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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애 기자 “1990년대생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들”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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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질문보다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비관으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했어요.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 하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가 스스로를 피해자화할 수 있으니까요. (2021.03.05)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으로 아직 건너오지 않았을 2019년 겨울, 유선애 기자는 ‘자기 삶의 단독자로 선’ 1990년대생 10명의 여성을 만났다. 같은 해 몸을 담고 있는 패션지에서 ‘3.8 세계 여성의날’ 특집으로 기획했던 ‘90년생 여자사람’이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었고, 인터뷰집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평균 연령 28.4세, 각자의 방식으로 커리어를 일구며 자기 삶의 단독자로 살아가는 1990년대생 여성들(예지, 김초엽, 황소윤, 재재, 정다운, 이주영, 김원경, 박서희, 이길보라, 이슬아)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젠더, 세대론에 관한 질문을 흔쾌히 받아준 이들 덕분에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이 탄생했다. 




무너진 채로 오래 두지 않는 사람들

“진짜 힙한 책, 그냥 이 책이 밀레니얼이고 미래”라는 리뷰를 읽었어요.

종종 독자분들의 리뷰를 찾아 읽곤 하는데요. 벅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감사해요. 힘을 얻었다는 말씀을 많이 듣는데, 사실 저도 책을 출간하고 나서 엄청 힘을 얻었어요. 한 아버지가 딸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와, 멋진 아빠시다’ 생각했어요. (웃음)

이 책의 시작이 <마리끌레르>의 피처 에디터로 쓴 ‘90년생 여자사람’ 인터뷰였잖아요. 당시 독자들의 피드백이 많았다고요. 

그 기사는 일회성 특집 기사였는데요. ‘대한민국에서 젊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33명의 인터뷰이들이 용감하고 솔직한 생각들을 표현해주셨거든요. 인터뷰이와 독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감들을 보면서, 20,30대 독자들이 이런 방향의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덕분에 1990년대생 여성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기를, 어떤 변화를 바라는지 가까이 볼 수 있었죠.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에 실린 10명의 여성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제가 2019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만났던, 그 당시 제가 좋아하고, 또 동시대 여성들에게 사랑과 지지를 받는 인물들로 추렸어요. 그 가운데 직업군을 달리하고자 했고요. 제가 현업 안에서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다 보니 출판사에서는 저의 인물 제안에 너그럽게 동의해주셨어요. 

주제가 있는 인터뷰였잖아요. 개인의 창작물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닌, 세대론에 관한 인터뷰라서 고심했던 인터뷰이도 있을 것 같아요.

섭외할 때부터 주제에 관해 명료하게 말씀드렸어요. 제안서를 쓰듯이 기획의도를 정확하게 밝혔고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 여성의 생각에 관한 질문을 드릴 것이고,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인터뷰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어요. 평소 자신이 갖고 있었던 생각이나 시선,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여쭐 거라고도 설명했고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질문이 있었나요?

중요한 질문보다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비관으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했어요.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 하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가 스스로를 피해자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피해자화하는 데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한 계단 더 도약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것 역시 주의하려 했고요. 다행히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10명의 인물들은 모두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때때로 비관하기도 하지만 끝내 낙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누구와 인터뷰를 해도 그 끝은 애써서 얻게 된 낙관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노력하는 낙관에 대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흐를 때, 저는 그 대답과 연관된 질문을 몇 가지 더 해 이야기를 키워갔고요. 낙관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독자들에게 더 전달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내일’을 말하는 인터뷰집이라 더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보통의 인터뷰가 주로 과거의 업적, 현재의 성공에 초점을 둔다면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이 우리와 다르고 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 분들은 비교적 자신의 재능을 빠르게 발견했고, 최선을 다해 그 재능을 연마해온 사람들이긴 한데요. 이들 역시 시행착오를 거쳤고, 거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인터뷰 중 김원경 선수가 “지금 제가 기분이 좋은 상태라 그런데요. 안 좋을 때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죠. 무너질 때는 그냥 무너져요. 어떻게 강하게만 살 수 있겠어요. 그럼 로봇이지”라는 말을 했거든요. 이들 역시 저와의 인터뷰 자리에서는 분명하고 선명한 태도로 이야기를 하지만 일상에서 때때로 방황하고, 좌절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사람들이에요. 다만 이 사람들은 무너지지만 자신을 무너진 채로 오래 두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제가 이들로부터 배웠듯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도 그 회복의 힘을 함께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사람들

특별히 담고 싶었던 이야기, 또는 인터뷰이들의 태도와 말은 무엇이었나요?

타인과의 연결, 이해에 대한 이야기가 소중하게 다가왔어요. 뮤지션 황소윤 님이 했던 “고여있지 않기 위해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세상과 좀 더 호흡하려는 노력은 꾸준해야 한다고요”라는 말, 다큐멘터리를 찍는 정다운 감독님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강한 사람 같아요”, 이슬아 작가님의 한 “용기가 있으려면 너무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등 10명의 인터뷰이 모두 대화 중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이해로 주제가 옮겨지더라고요. 나에 대한 질문을 자주 던지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일이 자칫 자기만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오히려 이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 자신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타인을 유심히 바라보고 연결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이의 어떤 말은 굉장히 오래 기억되기도 해요. 

특별히 기억하고 싶던 인터뷰이의 대답들은 책 안에서 발문 처리를 하거나 밑줄을 그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고 보니 새롭게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가령 프로듀서 예지 님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성공한 뮤지션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던 질문에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고, 이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 상태.” 같은 대답. 김초엽 작가님의 “유토피아가 완성형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유토피아로 바꿔가려는 개인들이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정적인 측면에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등 다시 읽다 보니 새롭게 마음에 들어오는 말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어요. 여기 열 분의 대답들이 다 좋아서 아마 독자분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12년간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다양한 직군, 연령대의 사람들을 인터뷰하셨을 텐데요. 1990년대생에서 특별히 느껴지는 특징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만난 1990대생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사람들 같아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는 사람들이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단독자로 살아갈 것인가 또는 어떤 순간에 어떤 이들과 연결될 것인가 등등,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거죠. 질문이 거듭되고 자신에 대한 답이 쌓여갈수록 자신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이들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정보량이 많아질수록 삶을 대하는 자신감, 주변 목소리와 시선을 필터링할 줄 아는 능력, 스스로를 치유하는 회복력 같은 것이 생기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꼭 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강경화 전 장관은 언젠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마음 속으로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분을 표현하는 단 한 장의 사진이 있어요. 남성 중진들 가운데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 심지어 아주 멋진 자세로 다리를 꼬고 앉은. (웃음) 그 때의 턱의 각도와 시선 처리, 팔 동작 등 그 사진 한 장이 그 사람을 다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 해요. 그 사진으로부터 그 분과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뾰족하게 기획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이 기사를 어떤 누가 보게 될 것인지 상정하고, 특정 독자를 상상하며 기사를 완성해갑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사 하나를 완성하며 크건 작건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에요.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적어도 누군가 크게 만족하지는 못해도 크게 실망하는 일은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려면 세심한 동시에 무척 부지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여전히 너무 어렵고, 매번 실패하는 것 같아요. 

피처 에디터, 인터뷰어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망생들이 기자님께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세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조금 소심한 편이라면 인터뷰어가 되기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어의 자질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쉽게 판단하거나 단정짓고 싶지 않은 주저함을 가진 사람들이 인터뷰어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더 묻고, 더 들어보려고 하는 것. 인터뷰이에게 돌발 상황 같은 것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주는 것, 인터뷰이보다 더 많은 말을 하거나 자아를 세우지 않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요.


 

각별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이 있을까요?

사실 저는 이 책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20, 30대 여성들에게 많이 읽히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요. 이슬아 작가님이 이 책이 10대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작가님의 말에 따르면 본인이 10대, 20대 초반까지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 가능성을 가까이서 보거나 배우지 못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건 1980년대생인 저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이토록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10대분들이 일찍이 알게 된다면 무척 기쁠 것 같아요. 



*유선애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문학과 언론학을 공부하고 12년 동안 피처 에디터로 일해왔다. 현재 패션매거진 〈마리끌레르 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매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가 그냥 나라면 결코 대면할 수 없을 사람들을 만나왔다.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익힌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잘 쓰고 싶다.
인스타그램 @seonae_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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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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