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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M이 음악에서 중요한 이유

이즘 특집 : 특별 기획 ‘미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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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제도적인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대중음악을 점령하기 시작한 흑인음악의 영향력. 이 두 흐름은 무관하지 않다. (2020.10.16)


2020년 미국을 관통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흑인 차별 반대(Black Lives Matter, BLM)다. 5월 25일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살해는 미국 전역을 뒤흔든 시위로 이어졌고, 제도적 인종차별의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는 음악계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비욘세, 앤더슨 팩(Anderson. Paak)을 비롯한 흑인 가수들이 저마다 시위를 지지하는 싱글을 냈고, 음악산업 종사자들은 소셜미디어 해시태그를 통해 블랙아웃 튜스데이 캠페인(#blackouttuesday)을 진행하며, 6월 2일 하루 동안의 침묵을 통해 BLM의 메시지와 자원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동시에 대중음악 속 흑인음악의 영향력은 전에 없는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2019년에는 리조(Lizzo)와 릴 나스 엑스(Lil Nas X), 올해에는 도자 캣(Doja Cat),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 로디 리치(Roddy Ricch) 등이 차트를 뒤흔들었다. 힙합과 알앤비는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핵심 장르로 자리 잡아, '레트로 열풍'을 위시한 뉴 잭 스윙의 소비가 재점화된 지 오래다. 흑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제도적인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대중음악을 점령하기 시작한 흑인음악의 영향력. 이 두 흐름은 무관하지 않다.



사회에서 비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겪게 되는 상황 중 하나가 바로 '지워짐'이다. 주류가 비주류의 문화를 차용하면 원래의 맥락이 지워지고 새로운 맥락이 생겨난다. 음악계의 BLM운동이 주목하는 지점이 여기다. 흑인들의 음악을 사랑한다면 흑인들도 사랑하는 사회가 되어야지, 음악만 남긴 채 흑인들을 지워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다. 6월 말, BLM을 테마로 온라인에서 개최된 흑인 엔터테이너들의 축제 BET 어워즈는 “우리 문화는 없는 셈 치기엔 너무 크다(Our culture is too big to be cancelled)“는 오프닝 멘트로 그 에토스를 담아냈다.

피부색을 기반으로 한 차별과 억압도, 이에 대한 저항정신이 담긴 음악도 2020년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다. 런 더 쥬얼스 (Run The Jewels)는 이번 BLM 시위를 지지하며 신보 <RTJ4>를 예정보다 일찍, 무료로 배포하며 백인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사회를 '눈 속을 걷고 있' 는듯한 기분에 빗대어 노래했지만, 5년 전 2015년에 켄드릭 라마가 <To Pimp A Butterfly>로 먼저 '우린 모두 괜찮을 것'이라며 공권력의 부당한 위력 행사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위로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흑인 음악계 저항의 역사는 1980년대에 'Fuck tha police'라며 분노를 폭발시킨 N.W.A를 지나서도 계속된다.



흑인은 범죄자일 확률이 높다는 편견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타자성과 합쳐져 불공평한 검문과 과잉진압으로 이어지고, 흑인 음악과 문화에는 그 설움이 묻어난다. 파고 들어가 보면 제도적인 인종 차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례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레드 라이닝(Red Lining), 즉, 특정 구역에는 흑인이 부동산을 구매하거나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태가 합법적으로 행해졌다. 돈이 있어도 흑인이라면 백인들과 함께 살 수 없고, 교육을 포함한 지역 예산 배분 및 집행이 백인들의 동네 위주로 돌아가면서 흑인들이 사는 동네는 점점 낙후되어 가난의 악순환에 갇힌다. 갱스타 랩의 성지 콤프턴도, 이사 오는 흑인들을 피한 백인들의 교외 이주(White Flight)에서 탄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런 더 쥬얼스의 활동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래퍼 킬러 마이크(Killer Mike)는 구조적인 차원에서 흑인 사회의 재기를 위해 노력해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애틀란타에서 낙오된 구직자들에게 커리어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 미용실을 운영 중이고, 갱 단원들의 갱생을 돕고자 이들의 이름을 딴 콜라(Crip-a-Cola, Blood Pop)를 출시해 판매했다. 자본과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방지해 근본적으로 폭력을 근절하려는 노력이다. <RTJ4>의 가격을 자율 지불로 설정해 배포하고, 모든 수익을 BLM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건 이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켄드릭 라마의 음악 역시 구조적인 소외의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내 묘사했기 때문에 강력하다. 콤프턴에서 자라면서 목격한 동네의 경제적 소외와 만연한 폭력,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고향에 대한 애증의 감정들은 백인들 듣기 좋으라고 노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처지의 흑인들에게 그들의 경험과 감정이 정당하다는, 공감을 통한 위로를 건넨다. 그 증거로 BLM 시위대들은 'Alright'의 가사를 외치며 행진하고, 흑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공론화될 때마다 이 곡의 스트리밍 수가 폭등한다. 대대적인 BLM 시위가 벌어질 때면 '켄드릭은 어디 있냐'고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와 그의 음악은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은 비단 킬러 마이크와 켄드릭 라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차일디쉬 갬비노(Childish Gambino)가 노래했듯, '이게 미국이다.' 바다 건너에서 휘몰아치는 격한 감정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남의 음악을 들으려면 남의 일을 알아야 한다. BLM이 이야기하는 억압과 차별은 흑인 뮤지션들도 예외 없이 겪어온 현실이다. 저항과 연대의 정서가 2020년에만 반짝 떴다가 질 유행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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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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