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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더 페이보릿] 잃어버린 것들이 머무는 곳 – 윤단비 감독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만든 윤단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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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철학보다 지극한 사랑이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순간이 있다. 윤단비 감독(이하 윤단비)의 <남매의 여름밤>(2019)이 선사하는 영화적 시간이 그렇다. (2020.10.21)


윤단비 영화감독

어떤 그리움

<남매의 여름밤>은 할아버지의 집으로 옥주 가족이 이사를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텅 빈 반지하 집을 나서기 전, 옥주(최정운 분)는 벽에 걸린 액자를 바라본다. 액자 속에 어떤 그림이 들어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옥주-동주-아빠 세 식구에게는 이제 버리고 떠나도 무방한 어떤 것, 그래도 마음먹고 일부러 두고 와야 하는 무엇. 어쩌면 아빠와 이혼하고 집을 떠난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이미지였을 수도 있다. 카메라는 액자를 올려다보는 옥주를 관조하면서, 붙들고 싶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다. 영화는 그렇게 손때가 묻은 양옥집을, 음악을 듣는 할아버지를, 할아버지가 떠난 소파를, 그리고 가족의 웃음소리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정원의 푸른 잎을 담는다. 


영화 <불꽃놀이>의 한 장면


이런 공기 덕분에 사람들은 <남매의 여름밤>을 ‘노스탤지어의 영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집을 가득 채운 물건들과 김추자의 '미련' 같은 노래에서 ‘레트로 감성’을 찾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건 낡은 물건이나 오래된 음악을 이용해서 이미 사라진 시대를 흉내 내는 텅 빈 스타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서 외화된 윤단비의 근원적 고독이 상실과 그리움의 정조를 이룬다. 윤단비의 단편 <불꽃놀이>(2014)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한 장면


<불꽃놀이>의 고등학생 용희(안승균 분)에게는 의지할 가족이 없다. 단짝 친구 찬용과 우진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관계다. 많이 사랑하는 친구들이지만, 어쩐지 그들은 용희의 호의를 이용하는 것만 같다. 용희는 점점 그 마음을 의심하게 되고, 친구들은 바짝 마른 모래알처럼 그의 손바닥 위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남매의 여름밤>이 할아버지의 2층 집을 통해 이별의 과정을 통과하는 옥주의 마음에 물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불꽃놀이>는 세 친구가 숨어 들어가 작은 파티를 즐기는 폐허가 된 유원지의 미장센을 통해 용희의 쓸쓸함을 시각화한다.

용희와 옥주가 닮았다고 하자, 윤단비는 “고등학교 때까지 어디에도 소속감을 못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 외로움, 그런 정서가 용희와 옥주에게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불꽃놀이>와 <남매의 여름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건 이 때문일 터다. 각양각색의 조각들로 이뤄진 세계에서 내 한 몸을 맞춰 넣을 빈자리가 없다는 난망함과 살아도 살아도 삶이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초조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용희와 옥주의 이야기에서 함께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더불어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찰나였지만, 그런 서먹한 삶에도 불꽃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었음을.


영화 <남매의 여름밤> 촬영 장소


우연성이 펼쳐진 순간, 영화라는 마법

윤단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봤을 때, 나를 이해해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계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10대의 윤단비는 광주극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영화라는 단단한 소속감”을 만났다. 그에게 영화란 그런 존재였다. 영화를 보던 기억을 더듬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남매의 여름밤>에서 느꼈던 그리움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영화가 어쩐지 나에게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다가왔던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고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가 부상하면서 영상의 지속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편집의 템포는 한 프레임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화려한 자막은 끊임없이 “이 장면은 이렇게 읽으라”며 사유의 가이드를 제공한다. 2020년대 ‘영화적인 것’의 모습이다. 

그러나 ‘밀레니얼 감독’이라고 불리는 윤단비의 영화는 밀레니얼의 영상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남매의 여름밤>의 카메라는 단 한 번도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의 무게에 책임을 지고 한 자리에 앉아, 묵묵하게 인물과 사물에 시선을 뻗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그저 도구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서였다. 영화가 자아내는 노스탤지어가 다른 무엇보다 사라져가고 있는 ‘영화적인 것’에 대한 향수로 다가왔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길이 든 전축과 낡은 재봉틀처럼,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아날로그 기계들에서 필름 영화의 질감을 느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최정운(왼쪽), 박승준 배우


<남매의 여름밤>이 사라져가는 ‘영화적인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필름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는 말에, 윤단비는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 온 친구가 디지털 카메라를 쓰면서 왜 필름 카메라처럼 찍느냐고 묻기도 했다.” 필름을 아껴 찍듯이, 시간에 여유가 있어도 방만하게 촬영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카메라를 계속 돌리면, 확실히 편집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하지만 그만큼 현장에서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쇼트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가벼워질까봐, 경계했다.”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은 영화의 대한 그의 또 다른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이제 영화에서는 콤포지션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CG와 후반 작업이 모든 것을 수정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윤단비에게 영화는 작가가 그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통제의 예술이라기보다는, 우연성을 포착하고 발견하는 허용의 예술이다. 그는 “영화감독은 현장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의 우연성을 영화 안으로 들어오도록 관장하는 사람”이라는 오슨 웰스의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남매의 여름밤>을 찍을 때에도 영화를 해치지 않은 선에서 모든 것을 열어놓고 촬영했다. 골목을 뛰어가는 고양이, 집 앞을 지나가는 취객,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잠든 동주의 얼굴. 보석과도 같은 순간들은 그렇게 포착되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  현장 스틸


장소 상실의 시대의 ‘나만의 장소’

<남매의 여름밤>의 또 하나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집이다. 옥주보다 먼저 집에 들어가 있고, 옥주보다 늦게 집을 떠나는 카메라 덕분에, 집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게 된다. 어쩌면 영화 전체가 할아버지의 집이 꾸는 꿈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고 쓸쓸하다. 집이야말로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그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 반지하 집을 나선 옥주 가족은 다마스에 올라탄다. 그리고 벽면에 커다란 엑스 표시로 낙인이 찍힌 채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다 부서진 집들을 지나친다. 곧이어 다마스는 폐허나 다름없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화려한 건물이 보이는 큰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리움을 읊조리는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우리 시대의 장소 상실을 포착한다. 모든 것을 빠르게 허물어 재개발하고, 부동산이 자산 증식의 지름길이 된 시대에, 어떤 공간에 애착을 가지고 그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호사는 잘 허락되지 않는다. 집이 ‘사는 곳to live’이 아니라 ‘사는 것to buy’이 되어 버린 지금/여기. 할아버지의 집은 영화가 주는 위로다. 

옥주는 공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액자’가 걸려있는 집을 빼앗아간 장소 상실의 현장을 등지고 할아버지 집으로 옮긴 날, 옥주는 낡은 집 2층 방을 차지한다. 친밀하지 않은 물건들 사이에서 모기장을 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면서, 옥주는 할아버지의 집을 ‘나만의 장소’로 만들어 간다. 그러므로 집 역시 옥주를 편안하게 감싼다. 옥주가 누구보다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할아버지의 집을 지키고자 하는 건 집과 친밀함을 나눴기 때문이다. 혹은 이 집 이후에는 무장소성의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윤단비 감독


인터뷰의 끝에 윤단비는 “VOD를 서둘러 내지 않고 가능한 극장에서 많은 관객들을 만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매의 여름밤>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영화를 만질 수 있는 특별한 공간, 그런 ‘장소’로서의 극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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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희정(문화평론가)

페미니스트 크리틱. 논문 〈21세기 한국영화와 네이션〉으로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쓰는, 세계》《페미니즘 리부트》와 《성평등》을 썼고, 《을들의 당나귀 귀》와 《그런 남자는 없다》를 책임 편집했다. 함께 쓴 책으로는 《대한민국 넷페미史》, 《페미니스트 모먼트》, 《그럼에도 페미니즘》, 《소녀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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