사도 하고, 어떤 서점은 유튜브도 만든다. (2021.06.04)


“같이 하고 싶습니다. 저희 단체에서 벌이는 이벤트에 참여해주시겠어요?”

설명을 듣고 질문한다. 

“네. 알겠습니다. 참여하면 서점 공간 일부를 내어주고 몇 가지 관리를 해야겠네요. 그렇다면 서점에는 뭐가 돌아올까요?”

3초쯤 답이 없다. 진행료가 책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다. 

“저희 인스타그램에 서점 이름이 올라갑니다. 서점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죄송합니다만, 저희 서점은 더 이상의 홍보를 원하지 않습니다.”

수화기 너머 상대가 웃고 있다. 느껴진다. 건방지다가 여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뜻밖에 응원을 받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계산대 앞에 서 있던 남자분이 명함을 내민다. 

“드라마 장소 섭외팀입니다. 서점에서 드라마를 찍고 싶어서요.”

“본점은 대관을 하지 않습니다. 2호점은 가능하니 가보시겠어요? 여기서 가까워요.”“딱 여기가 좋은데요. 남자 주인공이 서점에서 책을 사서 나가는 장면만 찍으면 됩니다.”

서점이 좁아서 촬영팀이 못 들어올 거다, 카메라 두 대만 들어오면 된다, 집기가 망가지거나 책이 훼손되는 것이 싫다, 조심하겠다, 그래도 안된다, 정말 조심해서 찍겠다, 말이 오고가던 중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면 서점에 손님도 많이 올 테고요.”

“아뇨. 사실은 손님이 더 많이 오는 거 원하지 않아서요.”

그가 웃는다. 소리 내어 신나게 마치 통쾌하다는 느낌이다. 

“알겠습니다. 2호점은 된다는 말씀이시죠? 그리 가보겠습니다.”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대관료가 얼마나 되느냐 물었다. 액수를 이야기했더니 ‘너무 적어요. 더 받으셔야 해요. 더 드릴게요’라는 답이 와서 어리둥절. 현실감각 없어 보이는 주인이 안쓰러웠을까. 

라디오 작가로 20년. 나의 DJ는 대부분 당대 최고 아이돌이거나 특급 배우, 국내 최고 모델이었고 마지막 방송 작품은 GD 다큐멘터리였다. 그들이 가진 빛만큼 혼자 품어야 하는 어둠을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해 유명해지지 않으려는 방식으로 서점을 걷게 했다.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실은 두려워서다. 유명한 사람들이 어떤 고통 속에 사는지 바로 곁에서 보고 겪었다. 조금 가난하더라도 덜 위험하게 살게 하려 했다. 나는 물론이고, 서점까지도 말이다.

꿈이 깨어진 것 같다. 요즘은 거의 매일 DM을 받는다. ‘유명한 서점에서 비닐을 쓰면 안 되죠.’ 새벽 2시의 메시지. 비닐을 안 쓰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다고 랩핑 되어 온 책을 다 벗겨내고 팔 수는 없지 않나. ‘유명한 서점이 되었다고 초심을 잃었네요. 왜 3년 전에 갔을 때보다 불친절하죠? 그 때는 이야기도 나누고 좋았는데. 오늘 가서 다정하게 말 걸었는데 무뚝뚝하게 답을 했어요.’ 손님, 서점은 책 파는 곳이지 3년에 한 번 이야기 나누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서 책 사진을 찍었더니 직원이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민망하게. 왜 못 찍게 하는 거죠? 유명해졌다고 텃세하는 건가요?’ 맙소사. 손님, 제가 알기론 지금 저작권을 위반하신 듯합니다. 사진촬영과 복사가 뭐가 다를까요? 아침 7시에 숨소리만 녹음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분도 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오래 가는 서점이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헛되이’ 이리 되었을까?

오늘 아침에 다른 서점 온라인 마켓에서 책을 몇 권 샀다. 조용히 혼자 응원하던 서점인데 직원이 인스타그램에 글을 적었다. ‘사장님이 번아웃이 왔다. 내가 서점 일에 몰두하다 번아웃 왔을 때 사장님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한 달간 쉬라고 했다. 이번엔 내가 서점을 지키고 사장님을 쉬게 하려고 한다. 사장님이 고정비용을 걱정했다. 내가 어떻게든 채워낼테니 서점 일은 잊고 놀다 오라고 했다.’ 뭉클해졌다. 응원의 댓글을 달고 책을 주문했다. 사장님이 편히 쉬고 직원이 안심하고 일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모두 돈 때문이다. 책 읽는 인구는 줄어들고 마진율은 낮고 아무리 팔아도 유지가 어렵다보니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 모임도 모으고, 행사도 하고, 어떤 서점은 유튜브도 만든다. 계속 메시지를 발산하니 사람들이 모인다. 처음엔 주로 결이 맞는 사람들이다. ‘좋은 책을 더 많이 나눌 수 있으니 신난다’ 구간을 지나면 ‘헛된 유명세의 고통’ 지점이다. 확률 문제다. 100명이 모였을 때 서점과 결이 안 맞는 사람이 1명이었다면 1000명이 되면 10명으로 늘어난다. 1명은 괜찮았고 5명은 견딜만했지만 10명이라면 어떨까. 일은 많아지고 사람은 힘드니 번아웃 당첨이다. 

서점 6년 차. 유명해지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워낙 좁은 사회라 2.3명을 거치면 모두 다 아는 사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든 조금만 하면 금방 소문이 퍼진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 이름은 들어본 곳이라면 ‘나 거기 알아. 유명하잖아’가 되는 우리나라.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어! 나 여기가 거기구나. 들어가 보자’하는 사람들로 7평 공간이 꽉 차버린다. 책에는 관심 없고 사진 찍지 말라면 화를 내고 시집 앞에 서서 시집은 안 파냐고 묻는다. 허망한 얼굴로 앉아 있으니 불친절하다고 비난한다. 모르는 사람들로 꽉 찬 서점에서 우리를 살아남게 해준 고마운 단골들을 생각한다. 오래 못 봤네.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문 닫을 시간쯤이 되어 주변이 고즈넉해지면 삐그덕 문을 열고 반가운 얼굴들이 찾아온다. 

“몇 번 지나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못 들어왔어요.”라는 말에 눈물 날 것 같다. 마당 구석에서 놀고 있던 칠판을 꺼내 적었다. 

‘책을 보러 오시는 분이 아니라면 코로나 19가 종식된 뒤에 들러주시겠어요? 조용히 책을 보실 수 있도록 실내촬영은 삼가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소용 없었다. 창밖에서 ‘유명해졌다고 이제 들어오지 말라는 거야?’ 대놓고 빈정대는 분도 있었다. 6년을 서점에 몰두했다. 최선이나 최고는 못됐어도 온 힘을 다해 일해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때마다 헤쳐나가는 재미도 있었는데 ‘헛되이 유명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답은 안 보이고 속만 답답하다. 알려지지 않으면 유지가 안 되고, 유지하려면 알려야 하는데 난감하다. (배부른 소리라 하는 분도 있겠다. 포인트는 ‘헛되다’는데 있으니 부디 너른 이해를.)

결이 곱고 아름다운 사람만 방문한다면 고민이 끝날까? 땡스북스에서 책방매너에 대한 카드뉴스를 만들어 배포했다. 여러 서점들이 리포스트했다. 읽고 반응한 것은 본래 서점을 아끼던 매너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 “진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책 위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어요?” 단골들이 놀라며 말했다. 책을 훼손하고 서점을 폭파 지경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책방에 관심이 없다. 대형서점과 동네책방의 차이를 모르는 분도 많다. 아예 크고 요란하게 전국민 작은 책방 문화 익히기 대회라도 열어야 할까. 입구에서 매너 테스트 용지를 나눠주고 합격한 사람만 입장시킬까. 어, 또 은근히 재밌어진다. 궁리 많은 책방 주인은 조용히 단단하게 오래 가는 방식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오지 않은 손님을 기다리며 또 하루를 보낸 책방 주인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데 매출은 오르지 않고 망가진 책을 정리하며 한숨 쉬는 누군가, 그래도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하고 다음 날이 되면 또 희망을 품고 문을 여는 세상 모든 서점 주인에게 우정과 응원을, 

멸종 위기의 조용히 책 읽는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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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현주(서점리스본 대표)

서울 연남동에서 서점 리스본과 포르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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