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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의 나만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난 슬플 때 별자리를 봐

<윤가은의 나만 좋아할 수도 있지만>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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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별. 이게 다 별 때문이다. 오늘 저녁, 남서쪽 하늘에 굉장한 광경이 펼쳐질 거란 뉴스를 들었다. (2020.12.24)

pixabay

동짓날에는 액운을 쫓고 무사안일을 빌기 위해 팥죽을 먹는다고 들었다. 들었지만, 매년 모르는 척 그냥 지나왔다. 먹고살기도 정신없는데 뭐 한다고 세시풍속까지 챙기고 있나 싶었다. 물론 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한몫하긴 했지만. 

그래도 재작년 동짓날부터는 나름 생크림단팥빵이나 앙버터빵 정도는 챙겨 먹기 시작했다. 물론 빵을 너무 좋아하기도 했지만, 삶에서 쫓아낼 것과 빌 것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의지나 능력만으론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속속 생겨났고. 아무튼 팥은 팥이니 효력은 비슷할 거라고 기대했다. 기대하면서도, 팥 앙금을 씹고 또 씹어 죽을 만든 후에야 꿀꺽 삼켰다. 이 정도면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천지신명이 보우하실 거라고 겨우 믿어보면서.

하지만 오늘은 작정하고 제대로 된 동지팥죽을 사 먹었다. 새알심이 두둑이 들어간 따뜻한 팥죽에 시원한 동치미까지 곁들여 뚝딱 한 끼를 해치웠다. 그리고 올해의 아픈 기억들은 떠나보내고 다가올 밝은 미래를 그려보았다. 난생 처음 치러보는 동짓날 의식이었다. 사실 팥은 여전히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어떤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의례처럼 느껴졌다. 그렇듯 감내하며(?) 내 것이 아닌(??) 걸 품는 험난한(???)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복다운 복을 받는 게 아닐까 싶으면서……. 

참. 팥죽 한 그릇에 별 의미 부여를 다 하고 앉았네.

그래. 별. 이게 다 별 때문이다. 오늘 저녁, 남서쪽 하늘에 굉장한 광경이 펼쳐질 거란 뉴스를 들었다. 각자의 궤도를 돌던 목성과 토성이 나란히 정렬해 마치 하나의 별로 보일만큼 가까워지는 이른바 ‘대근접(Great Conjunction)’ 우주 쇼가 펼쳐진다는. 1623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지만 태양과 가까워 볼 수가 없었고, 이번처럼 관측이 가능한 건 1226년 이후 처음, 그러니까 무려 800여 년 만에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라고 했다. 예수 탄생 당시 동방박사들의 길잡이가 되어준 ‘베들레헴의 별’이 바로 이 ‘대근접’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점성학에 따르면, 그 사건이 오늘, 바로 물병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며, 그러면 땅의 시대에서 바람의 시대로 전환되며 본격 ‘물병자리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했다. 이런 역사적인 대변혁의 날, 확실한 면액과 기복의 기회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어찌 아무 호들갑 없이 이 대사건을 맞이하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너무도 물병자리인 내가 말이다!

그래. 별자리. 아니 별자리 운세. 그러니까 결국 이게 다 물병자리 운세 때문이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워 꼼지락거리다 문득 올해의 물병자리 총운들을 다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사실 별자리 운세는 매해 연초에 열심히 읽어놓고 금세 까먹는데, 연말에 다시 보면 예고된 운세를 고스란히 살아온 느낌이라 늘 흠칫 놀라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정말 아무 것도 안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느낌이라 운세마저 비껴갔을 거라 장담했다. 그런데 웬걸, 월별로 정리된 별점이 마치 내가 쓴 일기 같아서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새로운 눈으로 한 해를 돌아보니, 실은 구석구석 별 일이 다 있었고, 그 안에서 나도 나름 애쓰며 잘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그렇지…… 역시 별자리 운세는 정확하다니깐!

 

pixabay

그렇다. 나는 별자리 운세에 꽤 진지하다. 꿈은 너무 멀고, 연애는 계속 아픈데, 나는 내 마음조차 모르겠어 끝도 없이 방황하던 시절, 수전 밀러 점성술사의 별점을 다달이 번역해 올려주는 개인 홈페이지를 우연히 찾았다가 큰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크고 따뜻한 무언가가 나와 내 인생을 깊이 이해하고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경고하거나 겁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정하게 위로하고 부드럽게 격려할 뿐이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도 같았다. 너와 비슷한 주기로 넘어지고 일어나는 다른 친구들이 제법 있다고, 그들과 함께 가는 거니까 너무 외로워말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일까. 정말 별들은 나를 알고 내 운명을 이끌고 있는 걸까. 정말 나는 혼자가 아니고, 저 별 아래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아득하고 잡히지 않는 인생에 뭔가 기댈 것이 필요했을지도. 어쨌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슬플 때 힙합을, 아니 별자리 운세를 들여다본다. 그러면 여전히 그때의 다정한 목소리가 지친 내게 응원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나는 세상 어딘가에서 나처럼 우여곡절을 겪고 있을 수많은 물병자리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다시 힘을 낸다. 


pixabay

어젯밤은 올해의 총운에 감동받아 너무 많은 힘이 났나 보다. 내년의 물병자리 운세가 번역되어 올라왔다는 소식에, 가장 좋아하는 이시이 유카리의 별점을 시작으로, 가가미 류지와 아오이시 히카리, 제시카 애덤스와 페니 손턴, 프란체스카와 사야와 표고버섯의 별점까지 모두 찾아 정독하느라 밤을 꼴딱 새고 말았으니. 어쨌든 총론은 같았다. 토성과 목성의 대근접 이후 물병자리들은 더 크게 자신을 확장하며 더욱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대변혁의 시기를 통과할 거란다. 뭐. 어쨌든 별자리 운세 덕분에 처음으로 절기도 챙겼고, 안 먹던 팥죽도 잘 먹었고, 생전 관심 없던 천체의 움직임에도 흥미가 생겼으니, 이미 내 삶과 시야가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한 건지도. 그럼 그렇지! 역시 별자리 운세는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니깐! 

그런데 방금, 올해는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든 ‘애(兒)동지’라 팥죽 대신 팥떡을 먹어야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래야 집안의 아이가 건강할 거라고. 헉. 안 돼, 사랑하는 우리 조카…….

이미 아낌없이 해치운 팥죽으로 배는 부른데, 해는 짧아 벌써 지고 있는데, 잠시 후면 두 행성의 대근접을 관측할 절호의 시간대가 다가오는데…… 이런 사고조차 너무나 진정한 나다운 일이라 할 말이 없다. 다시 팥떡을 사러나가기 전에 일단 별자리 운세부터 천천히 다시 봐야겠다. 난 슬플 때 별점을 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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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가은(영화감독)

영화 만드는 사람. 좋아하는 게 많습니다. 단편영화 <손님>(2011), <콩나물>(2013), 장편영화 <우리들>(2016), <우리집>(2019)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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