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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위대한 자들의 역사, ‘반부패’의 힘

『반부패의 세계사』 저자 김정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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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패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패에 눈감지 않고 입을 다물지 않을 때, 은폐되고 묵인되고 엄호되었던 부패는 추한 몰골을 드러냅니다. (2020. 11. 02)


‘반부패’란 부패에 대항하는 행동 또는 실천을 일컫는다. 인권, 환경, 빈곤, 양성평등 등의 주요한 이슈들과 함께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자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현안 과제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이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관련 교양서를 갖고 있지 못했다. 올해는 국제적으로 가장 큰 반부패 관련 포럼인 ‘세계반부패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고(12월 1~4일 개최), 특히 코로나19의 여파로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진행될 이 포럼에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참석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의란 무엇인가>를 함께 논의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부패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안에 다시 던지며, 반부패를 향한 인류의 오랜 역사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이 책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반부패’라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룬 교양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역사서로 나왔어요. 왜 이런 책을 내게 되셨는지요?

우리는 온갖 분야의 부패와 스캔들 뉴스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 일상을 유지시키는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 힘의 원천에는 수많은 이들의 반부패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부패의 세계사에 관한 책들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부패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세계사를 조명하는 책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24세기부터 현재 한국사회까지 무척 방대한 기간의 역사를, 그것도 '반부패'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집중력 있게 정리해냈습니다. 전문성 못지않게 상당한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 같은데, 자료 분석부터 집필까지 얼마나 걸리셨나요?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뭔가요? 쓰고 싶었으나 책의 분량 때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나요?

이 책을 처음 구상한 것은 십 년이 좀 넘었지만 2014년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을 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일관된 서술을 위해 기획과 자료수집에만 약 2년이 걸렸고 본격적인 집필에 3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긴 역사와 방대한 지역을 다루다 보니 탈고 후 팩트 체크와 원고를 수정하고 다듬는 과정도 6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부패와 반부패의 개념은 동서와 고금에 따라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관통하는 반부패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책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부패의 정의는 ‘공적 권력의 사적 이익을 위한 남용’이지만 이는 17~18세기 서구 자유주의에 기초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이렇게 서구의 특정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태어난 부패의 개념을 중심으로 반부패의 세계사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서양 중심의 부패와 반부패 역사 서술을 넘어 다양한 사례를 발굴하고 해석하는 작업 또한 큰 도전이었습니다. 지면상 좀더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한 이야기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신제국주의와 신식민지간의 부패와 반부패입니다. 다음 기회에는 이 문제에 집중해볼 생각이며, 지금과 같은 관점으로 부패의 세계사도 다루어볼 생각입니다.

책 속에서 역사, 문화,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패의 의미가 달라져온 점이 '반부패'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어렵게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지금 사회의 부패는 과거 부패와 어떻게 다르고 부패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측면을 강조해야 할까요?

근대는 반부패와 더불어 시작된 시대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근대 사상가들과 급진적 활동가들은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를 각각 낡은 부패(old corruption)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이라 비판했습니다. 근대의 반부패는 신분제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계몽을 의미했습니다. ‘자유 언론’ 혹은 ‘언론의 자유’는 바로 이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모던 혹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자유는 디폴트 값으로 전제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패와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글로벌화로 인한 기업, 특히 금융시장의 부패와 정보의 과잉으로 인한 가짜뉴스의 범람은 자유의 과잉과 책임성의 빈곤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제는 은폐된 부패와 정보의 불투명성을 걷어내는 시민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책에 무척이나 많은 역사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반부패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만한 대표적인 인물을 몇 명만 뽑아서 소개해 주시겠어요?

우선 인류 최초의 개혁가라 불리는 수메르의 우루카기나가 생각납니다. 민중들의 채무를 탕감하고, 사제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노예가 된 민중들을 해방했던 그는 ‘자유’라는 말을 인류에 처음으로 소개했고 그 자유를 반부패의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아테네의 솔론은 시민들에게 민회와 사법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민주주의를 통해 귀족의 특권을 견제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미국 정보당국의 광범위한 사찰과 국제감시망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정보-권력-부패의 관계를 파헤쳤으며 정보권력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한국사회 분석에 할애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무래도 해외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계셔서 그런지 내부의 논쟁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시각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볼 때 반부패의 관점에서 한국사회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는 뭐가 있을까요?

1997년 ‘IMF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었고 부패 역시 그 담론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반부패는 국가경쟁력 강화, 시장투명성 제고와 같이 경쟁과 효율성 논리에 압도되어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헌법을 유린한 신자유주의적 부패로 인해 발생한 극단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반부패는 경쟁력 강화와 같은 효용성을 중심에 두고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공적 영역의 신뢰와 가치,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담론을 넘어선 반부패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지금 가장 주요한 과제는 권력과 가치가 집중되어 있는 정보 분야의 책임성을 높이는 일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반부패 포럼인 국제반부패회의가 오는 12월 초 한국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벌써 제19차라고 하는데요, 반부패를 위한 국제적인 연대활동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려면 어떤 곳의 정보를 주로 살피면 좋을지 팁을 좀 주세요.

국제반부패회의는 정부와 전문가들 중심의 회의이고 국제적인 반부패 의제 설정에서 매우 핵심적인 회의입니다. 정부 외에 시민들 차원의 국제 반부패 활동을 참고하시려면 전세계 약 90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국제투명성기구의 활동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부패인식지수, 반부패 모범사례 등 각종 지표를 제공하고 있으며 정치, 경제, 교육, 보건, 환경, 자원 등 다양한 분야의 부패 문제와 대안에 대한 자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유엔과 국제사회가 달성하기로 한 목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16-5번째 항목은 ‘모든 형태의 부패와 뇌물을 대폭 감소시킨다’입니다. 따라서 지속가능발전목표와 관련된 유엔의 연례 활동과 보고서를 참고하면 국제적인 반부패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책을 쓰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독자층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 책은 일반 시민과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두께가 있는 책이지만 집필 과정에서 가독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동서고금을 망라해 반부패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도 권하고 싶습니다.



*김정수

한양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한국에서 막 걸음을 뗀 반부패국민연대(현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인 한국투명성기구)에 합류해 정책실장으로 일하며 청소년 반부패 교육을 위한 연구와 강연, ‘국제 청소년 반부패 포럼’ 조직, 그리고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해 힘썼다. 2004년부터는 한국사회의 부패방지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해 시민사회-기업-정부가 협력해 조직했던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공공부문 개혁과 기업윤리 개선, 시민들의 자발적 반부패 활동을 지원했고, APEC 반부패 실무회의와 국제투명성기구 활동에도 참여하며 국제적인 반부패 연대활동을 전개했다. 그 활동들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 표창장과 2008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다.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있으며 한국의 사회운동과 민주화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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