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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윤이 칼럼] 힙한 디자인 - 마지막 회

<월간 채널예스>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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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대한 새로운 시리즈인 만큼 기존에 없던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초반에 전체 레이아웃을 잡은 몇 가지 스타일을 공유했다. (2020.12.10)


힙한 디자인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있을 때 나는 외부 미팅은 어쩌다 나가는 정도였으며, 대부분 사무실 안에서의 일과였다.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에는 미팅을 할 일이 생기고, 감리를 봐야 할 일도 늘어나게 되어 집순이인 내 몸을 끌고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새로운 출판사의 책을 맡게 되면 에디터와 미팅을 하기도 하는데, 드렁큰에디터(이하 에디터)와의 만남에서는 쿨한 느낌과 함께 말끝마다 웃음소리로 이어지던 특유의 제스처가 기억에 남는다. 표지를 진행하게 되면서 몇 가지 의견을 주셨다. 새롭게 시작되는 시리즈이고 매달 나오는 매거진과 같은 느낌의 책으로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에 띄고 ‘힙’한 디자인이면 좋겠다.. 등등의 의견이 있었다. 

‘욕망’에 대한 새로운 시리즈인 만큼 기존에 없던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초반에 전체 레이아웃을 잡은 몇 가지 스타일을 공유했다. ‘매우 힙한 디자인일 거야’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반전! 에디터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차분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의 디자인이 힙하다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너무 난해한 디자인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재빨리 수정을 해보았고, 밝고 톡톡 튀면서 그래픽이 시원하게 들어간 디자인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목이 돈지랄이라고요? 

몇 차례 수정을 거쳐 드디어 어느 정도 원하는 레이아웃에 도달했다. 앞으로 나올 욕망 시리즈 다섯 권의 가제를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체 레이아웃과 1권의 이미지가 거의 결정될 무렵, 1권 타이틀 후보를 보내주시며 한번 넣어봐 달라고 했다. ‘응?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설마 이걸로 하지는 않으시겠지. 너무 센 걸...’ 표지 이미지도 이렇게 세게 가도 될까 하는 생각과 나 자신이 구식인 사람인 듯한 느낌도 들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걱정이 엄습했다. 아마도 처음 책이 나올 때까지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제목에 맞는 그래픽은 ‘돈’ 느낌이 나야 할까 싶어 금색 동그라미도 넣어보고, 욕망이 느껴지는 컬러와 그래픽을 넣어보는 등 여러 가지를 해보았으나 이 유쾌한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런 경직된 이미지들이 아니었다. 결국 이 시리즈는 추상적인 그래픽과 재밌는 타이틀의 만남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판형이 핸디하고 가벼우며, 톡톡 튀는 네온 별색을 사용하기에 컬러가 가장 돋보이도록 CCP지에 유광코팅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미싱 제본된 노트는 표지의 컬러와는 대비되도록 배리에이션 했다. 표지에 담지 못한 또 다른 컬러를 노트에 담아 함께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완성도가 더 높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알았어!’ 속으로 외치며 이 책은 앞으로 이렇게 가는 거다. 시원한 그래픽,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다... 라고 했는데 바로 이어서 작업해야 할 2권의 표지가 좀처럼 맘에 들게 나오지를 않았다. 분명 머릿속에는 참 괜찮은 이미지들이 많이 떠올랐는데 1권 때와 마찬가지로 ‘출세욕’을 표현하려니 구체적인 이미지로만 그려질 뿐, 단순한 그래픽으로 연결이 되질 않는 것이다. 처음에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들을 넣었다가 스스로 다운되어 침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2권은 정말 배를 잡고 웃을 내용이 수두룩하니 이 유쾌함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새인가 나도 모르게 바람개비 같은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맑은 하늘색에 빙글빙글 돌아갈 것 같은 이 바람개비는 어쩌면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표현된 것일까? 하늘색과 대비되는 진한 주황색으로 노트를 곁들이니 나란히 두었을 때 서로 보완되어 바람개비의 이미지는 더 부각되어 보이기도 했다. 이주윤 작가님의 바람개비 의상 캐릭터를 보며 이것은 진정한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생각이 들며... 나의 그래픽이 의상 디자인과 연결되다니 기뻤다.



그럼 세 번째는 더 쉬울까? 제일 어려웠던 3권. 두 번 정도 했으면 이제 쉬울 법도 한데, 이번은 ‘음주욕’이었던 것이다. 에디터는 나에게 주제와 제목에 너무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것은 그동안 작업했던 스타일 때문에 훌훌 가볍고 단순하게 표현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음주욕에 처음 떠올랐던 이미지는 웨이브였다. 뭔가 흔들리는 듯하면서 몽롱하면서 뿌연 느낌? 그런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는데 역시나 설명적으로 술병 이미지가 나오거나 너무 심한 웨이브들이 반복되는 등 1, 2권의 느낌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웨이브가 아닌 작은 원들이 마치 어두운 밤에 빛들이 번지는 것처럼 퍼져있는 느낌이 떠올라 이미지를 만들어보았다. 그 작은 원들이 여러 차례 위치와 컬러를 바꾸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정리가 된 셈이다. 

드디어..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감을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 권의 책을 만들면서 단순함과 유쾌함이 쭉 연결되기 위해 ‘레이아웃’이라는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아이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턱턱 손을 움직여가며 쉽고 가볍게 그림을 그리듯이 나도 그렇게 처음 떠오르는 느낌을 아주 러프하게 넣어보았다. 설명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해보자 생각하며, 그렇게 좀 더 빠르게 표지가 나올 수 있었다. 4권 『자기만의 (책)방은 밑줄 서점을 운영하는 저자이기에 밑줄이 어울린다는 것은 에디터의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공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에 책들이 겹겹 쌓여있는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5권은 ‘식욕’. 책을 하면서 가장 감정이입이 잘되는 것은 역시 먹는 것에 관한 책일 때이다. 지금도 토스트 책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을 할 때마다 토스트를 이런 레시피로 만들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냉장고를 열게 된다.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는 맛집과는 전혀 무관한 나에게도 강원도의 횟집을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 나왔던 4권은 아무래도 계절감을 반영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화사한 컬러와 잘 맞았는데, 욕망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 책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출간될 것이기에 컬러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마침 에디터는 나에게 ‘뮤트’ 컬러를 반영해보면 어떻겠냐고 했고, 나는 뮤트 컬러란 무엇인가 하여 검색을 해보았다는 사실. 그것은 가을가을한 톤다운된 컬러들이었는데 ‘맛있는 색’은 아니었다. 일단 적용해보고 조금씩 채도를 살려 상큼한 오렌지 톤으로 결정되었다. 오렌지나 붉은 색 계열의 컬러가 식욕을 부른다고 했기에. 마치 식탁보, 앞치마, 빈티지한 그릇, 피크닉이 떠오르는 그래픽으로 시안이 추려졌다. 

지금 다섯 권을 모아놓고 보면 누가 봐도 시리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헤매던 시간들은 다 잊혀지고, 쉽게 작업했을 것 같은 책들이 눈앞에 있는데, 그동안 나는 왜 그렇게 어려워했을까? 웃음이 난다. 선과 원 하나의 위치, 크기, 컬러들에 대한 고민은 나보다 에디터의 역할이 더 컸다. 매 권 인쇄 교정을 내며 컬러의 농도, 디테일한 완성도를 늘 체크하며 5권 전체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에디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완성되어 있다.

이 작고 강한 책 작업을 통해, 버리고 또 버리면서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표현을 위한 트레이닝을 한 것 같다. 마치 제목을 만드는 것처럼.   


* 지금까지 <석윤이의 그림이 되는 책>을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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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석윤이(그래픽 디자이너)

열린책들에서 오랫동안 북디자인을 했다. 현재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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