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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예민해도 괜찮아요

<월간 채널예스> 2020년 10월호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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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에 유난히 약하거나 카페인에 유달리 둔감한 체질이 존재하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청력이나 시력이 약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예민함’ 또한 그저 개인의 타고난 특성 및 체질에 불과했다. 내가 예민한 것이 내 탓이 아니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2020.10.06)


“왜 이렇게 예민해?” 살면서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들을 때마다 매번 위축되었던 말이기도 하다. 그러게, 난 대체 왜 이렇게 예민한 것일까. 왜 별것도 아닌데 이렇게 신경을 쏟을까. 왜 타인의 시선에 이렇게나 전전긍긍할까. 왜 남들처럼 웃으며 넘기질 못할까. 왜 돌이킬 수 없는 일로 밤마다 잠 못 이루며 괴로워 할까.

오랫동안 ‘예민함’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화두였다. 나는 알고 싶었다. 이해하고 싶었다. 나의 예민함, 우울함, 불안함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차마 정신과를 방문할 용기는 없었던지라 스스로가 ‘왜 이 모양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온갖 심리학 서적을 읽어댔고, 때로는 정신병리학 전문서적까지 찾아가며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술서적에 실린 온갖 유형의 성격장애들에 대한 설명은 그저 무시무시하게만 느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예민함이란 매우 해로운 특성처럼 느껴졌고,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상한, 꼭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예민한 자신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는 사이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점점 깊어만 갔으며, 그러한 감정들은 매 순간순간 지금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졌다. 자연히 일상은 늘 피로했다.

그러던 내가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러니까 예민함이 어떤 성격적 결함이 아닌 일종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였다. 신장이나 체형을 개인의 의도나 노력으로 바꾸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처럼, 예민하다거나 무디다거나 하는 등의 성정도 타고나는 부분이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부터. 

그런고로 예민한 사람은 딱히 어린시절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어서도 아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어서도 아니고, 정신력이 약해서도 아니고, 성격이 나빠서도 아닌, 그냥 아무 이유 없이도 그럴 수 있는, 예민하게 타고난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알코올에 유난히 약하거나 카페인에 유달리 둔감한 체질이 존재하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청력이나 시력이 약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예민함’ 또한 그저 개인의 타고난 특성 및 체질에 불과했다. 내가 예민한 것이 내 탓이 아니라니. 그 사실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에 더해 나는 예민함이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마냥 쓸모없고 해로운, 남들 앞에서 감추어야만 할 결점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쓸 때는 예민한 성격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민하기 때문에 남들이 신경쓰지 않고 지나치는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경우가 있었고, 예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감정의 결까지 느낄 수 있는 때가 있었다. 그렇게 예민함이란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고, ‘교정’해야만 하는 특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내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여 마음이 편해지기까지는 매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온갖 관련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고, ‘난 왜 이럴까’를 토로하느라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를 무수히 괴롭히기도 했다.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일기와 불면으로 지샌 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그 당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몸으로 부딪혀가며 오랜 세월 고생해서 깨우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물론 그때는 그런 책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난 7월 출간된 전홍진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은 앞서 내가 답습한 ‘예민함’의 모든 특성을 총망라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예민함이란 개인이 지닌 일종의 체질이며, 환경에 따라 다소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경향은 있지만 타고나는 부분이 크며, 반드시 나쁜 것도 교정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잘만 하면 오히려 직업적 성공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그런고로 스스로의 예민함을 너무 자책할 필요도 거기에 지나친 자괴감을 느낄 필요도 없으며, 일상에서 이를 현명하게 다루는 지혜와 요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렇다고 예민한 사람들에게 공감하거나 위로를 선사하는 뻔한 ‘힐링 서적’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23년간 정신과 진료를 하면서 1만 명의 환자를 만난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지만 뇌과학 연구에도 조예가 깊은데,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민함’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우울한 혹은 불안한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는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는지, 이때 어떤 활동을 하면 이러한 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고 술이나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이러한 상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

그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저자는 예민함을 완화할 수 있는 팁을 여럿 제시하는데, 기존의 심리 관련 많은 자기계발서에 등장했던 조언, 이를테면 ‘용기를 내라’거나, ‘기운을 내라’거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등의 두루뭉술하고 뻔한 말들 대비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아 매우 유익하다. 그에 더해 책에 실린 예민한 성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한 유명인들 및 저자가 직접 상담하며 관찰한 40명의 상담 사례 또한 무척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예민한 이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였다. 그러니까 사회에서 종종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취급을 받는, 성격이 나쁘고 쓸데없는 것으로 꼬투리를 잡으며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것으로 대충 뭉뚱그려지곤 하는 ‘예민한’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일상에서 긴장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용한 조언을 얻는 것에 더해 의도치 않았던 ‘위로’까지 받을 수 있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전홍진 저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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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승혜(작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에서 영문학과 일본문학을 공부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을 하다 퇴사 후 두 아이를 기르며 〈서울신문〉, 〈오마이뉴스〉 등의 매체에 여성과 육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에세이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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