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의 뉴스 앵커인 그녀가 차를 마시게 된 이유
『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 여인선 저자 인터뷰
찻잎을 고르고 어울리는 다기를 예쁘게 배열하고 완벽한 온도를 찾아 차를 내리는 시간은 심지어 아름답습니다. 세상과 잠시 곱게 ‘거리 두기’를 하는 셈이죠. (2020.12.10)
평일 저녁 7시 뉴스 화면 속에서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앵커 여인선.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차가운 도시를 거닐 것 같은 이미지이지만 의외로 그녀의 오후는 혼자서 조용히 차를 내리며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 시간 속에 촘촘히 쌓여있는 ‘취향’과 ‘차’에 관한 이야기를 도서 『차라는 취향을 가꾸고 있습니다』로 풀어냈다. 처음 시작하는 차 여행자들을 위한 친절한 차 생활 안내와 함께, 추천하고 싶은 차를 열두 달의 심상과 함께 소개한다. 차를 내리는 것이 “남보다 예민한 영혼을 위한 완벽한 취향”이라는 말하는 차생활자 여인선 작가의 차와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뉴스를 진행하는 작가님의 모습은 프로페셔널한 기자의 모습이라, 차분하게 차를 내리는 풍경이 처음엔 쉽게 상상되지 않았어요. 치열한 기자 생활 속에서 차라는 취향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직업상 차보다는 술과 커피 마실 일이 많았습니다. 차분하게 차 한 잔을 내려 마시는 시간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살았죠. 몇 년 전 신림동의 차실에서 몇 시간이나 정성스럽게 차를 대접받고 온 날, 그날의 대화 소리가 꿈에 다시 울렸습니다. 바깥세상의 소란한 일은 잊고 찻 주전자와 고운 찻잎과 보글보글 끓는 뜨거운 물, 그 조합이 제 감각에 주는 느낌이 은은하게 각인됐습니다. 같이 앉은 사람들과는 차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데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꿈에 다시 나올 만큼 그 순간이 좋았나 봅니다. 첫 자사호(찻 주전자)를 큰마음 먹고 사고, 전기 포트와 작은 차판을 사무실 책상에 들이고, 서툴게 혼자 한 잔 두 잔 차를 내려 마시며 차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차를 내리는 것은 나를 아껴주는 시간”이라는 표현 속에서 작가님이 차의 시간에서 얻는 위안과 힐링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일상 속의 작은 위로가 절실한 이 시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작가님께서 차의 시간 속에서 얻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여유가 사라졌을 때 따뜻한 찻잔 속에서 내 마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회의와 회의 사이를 뛰어다니고 정신없는 취재 현장에 다녀오고 생방송까지 하고 나면 마음 한자리 쉴 곳이 없을 때가 많거든요.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전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내 감정과 생각을 스스로 들어볼 시간은 없더군요. 잠시 짬을 내 차 한 잔을 천천히 내리는 동안 접어두었던 내 마음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찻잎을 고르고 어울리는 다기를 예쁘게 배열하고 완벽한 온도를 찾아 차를 내리는 시간은 심지어 아름답습니다. 세상과 잠시 곱게 ‘거리 두기’를 하는 셈이죠. 이렇게 차와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땐 마음이 한층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차를 한번 마셔볼까’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작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일상 속에서 천천히 차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나 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차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번거롭고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겠죠.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는 이런 몇 가지 과정이 차의 맛과 향을 제대로 깨워내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다도를 더 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잎차를 내려 보세요. 뜨거운 물을 붓는 것으로 한 번에 끝나는 티백보다 차와 사람의 호흡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온도와 시간을 다르게 할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차 맛의 변화를 느끼며 조금씩 섬세한 감각을 깨울 수 있을 거예요. 이 시간이 즐겁다면 자연스럽게 차 생활을 일상에 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열두 달의 차’ 부분을 읽다 보면 작가님이 말하는 이 차는 도대체 어떤 맛과 향일지 더욱 궁금해지곤 했어요. 특별히 아끼는 차나 추천해 주고 싶은 차가 있으실까요?
‘향과 맛’이라면 역시 ‘바위의 기운’을 품었다고 하는 무이암차를 추천하고 싶네요. 책에도 썼지만 처음 이 차를 마셨을 때 ‘향수로 만들어서 뿌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암차는 중국 푸젠성 무이산에서 난 찻잎으로 만든 우롱차(청차)인데 향이 특별합니다. 찻물이 지나간 따뜻한 잔을 포옥 감싸고 코를 대면 꽃, 캐러멜, 숯불 등의 향기가 풍부하게 올라옵니다. 인공 향을 첨가하지 않은 찻잎이 이렇게 새로운 내음을 뿜을 수 있다는 것에 뛸 듯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암차에도 종류가 많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신 듯 강한 차의 기운을 풍기는 차가 있고, 구름이 지나가듯 몽환적으로 혀를 감싸는 차가 있습니다. 다양한 암차를 비교하며 마시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단순히 차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을 넘어서 차가 태어난 곳, 차의 산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 부분이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작가님의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차 산지로 떠난 여행에서 느꼈던 특별한 경험이나 감정이 있다면 좀 공유해 주세요.
산지로 여행에 다녀오고 나니 차 한 잔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차나무가 자라는 아름다운 숲, 그곳의 새소리, 아침 해가 나뭇잎을 침투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차인들은 말이 안 통해도 차에 대한 관심으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차나무에서 봄의 차 싹이 나는 것을 보며 함께 뿌듯해하고, 어떤 물로 차를 내려야 차 맛이 좋은지 함께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포장도로도 없었던 중국 윈남성 산골마을에 갔을 때는 밤마다 마을 사람들과 술과 차를 마셨는데, ‘차 맛있다’, ‘차 숲 아름답다’, ‘건배’ 이런 몇 마디 만으로도 즐겁게 몇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금방 다시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여행은 아직 요원하네요. 이곳에서는 차를 마시고 그곳에서는 차를 만드는 일상을 반복하며 또 멋진 차의 인연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
글 사이사이에 함께 흐르는 사진들의 느낌도 너무 좋았어요. 사진작가님의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는데요. 사진을 찍어주신 이현재 작가님과의 작업 과정과 호흡은 어땠을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대학원 동기로 만난 이현재 작가는 영화를 전공했습니다. 서울 국제단편영화제에서 『7:30 to Paris』라는 작품으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따뜻한 색감으로 사물을 깊게 담는 그의 영상이 어딘가 차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작가도 차를 좋아해서 영상적 콘텐츠로 차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차차’라는 티 큐레이션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2년 전 첫 차차함 ‘설국’을 설레는 기분으로 선물처럼 받아보았는데, 어느새 많은 분들께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더군요.
스스로 아름다운 차 생활을 하는 이 작가이기에 이 책의 사진들도 진심 어리게 찍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위한 사진을 연출하는 것보다는 실제 차 마시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사진 속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진 속 장소들은 제 집이나 작은 다실, 이 작가의 카페입니다. 소개한 다구들도 제가 쓰고 있는 것들을 골랐고, 차도 우리가 마셔본 차만 사진에 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극적으로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나 느낌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차’에 대한 주제의 책이지만, 차를 마시는 사람만 혹은 마시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취향도 괜찮다’고 잔잔하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취향이라는 말의 뜻에는 ‘방향’의 의미가 들어가죠. 차라는 단어에 손이 가는 분이라면 어딘가 저와 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단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읽는 분의 마음을 차분하게 내려준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차가 우리에게 그러하듯이 말이죠.
*여인선 채널A 기자·앵커.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라는 체 게바라의 말이 인생의 모토. 기자로, 메인 뉴스 앵커로 차가운 현실을 전하는 뉴스를 통해 매일 숨 가쁘게 달린다. 하지만 리얼리스트로만 남지 않기 위해 불가능한 여가 시간도 눈물겹게 짜낸다. 홈베이킹, 로드 바이크, 통기타… 각종 취미를 헤매다, 자기만의 '취향'으로 발전시킨 것이 차를 마시는 일. 직업상 술도 커피도 잘 마시지만 '차'는 일상을 통째로 바꿨다. 차의 시간은 생각을 순하게 하고,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고,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차 생활 2년, 혼자만의 작은 다실까지 마련했다. 자주 오지 않는 휴가 때면 차 산지로 여행을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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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여인선> 글/<이현재> 사진12,150원(10% + 5%)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 옆에는 차가 있습니다. ‘거리두기’라는 난생처음 듣는 낯선 수칙은 소중한 이들과 마주 보고 차 한잔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타인과 마주 앉아 나누는 숨결과 눈빛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다정한 온기를 찾아 헤매곤 한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