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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얘기를 쓰고 싶게 만들어주는 소설

『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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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사랑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감정을 사랑이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들의 고리를 연속해 꿴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2020.09.14)


안정적인 수학 교사로 일하다 돌연 퇴직하고 아마추어 복싱 선수가 되더니, 지금은 소설을 쓰는 독특한 이력의 작가 설재인. 자신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는 설재인 작가가 첫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을 들고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가족과 학교로부터 방치된 열다섯 살 소녀 유주와 상미,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진영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여성 서사를 담아낸 이 작품은, 갓 서른을 넘긴 이 젊은 작가의 무한한 잠재력을 엿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번 하고 싶은 이야기에 몰두하면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놀라운 저력의 신인 작가 설재인을 만나보았다.



소설집과 에세이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해 직접 간략히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도시의 돈 없는 10대 청소년은 어디서 방학을 보낼 수 있을까?”란 질문에서 시작한 소설입니다. 더운 여름방학, 서로를 모르던 10대 여자아이 둘이서 각자 도서관의 서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는 척하며 시간을 죽여요. 그러던 중 어떤 여자 하나가 점심을 사주겠다며 다가옵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사랑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감정을 사랑이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들의 고리를 연속해 꿴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물론 모든 사랑의 순간들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지만요). 유치원 가면 색종이 가지고 고리 길게 연결해서 장식품을 만들잖아요.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그런 움직임의 소설입니다.

갈 곳 없는 10대 아이들인 유주와 상미, 역시 갈 곳 없는 어른인 진영이라는 세 인물의 거리감이 독특했어요. 쉽게 가까워질 것 같은 관계가 그렇지 않았고 가까워지지 않을 듯한 사이가 또 좁혀지는 걸 보면서 드는 묘한 긴장감이 흥미로웠는데요. 세 인물의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중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면 갈 곳이 없어서 종일 도서관에 있곤 했어요. 동네에는 도서관이 없어서 버스 타고 중앙도서관까지 나가서 책 보다가 탄산음료 뽑아 마시고, 컵라면 먹고, 하면서 지냈어요. 집보다 거기가 더 편했어요.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자 앞의 답변 첫 문장에서 말했던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거예요. 특히 그때의 저처럼 담력이 약하고 탈선을 무서워하는 애들 같은 경우엔 또래들이랑 어울려 여기저기 쏘다니지도 못하거든요. 그렇게 여름방학에 집이 무서워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있는 아이들의 얘길 시작하게 되었고요.

제가 만드는 인물들은 아주 조금씩 다 저를 닮은 구석이 있는데요(아마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의 작품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요), 일단 진영은 알코올중독 성향이 있다는 점에서 저랑 닮았고요…… 그리고 애들에게 뭔가를 막 해주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해요. 저는 제가 10대 애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좀 비뚤게 보자면, 별것 아닌 호의를 부려서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때 느낄 얕은 자기만족감 때문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진영이란 인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세 모양의 마음』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인데, 유주와 상미와 진영의 마음을 모양으로 표현해주신다면요? 

셋 다 똑같아요. 클라인 병과 같이 어느 차원을 넘어서야만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모양. 3차원에 있는 사람들은 클라인 병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자기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몰라도 어쨌든 만들어져는 있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세계의 논리로는 잘 설명이 안 되는 것 같고, 그렇지만 분명 부피감을 가지고 그 자리에 존재하긴 하기 때문에 없다고 치부하거나 무시하지도 못하는 느낌?

사실 위의 답변을 더 멋있게 꾸미고 싶은데 대학 입학 첫날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는 걸 깨달았던 수포자라서…… 더는 수식을 못 하겠고요……. 또 다른 답변을 드리자면 ‘맛있는 것의 모양’이기도 할 것 같아요. 모양만 봐도 음식이 생각나는 도형들이 있잖아요. 도넛, 꽈배기, 소프트 아이스크림, 뭐 이런 것들은 검은색으로 실루엣만 그려놓아도 무엇인지 파악이 되고 바로 군침이 돌잖아요. 그런 모양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 사람은 식구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셨어요. 수학 교사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하면서 출판 편집자로 일하신다고요. 그리고 최근 2년 사이에는 세 권의 책을 출간하셨어요. 벌써 이렇게 다양한 이력을 만드신 것도 놀랍지만, 직장 생활과 운동과 창작을 병행하신다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보통 새벽 4~5시 정도에 일어나고, 소설 작업은 출근 전까지 합니다. 집에서 할 때도 있고 아예 직장 근처의 카페에 오픈 손님으로 들어가 앉아서 할 때도 있는데 어쨌든 변하지 않는 건 언제나 아주아주 거한 아침식사와 함께……라는 점이에요. 먹으면서 써요. 하루 작업량은 최소 원고지 10매로 정해놓고 시작하고요.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분량은 넘기도록 스스로를 다그쳐요.

9시부터 18시까지 일하고 나서는 복싱 체육관이나 클라이밍 센터에 가서 운동을 한 세 시간 하고, 집에 와서 책 읽다 12시쯤 잡니다. 자기 직전엔 그날 아침에 작업했던 걸 다시 읽어두고요. 그래야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바로 작업에 돌입할 수 있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세 개를 병행하냐고 놀라시곤 하는데 잠이 30대 들어서 굉장히 적어진 편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한 것 같고요. 새벽마다 저절로 일어나는 걸 보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자기 할머니 같다고. 그리고 사실 다른 걸 잘 안 해요. 게임도 안 하고. 웹툰도 넷플릭스도 안 보고.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작가님에게 소설을 쓰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재미요. 재미있어요. 제가 소설 쓰는 방식은 아이들 소꿉놀이와 비슷하거든요. 상황이 깔리고 인물 두어 명이 나타나요. 서로 막 대화하다 보면 분명 시작할 땐 생각지도 않았던 갈등이 등장해요. 새로운 인물도 끼어들고요. 그러다 보면 설정 붕괴도 일어나잖아요? “야 네가 아깐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 왜 바뀌어!”라면서요. 계획 없이 쓰니 항상 구멍이 생기는 거죠. 그러면 앞으로 돌아가서 이것저것 바꾸고 타협하며 구멍을 메웁니다. 그러곤 돌아와 다시 신나게 인형놀이를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노니까, 아직까지는 질릴 틈이 없었어요.

인물들이랑 관계 맺는 게 너무 좋아요. 걔들을 앉혀놓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도 제가 즐기는 일이고요. 그래서인지 제가 절대 사랑할 수 없을 인물을 만들어내는 연습이 좀 필요하다는 걸 요새 깨닫고 있어요. 그리고 더 현실적인 원동력이라면, 매일 작업 막판에 Ctrl Q I를 눌러 분량을 확인할 때입니다.

평소 어떤 책들을 주로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중학교 졸업한 후 10년 가까이 책을 거의 안 읽던 기간이 있었는데요, 다시 소설에 파묻히게 해준 분이 박형서 소설가입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요. 아마 만나면 울면서 혼절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그 작가님의 단편 「열한시 방향으로 곧게 뻗은 구 미터가량의 파란 점선」이 도서관에서 빌린 무슨 문학상 작품집에 실려 있었는데, 그걸 읽고 뿅 가버렸어요. 사랑에 빠지는 건 진짜 순식간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분 작품을 다 사서 봤어요. 세상에, 아무리 천재여도 그렇지 이런 천재가 있어? 심지어 너무 웃기잖아? 싶었어요. 요새도 일 년에 두 번쯤은 ‘박형서 정주행 주간’을 만들어서 한 바퀴씩 돌려요. 박형서 작가님이 주필봉 같은 필명으로 책을 쓰시면 제가 동일 인물임을 추궁하는 탐정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진지합니다.

사실 그 외에도 소설을 너무나 좋아해서, 읽는 책의 80% 정도는 다 소설인 것 같아요. 나머지는 인문서나 에세이고요. 취향이든 아니든 일단 소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읽으려고 합니다. 그 과정이 모두 창작을 위한 공부라고 여기고 읽어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으신지요?

읽는 분들로 하여금 자기 얘기를 쓰고 싶게 만들어주는 소설을 지어내고 싶어요. 아 나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걸 스스로 글로 풀어내실 수 있게 만드는 소설을 계속 쓰고 싶어요. 그 시작이 다시 또 그 분만의 소설로 커나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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