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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의 인생책] 소설가들은 대체 왜? - 『안나 카레니나』

<월간 채널예스>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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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앞서 말한 두 요소, 즉 재미와 사고의 확장이라는 효용을 동시에 안겨주는 고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안나가 주는 현실감은 그 어느 소설의 주인공도 도달하지 못하는 급으로, 읽다보면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이 정말 있었던 역사인물처럼 느껴지면서, 그 비극적인 일생에 처절히 잠겨 고뇌하고 연민하게 된다. (2021.04.01)


친구가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도대체 소설가들은 장소 묘사를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서너 줄이면 그냥 읽어주겠는데, 어떤 장소가 어디에 있고 무엇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두 페이지에 걸쳐 써놓은 걸 보면 속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인물묘사에 대해서도 투덜댔다. 어떤 인물인지 간략하게 알려주면 되지 굳이 혈색이 어떻고, 어떤 옷을 입었고, 표정이 어떤지를 왜 그렇게 길게 써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게, 왜 그럴까.”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소설을 쓰면서 나 또한 인물이나 장소를 길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뜨끔하면서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여기저기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가들은 왜 자꾸 길게 묘사를 늘어놓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을 때 나왔다. 푹 빠져들어 읽었던 소설들 모두가, 묘사에 지면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었다. 인물이 어떤 몸짓을 하고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자세히 알려줄수록 그 인물이 ‘진짜’처럼 느껴졌고, 그 진짜 같은 인물에게 감정이입하여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니 소설가들의 묘사를 마법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이런 이런 인물이 이런 이런 장소에 있다고 독자에게 주문을 거는 것이라고. 이 마법에 걸려든 독자는 자신을 잊고 이야기에 빠져들어 작가가 선사하는 한 세상을 종횡무진 누비다 올 수 있다.

협업의 차원에서 보면, 소설가가 소설 상의 인물과 장소와 기후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독자가 그 지루할 수도 있는 묘사를 공들여 읽어 내려가는 것은 양측이 상상의 세계에서 만나기 위해 맺는 투자 협정 같은 것이다.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이 투자 협정을 받아들인다. 작가여, 좀 그럴싸하게 말해보게나. 그럼 내가 그것들을 진짜라 믿고 끝까지 들어줄 테니!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인물들이 낯설고 가짜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그건 가짜니까. 그러나 시간과 뇌력을 들여 묘사된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이 끌고 가는 방향으로 걷다보면 어느 순간 그 세계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황홀경이다. 이야기에 올라타 마음껏 한 세계를 헤엄치기만 하면 된다. 이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다음번에도 같은 걸 기대한다. 도입부에선 노력이 필요해. 지루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처음에 잠깐만 힘들지 인물과 장소에 친숙해지면 그 다음부터 멋진 세계가 펼쳐질 거야. 아, 빨리 그 세계에 빨려 들어가고 싶다! 그런 기대감에, 기꺼이 공을 들여 인물과 장소 묘사를 따라간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겪은 이들은 묘사가 많이 들어간 소설을 일부러 찾아 읽게 된다. 묘사에 지면을 많이 할애한 소설일수록 강한 마법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이렇게 물어보도록 하자. 왜? 왜 굳이 그렇게 시간을 들여 작가가 만든 세상에 잠겼다 나와야 하는가? 이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싶다. 하나는 재미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극적인 사건에 휘말렸다 오는 것은 커다란 재미를 선사한다. 현실의 나는 돈을 훔칠 수 없고, 잘 생긴 남자를 따라가서 말 걸 수 없으며, 미워 죽겠는 누군가를 괴롭혀줄 수 없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는 할 수 있다. 은행 금고를 털 수 있고, 정우성처럼 생긴 남자와 연애 할 수 있으며, 꼴 보기 싫은 사람을 골탕 먹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종종 대리만족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와 일상을 살아낼 힘의 재충전이라는 덤을 획득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사고의 확장이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나’라는 ‘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내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거나, 나의 외부에서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전하게 들여다볼 수 없다. 죽었다 깨나도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물리적으로도 볼 수 없고(팔, 다리와 앞모습 일부는 가능하지만 뒷모습과 얼굴은 볼 수 없다. 거울과 사진기의 도움을 받으면 간접적으로 볼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신적으로도 볼 수 없다. 내가 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나’의 바깥에서 총체적으로 체험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타인이 위대한 건 이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뒤통수를 볼 수 있고, 내가 말 하는 동안 나의 표정과 음성과 몸짓을 외부에서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관조해 바라볼 수 있기에, 모든 타인은 나보다 위대하다. 소설은 바로 이 타인,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이입하게 해주는 친절한 통로이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내게서 빠져나와 타인에게로 들어간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체험하며, 그의 지난날과 현재를, 다가올 미래를 이해하고 연민한다. 그리고 그 이해와 연민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타인의 삶 깊숙이 들어가 보는 경험을 통해, 왜 그랬는지 모르고 넘어갔던, 그렇지만 마음에 걸려서 찜찜하게 품고 살아왔던 과거의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나의 월급과 나의 건강과 나의 능력계발에만 몰두했던 삶에서 잠깐이나마 빠져나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에 공감하고 연민함으로써 좁은 사고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확장된 사고에 들어온 타인의 삶은 어느 순간, ‘나’의 삶이 된다. 소설을 많이 읽은 이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면에 많은 타인을 담아보았기에, 그 타인들이 그 사람의 ‘자아’에 녹아들어가 그 사람 자체가 되었기에, 세상을 다양한 프리즘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앞서 말한 두 요소, 즉 재미와 사고의 확장이라는 효용을 동시에 안겨주는 고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안나가 주는 현실감은 그 어느 소설의 주인공도 도달하지 못하는 급으로, 읽다보면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이 정말 있었던 역사 인물처럼 느껴지면서, 그 비극적인 일생에 처절히 잠겨 고뇌하고 연민하게 된다. 톨스토이는 안나와 브론스키라는 남녀 주인공을 묘사하면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모두 동원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직유와 은유를 적극 활용한다. 기나긴 인물묘사가 매우 자주 나오고, 특히 자연 환경(장소와 기후를 합쳐놓은)에 대해서는 인물보다 더 많은 분량을 들여 묘사한다. 나는 인물조형능력에 있어 톨스토이를 따라갈 작가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모두 이러한 묘사능력에 기반한다. 톨스토이의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굳게 마음먹어도 결국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까지 들여다보고 그려낼 수 있다니!

그러나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그런 미학을 품고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완전히 몰입해서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되지만, 어떤 부분은 너무 지루해서 보다가 꾸벅꾸벅 졸게 된다. 지금보다 젊었던 때에, 나는 그런 경향이 독자로서의 내 태만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졸린 부분이 나오면 나를 탓하며 허벅지를 꼬집었다. 네 독서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이다! 정신 차리고 성실히 읽어라!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몰입해 읽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고 30여 년에 걸쳐 같은 패턴의 독서경험을 여러 번 되풀이 한 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마법처럼 빨려들어가 몰입하고, 어느 부분에서 하품하면서 억지로 글자를 읽어나가는지. 나는 불륜 커플인 안나와 브론스키가 나오는 부분에서 몰아의 경지에 이르고, 적법 커플인 키티와 레빈이 나오는 부분에서 하품을 하며 딴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내 인생 책임이 분명한 이 책이 왜 그리 부분 간 편차가 큰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소설을 쓰게 되면서, 소설을 작법적인 입장에서 공부로서 대면하게 된 다음이었다. 키티와 레빈이 나올 때마다 내가 몰입했던 세계에서 자꾸만 빠져나왔던 이유는 독자인 내가 아니라 작가인 톨스토이에게 있었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안나와 브론스키는 ‘진짜’ 같이 느껴졌는데, 키티와 레빈은 ‘가짜’ 같이 느껴졌다. 특히 레빈이라는 인물은, 가짜처럼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그다지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레빈과 다른 이들 사이에 직접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는 그럭저럭 현실감이 있었지만 레빈이 혼자 하는 생각이 길게 펼쳐지면, 이야기가 중단되고 막간 해설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막과 막 사이에 불쑥 작가가 끼어들어 당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한 연유를 깨달은 것은 나중에 톨스토이라는 인물의 일생에 대해 공부하던 도중, 레빈이 톨스토이의 분신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톨스토이는 땅과 농사일에 애착을 가지고, 지주인 자신과 농부로 살고 싶어 하는 자신 사이에서 평생 갈등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레빈 같은 인물이 자주 튀어나온다. 당대 러시아의 사조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면서 민중을 계도하려는 작가의 분신이 뜬금없이 나타나 애써 만들어 놓은 현실감 넘치는 가상세계를 단숨에 휘저어놓는다.

톨스토이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인간을 관찰해 그 인간의 깊은 내면을 언어로 바꾸어내는 능력에서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런 재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좀 더 심오하고 깊이 있는 ‘사상가’로 서길 바랐다. 그의 작품들 중 하품이 나오는 부분은 모두 ‘사상가’가 되고자 했던 그의 바람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부분이다. 

그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와 브론스키를 반면교사 삼아 키티와 레빈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인생에 임하는 사람들이 승리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를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은 키티와 레빈이 아니라 안나와 브론스키였다. 독자의 마음에 남는 건 레빈이 늘어놓는 요지를 알 수 없는 횡설수설이 아니라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의 깊은 고뇌이다. 유한한 인간이 어느날 벼락처럼 다가온 사랑으로 인해 제 목숨을 끊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는 고통의 여정. 그러니 이제 누군가 소설가들은 대체 왜 그토록 장황한 묘사를 해대는 것이냐 묻는다면, 『안나 카레니나』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설교를 늘어놓지 않기 위해서라고. 가치관이 들어간 교훈적인 언어를 직접 꽂아주면 독자는 하품을 하다 잠들고 말테니, 진짜 있는 인물이, 진짜 자기 인생을 보여주는 것처럼 하려고 그토록 용을 쓰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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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아은(소설가)

장편 소설『잠실동 사람들』등과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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