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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황예지 “가족, 슬프고 명랑한 존재”

에세이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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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눈물 흘리는 게 정말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고 눈물 흘리셨다는 독자의 이야기가 너무 값지게 느껴져요. 건조해지기 쉬운 일상에서 저의 책이 사람들의 눈물을 모으고 있다는 게 장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2020.11.10)


맑은 탕 한 솥과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엄마가 집을 떠났다. 그렇다면 남은 세 식구만이라도 잘 살아보자고, 서로를 다독이던 말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아빠가 수감됐다. 언니와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의 나이는 열여덟. 슬픔을 잊기 위해 어린 황예지는 교복이 해질 때까지 축축한 암실에서 필름을 만졌다. 

2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뒤 아빠는 석방됐고, 10년 만에 엄마가 돌아왔다. 가족이 함께하는 일상은 다시 시작되었지만, 조각난 마음은 봉합할 수 없어서 사진가 황예지는 카메라를 들었다. 엄마와 언니의 모습을 찍은 작품 <절기>를 통해 그는 이 깊은 상처와 “잔인한 화해”를 했다. 

그의 첫 번째 에세이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은 치열하게 아팠던 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내밀한 마음을 모두 꺼내 보이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덮으면 당신은 저의 가장 친구가 된 것이에요. 아린 마음과 함께 우리가 다정한 세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3쪽)”



아픔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긴 글을 쓴 건 처음이시죠. 

네, 보통 사진으로 작업을 하니까 글 쓰는 게 익숙지 않았어요. 제가 책을 냈다는 게 아직도 좀 얼떨떨해요.(웃음) 

구독 서비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에 매달 16일마다 연재했던 글이 책의 토대가 되었어요. 암을 앓고 있던 친구, 이도진 디자이너의 치료비를 위해 가수 이랑 씨가 구독 서비스를 기획했고 창작자들이 모여 매일 이야기를 발송했죠. 당시 연재했던 에세이가 책으로 묶일 수 있었던 계기가 궁금해요.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에 글이 연재되고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니라서, 대부분 거절을 했는데요. 이 책을 편집해 주신 바다출판사의 염은영 편집자님이 거의 6개월가량을 제 전시와 행사 등에 찾아오셨어요. 진솔하게 마음을 전해주신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사실 저 스스로는 제 글에 확신이 없었거든요. 워낙 작가들을 경이롭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 글이 책으로 나와도 되나’라는 의심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꾸준히 좋은 피드백을 듣다 보니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말에 가장 마음이 흔들렸나요?

첫 원고를 마무리하고, 두 번째 원고를 쓰던 와중에 편집자님을 만났어요. 드문드문 전시장에서만 얼굴을 보다가 처음으로 미팅을 한 자리에서 제가 “글을 쓰고 있긴 한데, 저는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보실래요?” 하고 노트북을 편집자님 쪽으로 돌려서 보여드렸어요. 그런데 읽다가 우시는 거예요. 그때 진솔한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연결돼 있고,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느낀 계기였죠.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은 편집자 개인을 믿고 출발한 책이에요. 

어떤 글이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현성이」라는 글이었어요. 

의외예요. 저는 앞선 글들을 보고 내내 눈물이 났다가 「현성이」를 읽을 땐 괜찮았거든요. 글이 정말 따뜻해서요.

눈물이 나는 포인트가 각각 다른가 봐요. 이도진 디자이너는 「피의 구간」 읽고 오열했다고 했거든요. (웃음) 저도 정말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리뷰를 보면 독자들도 울컥하는 포인트가 다 다르더라고요. 



이도진 디자이너와는 어떤 인연이었어요?

도진 씨의 친구들과 제 친구들이 많이 겹쳤어요. 알음알음 알고 지내다 보니 ‘언젠가는 같이 작업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분이 젊은 사진가에게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도진 씨가 기획한 매거진 <DUIRO>나 여러 프로젝트를 할 때, 제가 불려 갔죠. (웃음) 같이 작업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가까워진 친구였어요.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의 참여 제안을 받고, 어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일단 주제 자체가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서, 나에게 가장 큰 상처가 무엇이고 제일 치열하게 아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렸어요. 그게 저에게는 가족이었거든요.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과 글로 풀어내는 건 다르니까, 아픔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첫출발은 당연히 가족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를 스쳐간 일들에 대해서 언젠가 정리를 하고 싶었는데, 정신적으로 피로한 일이다 보니 계속 모른 체하고 미뤄뒀거든요. 좋은 기회에 그 이야기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세랑 작가가 추천사를 썼어요. 

출간을 앞두고 제가 정세랑 작가님 책을 많이 읽고 있었거든요.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이 소설 안의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정세랑 작가님 소설을 읽을 땐 유일하게 그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 같은 인물들이요. 삶에 지지 않고, 명랑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제가 살고 싶은 삶의 모토와도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천사를 부탁드렸는데 너무 흔쾌히 해주셨어요. 



한 계절이 지나갔구나

대학교 수업에서 선과 형태를 담아오라는 과제를 받고, 튼살이 자리한 언니의 몸을 찍으면서 작가님의 가족 사진 작업이 시작되었는데요. 섬광처럼 문득 ‘언니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가요. 

언니라는 사람은 늘 저에게 숙제 같았거든요. 사랑해야만 하고, 실제로 사랑하면서도 원망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엄마 아빠가 부재한 상황에서 저에게는 언니밖에 없었고, 언니에게도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꼭 치열한 연인처럼 서로 시간을 보냈죠. 사실 학창시절에는 가족을 찍는 게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막연히 ‘이제 가족을 찍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제를 받고 큰 숙제였던 언니의 몸을 확 찍어버렸죠. 제가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학교에서 대성통곡을 했어요.

과제를 발표하면서요? 

네, 왜 이 사진을 찍었는지 설명을 할 때 제가 빙빙 돌리면서 되게 이상하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 사진에 담은 만큼은 말을 하라고 정곡을 찌르셔서 눈물이 팍 터졌어요. 민망할 정도로 오열을 해서 ‘아 이제 학교 어떻게 다니지, 자퇴해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사진 너무 잘 봤다고, 정말 좋았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그때 치부를 드러내는 게 그리 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진을 찍고 어떤 해방감 같은 것도 느껴졌을 듯해요. 

언니의 몸과 표정을 마주하는 게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였어요. 저는 언니가 웃음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보면 꽤 냉소적이고 우울한 모습이 있는 거예요. 언니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자각하면서,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나중에는 엄마와 언니 모두 이렇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졸업전시를 준비할 때는 엄마랑 언니가 옆에 붙어서 사진 고르는 데도 의견을 냈어요. ‘이게 더 낫다’면서. (웃음) 그때 여성 가족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연대 같은 게 느껴졌어요. 우리가 어그러진 무언가를 애써 담기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봉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던 것 같아요. 잔인하게 파헤치는 게 때로는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 작업을 하면서 정말 단단해졌어요. 첫 프레젠테이션 때 오열하고, 두 번째 프레젠테이션 때도 너무 울었는데 지금은 작업자로서 큰 무대에 서는 순간에도 너무 수월하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마음에도 체력이 생기는구나 싶어요. 이제는 ‘내가 지나온 시간에 대해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됐네’ 라는 경쾌함이 생겼어요.



사진도 그렇지만, 특히 이번 책은 개인적인 상처에 대한 고백으로 채워졌어요. 내밀한 아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아주 옛날부터 저를 통과한 일이라서, 저는 그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한 날이 많았거든요. 사실 좀 더 어릴 땐, 저에게 이런 사연이 있다는 걸 수치스럽다고 여겼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저의 토양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진 작업을 할 때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점점 이 상처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었어요. 상실과 허무, 같은 것들을 오래 바라보다 보니 그리 부끄럽게 느껴지진 않더라고요. 사람들이 “책 나오니까 어때?” 라고 많이 묻는데,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만 하나 신기한 건, 책을 읽고 눈물 흘리신 분이 정말 많다는 거예요. 제 지인들도 그렇지만, 리뷰를 찾아봐도 “너무 좋았다, 눈물을 흘렸다” 같은 말들을 하시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책을 읽는 동안, 작가도 글 쓰면서 많이 울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슬픔을 삼키는 사람이라서, 감정을 밖으로 잘 표출하지 않아요. 글 자체도 감정을 분출하고 드러내기보다는 덤덤하게 썼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가족들은 어떤 말을 전해줬나요? 

저희 가족이 정말 단단한 사람들이라고 느낀 게, 이걸 읽고 웃는 거예요. 수위가 너무 약하다면서, 좀 더 세게 써야 한다고 농담도 하고요. (웃음) 아빠는 책 보고 “나는 안 좋은 일 겪은 걸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던데, 너는 그렇지 않니?”라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는 게 더 근사한 일 같은데? 나는 근사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라고요. 

독자들은 우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울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에요. (웃음)

그러니까요. 정말 이상하고 웃긴 사람들이에요. (웃음)



무사하다는 감각이 늘 필요했어요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가 수감돼도 나의 일상은 계속 되잖아요. 죽지 않으려면 어쨌든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데, 작가님은 너무 어렸어요. 그 당시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게 있나요? 

사실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요. 너무 힘든 일을 겪으면, 세세한 기억은 없어지고 감각만 남잖아요. 그래서 막연하긴 하지만,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암실 작업을 엄청나게 많이 했거든요. 그 치열한 작업이 분풀이가 되었어요. 교복이 상할 때까지 축축한 암실에 머무는 시간이 참 좋았거든요. 감정을 해소하는 저만의 방식이었죠. 

그리고 당시에 무척 좋은 어른을 만났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저와 비슷한 일들을 겪고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자란 분이셨어요. 그 선생님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려고 마음을 많이 써주셨죠. 선생님께도 책을 보내드렸는데, 읽고 대성통곡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안하고, 대견하다면서요. 또, 불행 중 다행인 건 여러 일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가족들이 되게 귀여워요. 끝내 명랑함을 잃지 않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마냥 처절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수감됐을 때 보내준 편지들도 내용을 보면 구구절절 하기보다는 그냥 웃겨요. 재미있는 사람들이죠. (웃음) 

유머가 있는 가족이네요. (웃음)

어릴 때는 ‘신이 하다 하다 나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장난을 치나’ 라는 생각도 했거든요.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눈만 감았다 뜨면 새로운 사건이 생기는 거예요. ‘신이 있다면, 이게 인간에게 할 짓이냐’고 그랬는데(웃음) 이제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계절이 지나갔구나, 잘 수습해야지.’ 가족들이 책 보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저희 아버지는 흥망성쇠의 아이콘인데(웃음) 그걸 스스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세요. 지금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요. 그런 태도가 멋있어요. 

부모님이 부재하는 동안, 편지가 어린 황예지를 키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마가 떠나면서 편지를 남겼고, 수감된 아빠도 매주 편지를 보냈죠. 

맞아요. 제가 감정을 삼키는 사람이라, 편지를 유독 소중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도 텍스트를 쓸 때거든요. 편지라는 물성에 좀 남다른 애정이 있죠. 연애할 때도 애인이 기념일에 편지를 안 주면 서운해서 눈물이 막 났어요. (웃음) 지인들에게도 편지를 종종 잘 써주는데요. 제가 어려운 일을 겪어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순간을 잘 알아채거든요. 그럴 때 메시지를 써서 마음을 전할 때가 많아요. 

제목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과거에 한 인터뷰에서 “첫 시집을 낸다면 제목을 무엇으로 할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불현듯 “우리는 우리의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이라는 제목이 떠올랐거든요. 거기에서 가져왔어요. 

작가님에게 ‘다정한 세계’란 어떤 모습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일을 겪어서 ‘무사하다’는 감각이 늘 필요했어요.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는 무해한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돼요. 그리고 저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고, 그들과 함께 근사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거든요. 이들과 함께 늙으면 언젠가 다정한 세계를 알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이도진 디자이너도 그런 친구였고, 도진 씨의 친구들과 제 친구들이 대부분 소외된 것, 차별, 혐오와 싸우는 어른들이에요. 그들을 볼 때마다 ‘이 사람들과 어른이 되어가면 내가 꿈꾸던 다정한 세계를 알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주변 친구들이 소중하게 챙기는 게 너무 예쁘고 가치있는 것들이거든요. 유기견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데려온다거나, 사회 운동에 참여한다거나 하는 일들이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그 세계로 가는 길처럼 보여요. 언젠가는 친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각기 다르게 예쁜 가치들이 하나로 모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냥 유연하게 살고 싶어요

원래 글 쓰기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작가님 글을 보며 시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니 몸에 우리가 만든 저주가 걸려 있다.(32쪽)” 같은 문장이나, 책 속의 전시 「병과 악과 귀」 등이요. 

글 쓰는 사람들을 오래 존경했어요.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글을 쓸 땐 제 옷을 입은 것 같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늘 동반자처럼 글을 옆에 두고 함께 지냈죠.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짤막한 글들을 쓰곤 했는데 그걸 되게 많은 분들이 읽으셨더라고요. 어느 리뷰에서는 “예지 씨를 15년간 봐 왔는데, 책이 나와서 기쁘다”는 이야기도 봤어요. 내 글을 이렇게 오래 읽어 준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고 신기해요. 

특히 시를 무척 좋아해요. 많이 읽고요. 제 글에서 그런 느낌이 있었다면, 존경심에 의해 구현된 게 아닐까 싶어요. 시인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사진 작업할 때도 시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마고> 전시회 때도 임승유, 김이든, 김혜순 시인의 시를 깔아 놓고 전시를 시작했어요.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고요. 어떤 의미인지 좀 더 듣고 싶어요. 

저희 아버지가 메모를 많이 하시거든요. 심지어 넷플릭스 시청 기록도 수기로 다 쓸 정도로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에요. 집에 아빠의 일기장, 필름, 사진 같은 것들이 정말 많죠. 모아둔 박스 안에 아빠 인생의 흥망성쇠가 다 있어요. (웃음) 어린 시절의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아빠가 가족들과 외출할 때마다 필름 2롤과 카메라를 챙기시던 모습이에요. 사진 찍는 게 당연한 일상에서 살았고, 모두 그런 줄 알았는데 성장해서 보니 저희 집이 유별나더라고요. (웃음) 가족사진에 접근하게 된 것도 결국 아빠 덕분인 것 같아요. 아빠가 가족의 모습을 워낙 많이 기록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사진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사진 작업하던 일을 회상하며 “마음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는데 그 길이 조금씩 좁혀졌다. 많은 것에서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96쪽)”고 했어요. 

사진을 찍는 게 감정 표현, 해소의 수단이 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학창 시절의 저는 암울했고, 타인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사진을 찍어가면 선생님들이 “나 사진으로 점 볼 수 있는데, 너 왜 우울해?”라고 묻곤 하셨어요. 친구들은 제 사진을 보고 축축하다고 표현했고요. 그때 ‘여기에 내 감정이 담기는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됐죠. 특히 축축하고 치덕치덕한 암실이라는 공간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암실 작업을 할 때 좀 예민해지는데, 그렇게 곤두서는 시간이 저에게 필요했던 거 같아요. 가끔 ‘내가 사진 안 했으면 뭘 했을까?’하고 생각해보는데 잘 안 보여요.  

과거 인터뷰에서 사진 작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어요.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때요?

비슷해요. 코로나19 때문에 정말 많은 촬영이 취소가 됐거든요. ‘나중에’라는 기약밖에 할 수 없다는 게 허무하더라고요. 사실 사진 작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끈을 놓지 않으면 작업자가 너무 힘들어요. 상업 사진을 하지 않는 이상 비참해지기 쉽죠. 그래서 유연해지려고 해요. 작업하는 사람의 권위나 소신을 내세우면서 다른 일을 미루기보다는 저를 이쪽저쪽에 골고루 써보는 편이죠.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영역도 많아지더라고요. 우연히 디제잉을 한 덕분에, 제 전시회에서 음감회를 열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지금 당장 친구가 “백화점에서 당일 알바 구하는데, 너 할래?”라고 물으면 저는 “그래!”하고 가요. (웃음) 코로나19로 일이 많이 취소됐을 땐 식당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손님들이 종종 저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요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좀 많아졌어요. 

무언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가요? 

작업자의 지위나 권위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웃음) 저는 가수 이랑 씨의 태도를 참 좋아해요.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고, 작업하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맞는 거죠. 저는 언제든 제2의 생계를 생각하고 있고, 사진보다 나와 더 잘 맞는 매체가 있다면 사진과 결별할 수도 있어요. 그냥 유연하게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황예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있을까요?

SNS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까 저를 화려한 사람으로 바라보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특정한 단어들이 생태계를 흐릴 때가 있잖아요. 저는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오글거린다”고 표현하는 걸 경계하고요. 힙스터, 인싸 같은 단어들에 쉽게 갇힐까 봐 두렵기도 해요. 깊이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점점 가벼운 것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까 봐 무서워요. 

지금까지는 황예지라는 개인의 역사에 대한 작업이 많았어요.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깊게 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세상으로 시선이 환기되곤 할 텐데요. 앞으로 해 나가고 싶은 작업의 방향이 궁금해요. 

여성 서사에 관심이 굉장히 많고, 특히 여성 기록자의 위치에 대해 생각을 자주 해요. 사진이라는 매체가 워낙 남성지배적이거든요. ‘내가 카메라를 들고 어떤 일을 하는가, 내 카메라가 어디를 향하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생계를 대하듯 여러 분야를 자주 부딪혀보고 있어요. 홍콩 시위 현장에 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제가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고 싶거든요. 아직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직시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은 누군가를 교육하는 일이 많아요. 청각장애인 혹은 청년 센터 학생들과 사진 작업을 하는 등이요. 그분들도 수업을 듣다가 많이 우세요. 다른 매체로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북받쳐 오르는 거죠. 제 학창시절에도 이렇게 호흡할 수 있는 수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저도 우울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우울’이 어떻게 배제받는지 잘 알거든요. 이런 감정이 허용되는 상황에 대해 자주 고민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걸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강의 제안이 오면 대체로 다 하는 편이에요. 



책 작업도 다시 할 의향이 있나요? 

제가 원고 하나 마감할 때마다 그랬거든요. “절대 안 쓴다. 죽어도 안 쓴다.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웃음)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니까 사람들이 “예지는 글 써야겠다. 글이 잘 맞는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거예요. 얼마 전에 가까운 친구를 만나서 “내가 무슨 일을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라고 토로했더니 친구가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하는 게 나은 일일 수 있어. 나는 네가 오래도록 몰랐으면 좋겠어.”라고 했어요. 그 말이 참 도움이 되더라고요. 언젠가 또 글을 쓰고 싶다는 갈증이 생길 것 같아요. 다음엔 좀 더 경쾌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아직까지 글 쓰는 건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인데요. 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인상 깊게 읽은 리뷰가 있는데요. “무척 오랫동안 외면하면서 살았던 일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밑동이 흔들렸다. 황예지라는 사람을 보면 부끄러워서 피할지도 모르겠다.”는 글이었어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저도 오랫동안 제 상처를 외면해왔으니까요. 책을 읽고 비슷한 마음이 드는 분들이 계시다면 아픔을 잘 피하는 사람이 될 때도, 잘 보는 사람이 될 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눈물 흘리는 게 정말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고 눈물 흘리셨다는 독자의 이야기가 너무 값지게 느껴져요. 건조해지기 쉬운 일상에서, 저의 책이 사람들의 눈물을 모으고 있다는 게 장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황예지

사진가.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집과 기록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했다. 개인의 역사에 큰 울림을 느끼며, 가족사진과 초상사진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집 『mixer bowl』, 『절기season』를 출간하고 개인전 〈마고Mago〉를 열었다.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황예지 저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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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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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찌르기도 핥기도 하는 관계들 그래도 우리는 마치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황예지는 가족사진과 초상사진 작업을 통해 위로를 전하려는 젊은 사진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모두 사진을 전공했고, 엄마와 언니의 모습을 찍은 졸업 전시 [절기]로 큰 주목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10년 전에 집을 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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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과 과학기술의 만남

김초엽 소설가와 김원영 변호사는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손상된 신체를 보완하는 기계(보청기와 휠체어)와 만났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통해 사이보그가 그려갈 미래를 논한다. 사이보그의 존재론과 윤리에 관한 두 사람의 통찰이 빛난다.

사라진 엄마, 아빠를 찾아 자정의 세계로!

영화화가 검토되고 있는 해리포터를 연상시키는 아동 판타지 문학. 사라진 엄마 아빠를 찾아 헤매던 소녀가 자신을 쫓는 정체 모를 존재를 피해 자정을 울리는 빅벤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 밤의 세상으로 모험을 떠난다. 마법과 비밀, 낮과 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에밀리의 여정이 펼쳐진다.

우리에게 두 번째 날은 없다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부터 직원까지 2년간의 집중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그들의 생존 전략. 거대 기술 기업에겐 둔화와 정체라는 비즈니스 주기가 적용 되지 않는다. 하나를 성공할 때마다 다시 ‘첫 번째 날’로 돌아가 다음을 준비하기에 성장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릴 거예요.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수상 작가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이 만나, 전 세계 평단과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 아름다운 그림책. 굽이치고 부딪치고 부서져도 쉼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아픔을 딛고 자라나는 아이의 눈부신 성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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