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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글로 여행하는 기분을 낼 수 없을까?”

에세이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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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순 없을지 계속 고민했어요. 어느 순간, 편지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2021.04.19)


여행이 사라진 코로나 시대. 김민철 작가의 책 『모든 요일의 여행』을 꺼내 읽던 독자들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행을 못 가서 너무 답답해요’ ‘작가님 책을 읽으니 정말 여행 가고 싶어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애틋한 소식을 전해 받은 김민철 작가는 편지를 쓰기로 한다. ‘지금 여기’가 아닌 ‘언젠가의 그곳’에서, “여행을 도둑맞은 당신에게. 마스크를 꼭꼭 눌러쓴 출근길 지하철에서 지난 여행 사진을 뒤적거리는 당신에게.” 

당장 여행을 떠날 순 없지만, 그때 그 공간에서 행복했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을 순 있다. 김민철 작가의 신작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는 아직 여행을 잊지 못하고 있는 당신에게 여행자의 방식으로 건네는 다정한 위로다. 



이 시간을 건너면 다시 여행이 찾아올 거야. 봄꽃처럼 돌연 피어날 거야. 마치 계절의 흐름을 믿듯이 여행의 생명력을 믿자. 다시 여행 가방을 싸는 그날까지 몸도 마음도 건강하길. 

- 2021년 봄, 민철 (334쪽)


아직도 여행을 잊지 못한 우리에게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종종 샘이 날 때가 있어요(웃음). 여행을 가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울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읽을 땐 그런 기분이 안 들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좋은 곳에 갔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책을 읽으면서 ‘아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지’ 하며 각자가 가진 여행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편지 형식을 택했어요. 

편지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떠올렸나요? 

작년 5~6월쯤 인스타그램에서 DM을 많이 받았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못 가서 요즘 『모든 요일의 여행』을 다시 꺼내 읽고 있는데, 너무 떠나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죠. 처음에 그런 DM을 받았을 땐 ‘다들 얼마나 답답할까?’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비슷한 메시지를 계속 받다 보니까 ‘올해 여름에는 다들 휴가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글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순 없을지 계속 고민했어요. 어느 순간, 편지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만난 적 없는 당신에게’ 쓴 편지는 출판사 이벤트로 진행되었어요. 책이 출간되기 전, 당첨자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쓴 편지를 보내주는 이벤트였는데요. 여행지를 샌프란시스코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해요.

2006년에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가면서 실제로 비슷한 이벤트를 했었어요. 여행을 가면 왠지 외로울 것 같아서, 당시 제가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샌프란시스코 소인이 찍힌 엽서를 보낼 테니, 원하는 사람은 주소를 남겨달라는 글을 올렸거든요. 그때 20명 정도가 주소를 남겨주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엽서를 써서 보냈던 경험이 있어요. 그 이벤트를 생각하며 이번에도 편지를 써봐야겠다 싶었던 거죠. 

이벤트에 당첨되어 편지를 받고, 거기에 답장을 쓴 독자들도 있더라고요.

맞아요. 답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편지를 썼는데, 실제로 답장을 써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너무 신기하고 좋았어요.

제목이 좋다는 리뷰도 많았어요.  

저는 보통 제목이 먼저 정해진 뒤, 책을 쓸 때가 많았어요.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이 그렇고요. 『하루의 취향』도 제목이 나오고 나니까 비로소 뭘 써야 할지 감이 잡혔거든요. 아마 광고일을 할 때의 버릇인 것 같아요. 슬로건이나 콘셉트가 명확히 잡혀야 글이 떠오르는 편인데요. 이번에는 편지라는 콘셉트만 있었고, 제목이 끝까지 나오지 않아서 너무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여행을 부칩니다’처럼 여행과 편지라는 의미가 담긴 제목을 정했었는데, 편집자님이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계속 고민하다 어느 날 문득 떠올랐죠. 그런데 이제니 시인의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와 비슷한 거예요(웃음). 바꾸기엔 너무 마음에 드는 제목이라, 이제니 시인에게 메일을 보내서 허락을 받았어요.

여행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라는 말을 꼭 넣고 싶었어요. 저의 여행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있잖아요. 다들 잊지 못하는 그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편지에는 사소한 이야기가 담기잖아요

편지를 쓰는 작업은 어땠어요? 여행자와 수신자를 동시에 떠올려야 하기에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여행지와 편지를 보낼 인물을 매치하는 게 좀 어려웠어요. 사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땐, 모두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보니 여행지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연을 맺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신혼여행지에서는 남편을 소개해 준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제가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포르투갈 마르방에 여행을 다녀오신 박웅현 CCO님께는 마르방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는 등 그 여행지의 추억과 연관된 사람들을 맞춰나갔죠. 

한편으로는 좋았을 테고요. 편지는 내밀한 글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담길 수 있잖아요.

맞아요. 언젠가 꼭 한번 쓰고 싶은데, 너무 사소해서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미뤄두었던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어요. 편지에는 원래 사소한 이야기가 담기는 법이니까요. 전작들에 썼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쓴 편지도 있는데요. 이전 책에서 이야기를 했다 할지라도, 편지라고 생각하니 완전히 다른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루르마랭에서 만난 화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모든 요일의 기록』에도 썼거든요. 그런데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니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할아버지와 헤어진 다음 날을 이야기하게 되는 거예요. 그건 사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경험이잖아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함께 여행하다가 혼자가 되는 순간이 한 번쯤 있을 테니, 독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에게 쓴 편지도 있어요. 오소희 작가, 박웅현 CCO, 김하나 작가 등이요. 

처음 이 책을 구상할 때, 김하나 작가님에게 “편지 형식으로 책을 쓸 건데 괜찮을까?”라고 물었더니 “철군! 나한테 써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한 꼭지 썼고요. 박웅현 CCO님께는 출력을 해서 가져다 드렸어요. “책에 실으려고 편지를 썼는데, 싫으실 수도 있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럼 편하게 말씀해주세요”라면서 방어적으로 보여드렸는데 금방 다 읽으시고는 “너무 좋아. 실어!” 하시더라고요(웃음). 오소희 작가님께도 이런 형식의 책을 쓴다는 말은 했었는데, 언니에게 편지를 쓸 거라고 말하진 않았거든요. 나중에 언니한테도 썼다고 보여줬더니 “안 썼으면 울 뻔 했다”고 해서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지인들에게 쓴 편지는 모두 보여주고, 실어도 될지 허락을 받았어요. 다들 너무 좋아해줘서 제가 오히려 기뻤죠. 

만춘서점 사장님과의 인연도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오래 전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어요. 만춘서점 사장님이 그때 카페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남편과 우연히 거길 갔다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이틀 후에 또 방문했거든요. 저희 부부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저기요. 책 눈에 안 들어오는 거 알아요. 여기 와서 같이 술 마셔요”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땐 사양을 하고 그냥 헤어졌는데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이 출간되고 나서, 제주도에서 그 책을 사오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나중에 ‘소심한 책방’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분이 그 책을 손님들에게 추천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분이 만춘서점 사장님이었죠. 이후에 『모든 요일의 여행』을 쓰면서 트위터에 “여기서 행복할 것”이라는 문장을 올렸거든요. 그때 사장님이 “그걸 줄이면 여행이지요”라는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그 말이 너무 좋아서 홀라당 가져다가 썼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 됐죠. 그런데 사장님은 아직도 제가 그 카페에 있던 손님이라는 걸 기억 못하시더라고요(웃음). 

편지에 만춘서점에 조만간 또 갈 거라고 썼어요. 정말 다녀오셨어요? 

다음주에 가려고요. 편지에 썼으니 약속 지켜야죠(웃음).

 


역사 속 ‘여행기’에 잠시 살아본 건 아닐까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1년간 여행을 전혀 못 가게 되었잖아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는 사실 엄청난 집순이거든요. 그래서 별로 답답하지 않았어요. 집에 있으면 너무 행복하고, 집 앞 슈퍼에 나가는 것조차 불행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웃음).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때도 좋았고, 팀원들이 다 재택근무 할 때 팀장이라서 사무실에 혼자 나가 있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의외의 대답이에요(웃음).

물론 여행은 매 순간 그리웠죠. 해외에 못 나가니까 아쉬웠고, 실제로 여행 가는 꿈도 많이 꿨어요. 그래도 이 책을 쓰느라 좀 괜찮았던 것 같아요. 무슨 이야기를 쓸지 생각하면서 여행 사진 찾아보고, 지난 여행들을 돌아보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어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다녀온 마지막 해외여행은 어디였어요? 

미국 포틀랜드요. 마지막 포틀랜드가 될 줄 몰랐어요. 너무 그리워요(웃음). 

책을 읽는 내내 포틀랜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네가 어떤 인종이든, 종교이든, 출신이든, 성 정체성이든, 성별이든, 능력이든 우리는 환영해. 우리는 네 편이야. 너는 이곳에서 안전해(269쪽)”라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은 도시라니요. 

저도 한 번 다녀오고 완전히 반해서 이듬해에 또 다녀왔어요(웃음). 포틀랜드는 도시의 발전 방향 자체가 현대의 도시와 완전히 달라요. 자연친화적이고, 도시 중심가에 가도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대신 작은 상점들이 즐비해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건물을 지을 때, 건물 앞에 미술품을 놓잖아요. 포틀랜드에서는 건물을 한층 더 높게 짓고 싶으면 공원용 땅을 기부해야 해요. 그리고 조금만 경사가 있어도 ‘이곳은 각도가 몇 도라서 휠체어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없다’ 같은 메시지가 표시되어 있어요. 오래된 나무도 많고, 맥주도 정말 맛있죠(웃음). 도시의 슬로건조차 “Keep Portland Weird(포틀랜드를 이상하게 유지하자)”예요. 너무 매력적이에요.  

시칠리아 라구사에서 쓴 편지에는 “낡은 취향 전문가(64쪽)”라고 썼어요. 낡은 골목이 좋은 이유가 있다면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웃음). 제가 낡은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유럽여행 할 때 깨달았어요. 독일, 오스트리아, 프라하 등을 여행할 땐 좋긴 하지만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탈리아에 가니 쓰레기통까지 사진을 찍게 되더라고요. 그땐 막연히 ‘내가 이탈리아와 잘 맞나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스위스에 갔더니 갑자기 막 화가 나는 거예요. ‘내가 이 달력 풍경을 보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싶어서요(웃음). 이후 파리에 가니깐 또 너무 좋더라고요. 그제서야 제가 낡고 똑 떨어지지 않는 풍경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작가님은 왜 여행을 좋아하세요? 집순이임에도 자꾸 떠나고 싶은 건 왜일까요. 

여행은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매 순간, 내가 선택하는대로 여행의 모양이 만들어진다는 게 좋아요. 선택을 한다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드러내주는 행위인 것 같아서요. 일상에서는 그렇게 고민해서 선택할 일이 별로 없잖아요. 몇 시까지 출근하고, 무슨 일을 하고, 누굴 만나는지 대충 정해진 삶을 살다가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는 시공간에 저를 던져 놓으면 제가 무엇을 편하게 느끼고, 좋아하고, 못 견디는지 잘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여행을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인류 역사의 유일한 ‘여행기’에 운 좋게 살아본 게 아닐까.(331쪽)”라는 문장이 슬프게 공감됐어요.  

마치 역사에만 존재하는 ‘공룡기’처럼, 우리가 운 좋게 ‘여행기’에 살았던 건데 그동안 여행을 당연하게 생각해온 건 아닐까 싶었어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언젠가 다시 여행을 하게 되겠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쉽사리 떠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항공사들이 적자를 메꾸기 위해서 항공료를 인상할 테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 코로나19가 사라지려면 한참의 시간이 더 걸릴 테니까요. 최근에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비행기를 계속 타고 다니는 게 옳은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어쩌면 내가 마지막 여행기를 살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죠. 예전에는 수시로 구글에 들어가서 여행지를 검색했거든요. 회사에서 일하다 스트레스 받으면 항공권 찾고, 구글맵에 별표를 치곤 했는데 이제 그 취미가 아예 없어졌어요.


 

여행을 그리워하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우리가 이렇게까지 여행을 생각하고, 그리워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요즘은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봄에 열광했나’ 싶을 정도로 화창한 날씨에 감탄하는 걸 자주 봐요(웃음). 다들 많이 답답할테지만, 이 시간을 견디고 여행을 가면 정말 재밌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우리에게는 엄청난 여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김민철

남자 이름 같지만 엄연히 여자. 카피 한 줄 못 외우지만 엄연히 카피라이터. 회사를 꾸준히 다닌 덕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라는 직함까지 얻게 되었다. 회의 시간의 치밀한 필기를 바탕으로 『우리 회의나 할까?』를 냈고, 평소의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을, 틈틈이 떠난 여행에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모든 요일의 여행』을 썼다. 덕분에 종종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본업은 여전히 광고이며 일룸 ‘가구를 만듭니다’,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SK브로드 밴드 ‘See the Unseen’, 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T ‘생각대로 T’ 등의 캠페인에 참여했다.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저
미디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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