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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안 바뀐다? 그거 통찰 아닙니다

『지금은 없는 시민』 강남규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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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안 바뀌어. 너무 애쓰지 마.” 이런 말들이 마치 ‘통찰’처럼 전수되는 시대입니다. 저의 흑역사를 활자로 적어 오래 보존되도록 한 것은 ‘사람은 바뀐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함이에요. 저는 변해왔고,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2021.05.25)


한국은 “정치적 부족주의”(에이미 추아)가 지배하는 사회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정치 성향(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기타 정당), 세대(86세대/MZ세대), 성별(이대남/이대녀) 등에 따라 나뉘어 각축을 벌인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부족명이 발명되는 세상”(장석준)에서 ‘부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언어와 담론은 ‘힙’하지 못한 것, 낡은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런 점에서 강남규 작가의 『지금은 없는 시민』은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어떤 공백의 영역에 시민의 자리가 있다”며 이제는 낡고 진부한 말이 된 것만 같은 ‘시민’이라는 단어의 복원을 시도한다. 강남규 작가에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시민의 역할, ‘정치적 부족’ 가운데 ‘젊은 세대’라는 부족 등에 대해 물어봤다.



『지금은 없는 시민』이라는 제목이 특이합니다. “세태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제목”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주제로 서로 다른 곳에 쓴 글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나름대로 요약한 제목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란 각자가 사회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는 주체들입니다. 그러나 소위 촛불혁명 직후 정권이 교체된 뒤인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주인됨’을 잘 행사하지 않죠. 특정한 정당이나 대통령에게 정치적 판단을 일임하거나, 촛불 이후의 사회도 변하지 않는다며 냉소하거나, 어떤 문제를 마주해도 ‘나’가 아니라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실천을 제쳐둡니다. 시민이 승리한 자리에 역설적으로 시민이 사라진 상황, 이걸 ‘지금은 없는 시민’이라고 정리해봤어요. 언젠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시민,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있을 시민. 냉정하게 현실을 진단하면서도 낙관적으로 혹은 의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을 담아보려고 했는데,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네요.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이대남’ ‘이대녀’ 등 젊은 세대에 관한 관심이 커졌고, 이 책도 젊은 저자(1990년생)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990년대생에 턱걸이로 걸친 덕에 실력 이상의 주목을 받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언론이 ‘1990년대생 필자’에 주목하는 맥락은 조심스럽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흔히 젊은 필자들은 당당하고 거침없이 86세대와 기득권에 선을 긋는다는 점에 주목하죠. 실제로 90년대생 필자들이 1990년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성향을 갖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들 그게 꼭 정의롭고 선한 방향으로 표현되는 것만도 아니고요. 어쨌거나 언론은 90년대생 필자를 주목함으로써 86세대를 고립시키고 기성 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글을 쓰는 필자는 기성세대 안에도 충분히 있어 왔고, 기성 정치를 마냥 거부하면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만 추앙하는 것도 일종의 정치혐오적인 맥락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젊은 저자’에 대한 관심이 개인으로서는 감사하면서도 시민으로서는 약간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스승을 잃어가는 시대'에서 조국 사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보면서 윗세대 ‘스승’들에게 느낀 실망감을 말씀하셨습니다. 일종의 세대론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문제를 세대론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스승을 잃어가는 시대'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건 크게 둘이었습니다. ‘불법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던 진보 진영의 스승들, 그리고 박원순 전 시장을 지키기 위해 2차 가해를 일삼던 진보 진영의 스승들입니다. 이런 태도, 즉 ‘불법만 아니면 된다’는 것과 ‘성폭력 피해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는 사실 제 동 세대에서도 종종 관찰되죠. 조국·박원순 사건에서 유독 윗세대의 오류가 도드라진 건 그 사건들이 그 세대 권력자의 일이었기 때문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 문제들에 관한 한, 세대론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증진과 여성에 대한 존중이 더 정확한 접근법이지 않나 싶어요. 윗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도 비슷하게 부족한 것들이고요.

'같이 돌파하는 정치'에서 “정치인의 앞이나 뒤가 아니라 옆자리에 서겠다는 지지자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평범한 시민이 정치인의 옆에서, 정치의 주체로 서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정치인은 록밴드로 치자면 ‘프론트 퍼슨’(공연에서 쇼맨십을 책임지는 멤버로, 대표적으로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프론트 퍼슨이 없으면 공연을 성공시키기 어렵지만, 프론트 퍼슨만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론트 퍼슨이 다른 멤버들의 연주 이상으로 튀어버리면 공연은 무너질 테고요. 프레디 머큐리의 예를 들었으니 하는 말이지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혼자 튀려고 할 때 다른 멤버들은 거기에 쉽게 맞춰주지도, 혹은 그를 쉽게 손절하지도 않았어요. 그가 옳은 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바로잡아주려고 했죠. 

그러나 또 동시에 프레디 머큐리는 그의 창의성으로 다른 멤버들의 역량을 키워내기도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정치인과 지지자의 이상적인 관계가 여기에 다 담겨 있는 것 같네요. 무작정 옹호하지도 말고, 조금 엇나갔다고 쉽게 손절하지도 말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 써놓고 보니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요(웃음).

노동 문제를 다룬 4장에서 김진숙, 문중원 등 상대적으로 알려진 노동자들의 투쟁과 더불어 언론에서 단신으로만 다룬, ‘이야기’가 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죽음을 다룬 게 기억에 남습니다. 왜 어떤 죽음들은 ‘이야기’가 되지 못할까요.

최근에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과 ‘평택항 이선호 씨 산재 사망 사건’을 대비시키는 목소리들이 높았습니다. 언론이 앞의 사건에는 관심을 주지만 뒤의 사건에는 관심을 덜 준다는 거였죠. 필요하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뒤의 사건에 관심을 주는 소수의 언론들도 청년이 아닌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요. 실제로 통계상 50대 이상 노동자가 산재로 가장 많이 죽지만, 우리의 시선은 청년이 사망한 자리에만 머뭅니다.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은 드물기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중장년 노동자들의 죽음은 너무 잦기 때문에 더 이상 안타까울 일도 아니게 된 걸까요. 어떤 죽음들이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죽음을 ‘불쌍한 일’이 아니라 ‘부당한 일’로 이해하고, 관심 가지며 대책을 요구할 때라야 일하다 죽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치지 말아야죠. 질리지도 말아야겠고요.

비판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분석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칼럼의 마지막 문장이 “냉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취를 이룬다”인데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에요. 함께 싸우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동안에도 끝까지 싸워서 끝내 승리한 사람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적당히 손절하고 관둬라, 그 시간에 다른 일 했으면 성공했겠다’, 그런 저열한 조롱들을 당하면서도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에 끝까지 싸워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존재가 그 자체로 희망의 근거입니다. 



아우트로에서 작가님의 ‘흑역사’를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응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을 읽은, 혹은 읽을 동료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람 안 바뀌어. 너무 애쓰지 마.” 이런 말들이 마치 ‘통찰’처럼 전수되는 시대입니다. 저의 흑역사를 활자로 적어 오래 보존되도록 한 것은 ‘사람은 바뀐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함이에요. 저는 변해왔고,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누군가는 바뀝니다. 바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말 걸고, 끊임없이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 그게 시민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치라고 생각해요. 사람 안 바뀐다는 냉소적인 말에 쉽게 굴복하지 말고,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으로 함께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강남규

시민의 책임과 역할을 고민하는 평범한 시민. 지금은 비영리재단에서 일하며 문화사회연구소, 이내창기념사업회에 참여하고 있다. 1990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고양시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학과 강의보다는 대학언론 활동과 사회운동에서 정치를 더 많이 배웠다. <미디어스>와 <경향신문>에 정치와 사회에 대한 칼럼을 연재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야 시민으로서 우리의 책임과 윤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구조가 바뀌어야 개인이 바뀐다’는 명제와 ‘개인이 바뀌어야 구조가 바뀐다’는 명제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구조가 바뀌지 않아도 바뀔 수 있는 개인들이 바뀌어야 구조가 바뀐다’고 복잡하게 대답하는 글을 주로 쓴다.



지금은 없는 시민
지금은 없는 시민
강남규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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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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