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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힙합에서 살아남기’ 혹은 ‘힙합으로 살아남기’

이즘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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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고 짜릿한, 힙합으로 살아남기. 메간 더 스탈리온의 'Body'가 신선하고 가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2021.04.16)


여느 때와 같이 음악을 듣다간 깜짝 놀랄 가능성이 크다. 카디 비와 함께한 싱글 'WAP'으로 한 번, 비욘세가 리믹스로 참여해 힘을 실어준 'Savage Remix'로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놓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의 곡 'Body'의 이야기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해보자. 단박에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여성의 신음이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정말 가득 채운다. 잠깐 잠깐의 효과음이 아니라 아예 신음이 사운드 소스가 되고 비트가 됐다. 적나라한 음성에 곡을 멀리하려 해도 이것 참 난감하리만큼 메인 멜로디가 선명하다. '하악 하악'하는 교성 위에 'Body'를 연음으로 연속해 뱉어 '바디야리야리야리'하는 후크 라인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청산별곡>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버금가는 중독성이다.

이게 바로 숨어 듣는 명곡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짜릿한 해방감이 몰려온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말하기 위해 그 지난했던 정숙한 여성 되기의 정반대 이미지를 끌어오다니. 시원하고 강렬한 전유이자 날카로운 전복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규정해온 여성의 이분화, 즉 '성녀'와 '성녀가 아닌 자'의 프레임을 벗어나 당당히 그 위에 섰다. 그것도 힙합을 통해서.



여성은 언제나 잣대 위에 올랐다. 혹은 일종의 소재나 수단으로 자리했다. 남근의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록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코닉한 로고로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 중인 영국 밴드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그들이 느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로커의 마초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이 소환됐고 때문에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처럼 노래하거나 오히려 여성성을 감추는 무성(asexual)의 전략을 취했다. 남성을 흉내 내는 전자는 윌슨 자매가 만든 밴드 하트(Heart), 재니스 조플린이 있으며 후자는 트레이시 채프먼, 수잔 베가 등의 포크 뮤지션이 떠오른다.

그중 힙합은 유달리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TLC, 니키 미나즈, 카디 비 등을 경유해 주체적 여성을 손에 쥐고 달린 음악가들의 궤가 있지만 그에 반하는 여성 대상화의 벽은 견고하다. 여전히 많은 래퍼가 '퍽(Fuck)'과 '비치(Bitch)'를 마침표처럼 사용한다. '이것이 힙합의 정신이다', '표현의 자유다'를 넘어서 '진짜 나쁜 여자들을 나쁘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격론이 앞 다퉈 튀어나온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는 본질주의적 접근. 설사 그 본질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성 차별적이라면 변해야 한다.

힙합을 즐기려면 검열과 염려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혹시 내가 '비치'는 아닌지, 그들이 말하는 '퍽'이 혹시나 나를 향하는 것은 아닐지. 노래 하나 듣는데 뭐 이렇게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꺼내오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언제고 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힘주어 철창을 걸어 잠그는 쪽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힙합의 '힙(hip)'함을 따라가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



'Body'는 그 장애물을 부수고 뒤집는다. 몸은 가장 먼저 사회에 귀속된다. 요새 회자하는 '말하는 몸'이라는 문장은 몸 안에 적힌 역사와 몸에 가해지는 이중, 삼중의 잣대를 잘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스탈리온은 몸을 가져와 말한다.

“Body crazy, curvy, wavy, big titties, lil' waist / 미친 몸매, 매끈, 늘씬, 큰 가슴, 호리호리한 허리”

세상이 원하는 틀에 맞춰 몸을 다져도 이를 부각해서는 안 되는 묘한 엄숙 문화를 뒤틀어 당당하게 자기 어필의 포인트로 삼았다. 힙합에서의 여성이 발화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존재였다면 노래 속 그는 다르다. 여성 스테레오 타입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감을 뽐낸다. 일면 무례하고 그래서 불경한 여성이 될 수 있겠지만 꼿꼿한 기지에서 힘 있는 균열이 뻗어 나온다. 남성성을 모방하거나 여성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관습적인 여성성의 덫을 피해 나가는 그의 서사에 호쾌한 자기다움이 묻어난다.

유로 댄스로 유럽과 미국을 이어낸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의 'Love to love you baby'에도 신음이 담겨있다. 이는 불세출의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의 소리는 보컬 액슬 로즈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 연기의 의도만은 다른 곡과 같다. 심지어 그들의 곡 'Rocket queen'은 성관계 중인 여성의 신음을 그대로 녹음해 사운드로 삼았다.



이렇듯 신음이 노래에 포함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음이 여성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경우는 많지 않다. 'Body'의 함의는 이처럼 다채롭다. 그는 은밀한 것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신음을 앞세워 자신을 그린다. '힙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번의 빗장을 걸어왔다면 그의 곡은 여성이 '힙합으로 살아남기'에 적합한 새 활로를 개척했다.

'Body'에는 힘센 여성성의 발화가 있다. 그의 존재 앞에 성적 자유인가 혹은 남성의 대상화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따라붙을 것이며 나아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철옹성의 논박이 뒤이어 올 것 역시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Body'를 풀어낼 맥락은 많다. 오랜 시간 괄호 쳐지고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멋들어지고 화려하게 해체했다. 여성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밝힐 수도 있다. 아찔하고 짜릿한, 힙합으로 살아남기. 메간 더 스탈리온의 'Body'가 신선하고 가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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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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