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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련의 엇갈린 관계] 모두가 조금씩 불편한 세상은 어떨까?

<월간 채널예스>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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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른 척하거나 아는 척하게 된다. 그건 고유성을 일반성으로 얼버무려 버리는 건데 흔히 공감이나 이해, 혹은 경멸이나 배제로 이어진다. (2020.09.07)


우리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고유성’을 살리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한 사람의 고유성’을 살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냥 자기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가치를 살려내야 하는데 특별하고 고유한 것은 소통되기 어렵다. 말로 전달하고자 하면 그냥 일반적인 것이 돼버리고 마니까. 그저 그것을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험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유성을 마주할 때 낯설고 두려워진다.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다. 여하튼 편하진 않다. 모르는 것을 마주하면서 맘이 놓이기는 어려우니까.  

그래서 모른 척하거나 아는 척하게 된다. 그건 고유성을 일반성으로 얼버무려 버리는 건데 흔히 공감이나 이해, 혹은 경멸이나 배제로 이어진다. 공감과 배제는 정반대의 태도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 가지 점에서 동일하다. 바로 자신과 다른 누군가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그럽고 포용적인 사람, 남을 수용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미덕이라고 배우기도 했다. ‘나와 다른 것을 잘 품을 줄 알아야 해!’ 그래서 서로 양보하고 맞춰가며 살아간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게 비슷해’, ‘그래도 우리는 이런 걸 서로 알아.’ 동일한 것을 찾아 공감하고 공유하면 마음이 놓이면서 가까워진다. ‘너는 나랑 이런 게 같구나.’

그렇다고 무한정 참고 받아줄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는 법이니. ‘그래도 이건 좀 거북해!’, ‘보살도 아니고 모든 것을 품을 수는 없지.’ 그렇게 구분이 생긴다. 다수의 유사한 것과 정말 다른 어떤 것. 많은 것을 품는 너그러운 사람도 품을 수 없는 어떤 것. 

하지만 그런 구분이 진짜 구분일까? 세상은 정말 비슷한 많은 것들과 그것에 섞이지 못하는 소수의 몇 가지 것들로 나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전부 다른 고유성을 지닌 특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한명 한명 모두가 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는 그 누구와도 조금은 다른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차이를 모른 척하고 하나로 묶인다. 그렇다고 그 차이가 어디로 사라지진 않는다. 작은 차이는 약간의 긴장, 약간의 거북함을 동반하며 늘 그 자리에 있다. 그런 소량의 차이들이 다수의 관계 속에서 겹치고 쌓이면 답답하고 신경에 거슬리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그럼 그걸 어떻게 해결할까? 한 사람에게 전가하면 편하다. “쟤는 우리랑 많이 달라, 쟤랑 있으면 많이 불편해.”

그룹, 단체, 공동체가 생기면 서로 맘이 통하는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특이한’ 소수의 사람들이 구분된다. 하지만 그런 구분이 진실은 아니다. 조금씩 서로 달라 소통이 안 되는 부분을 조금씩 떠안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편하게 재분배된다. 대다수의 작은 차이는 같은 걸로 치고, 어떤 작은 차이만 큰 차이가 된다. 

별일 아닌 듯이 보일 수 있지만, 한 집단이나 공동체가 특정한 사람이나 소수의 그룹을 혐오나 배제의 대상의 삼는 원리가 이런 관계 속에 숨어 있다. 문제는 배제되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 안에 공통된 요소로 묶인 사람들도 자신의 특별한 고유성을 동일성 속에 융합시키게 된다. 우리는 흔히 “나는 쟤랑 정말 달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쟤 사이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엔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다. 누가 누군가와 정말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모두가 서로 약간씩 다를 뿐이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대개는 다수의 사람들)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원래 할당되어야 할 책임의 몫을 조정해서 재분배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런 재분배는 효율성, 친절, 정(情), 도리 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에겐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사람 사이에 정이 있다’, ‘도리를 지켜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등의 교훈이 있다. 모두 좋은 교훈이다. 하지만 좋은 것이 좋기만 하진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a에 좋은 어떤 것은 a가 아닌 것에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지역 강의를 갈 때마다 강의 관리를 담당한 사람들의 업무가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 이외에 강사나 청강생들을 위해 친절을 베풀고 도리를 다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강사가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 담당자가 기차역까지 픽업을 나와주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멀리서 오는 강사가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하라고, 혹은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최근 들어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친절하고 상냥한 공짜 서비스들이 즐비하다. 그런 서비스를 고맙게 받는 것은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소위 갑질이라 불리는 횡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원래 해야 할 일이 아님에도 도리로, 친절로, 서비스로 하나 둘 사소한 것들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편의에 익숙해지면 당연히 문제시되어야 할 누군가의 희생도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해서 기꺼이 받을 수 있게 된다.

흔한 경우라면 한 사람에게 떠맡겨지는 육아, 가사, 간병 등이 있다. 여럿이 나누면 서로 조금씩 고생하고 갈등하게 된다. 모두가 서로에게 뭔가를 요청하고, 간간이 힘들다고 불평하게 될 것이다. 모두에게 조금씩 거리가 생긴다. 대신 특정한 사람만 분리되어 동떨어지는 일은 없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그런 상황을 반기지 않는다. 모두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그래서 고생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려고 하기도 하고, 자신이 떠맡으려고 하기도 한다. 그렇게 또 구분이 생긴다. 편안한 사람들과 고생하는 한 사람. 사실은 모두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 사람이 떨어져 나와주면 다수의 사람들이 한 무리가 될 수 있다.



『임계장 이야기』의 임계장은 그런 구분 속에서 분리되어 고립된 사람이다. 생계를 위한 일터에서 임계장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른다. 한 사람인 임계장 앞에 다수의 사람들이 마주 서 있다. 같은 아파트 주민, 같은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 같이 출퇴근하는 사람들, 같은 소비자...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같은 사람들일까?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 한 사람에게 넘겨진 ‘사소한’ 일들로 임계장의 등골이 휘고 숨이 막힌다. “아니, 경비가 그런 것도 안 버려주나요? 아침에 출근하느라 바빠서 쓰레기장까지 갈 시간이 없어요.”, “모기약 좀 사다 달라, 가구를 옮겨달라, 쌀포대를 들어 달라, 길고양이가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쫓아 달라...” 다수의 사람들이 겪을 작은 불편함이 덜어지고 대신 한 사람의 몸이 파괴된다. 

물론 임계장의 말처럼 ‘인간적 품위까지 바란’ 게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 수 있는 나라를 원했을 뿐’인데 그것조차 가능하지 않은 환경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임계장도 자신이 몸이 부서져라 일한 노을 아파트의 주민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참, 친절하시네요. 고맙습니다. 즐거운 명절되세요.”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 되고, 고마움을 표할 수 있게 된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면 보통은 좋은 사람이 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누군가에게 고맙고 미안해진다. 카드도 쓰고 선물도 주게 된다. ‘홍시를 주면서 온화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고생이 참 많소.” 하지만 구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마운 임계장과 그 덕을 보는 사람들.  

사회 어느 곳에나 특정한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할당되지 않은 애매모호한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 중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있고, 꼭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것을 다 유지해야 할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사회가 된다면 그런 일들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아야 한다.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나쁜 것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는지. 친절하고 다정한 사회 뒤에 누군가의 아픔과 눈물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일의 할당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일들을 누가 하느냐는 것. 누구나 어떤 곳, 어떤 순간에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대신 책임을 떠맡는 입장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헌신하는 아름다운 일처럼 보여도 또 다른 맥락에선 그것이 누군가를 착취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두가 조금씩 고생하는 건 어떨까? 비슷해 보이는 다수의 사람이 편하기 위해 유독 달라 보이는 한 사람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다른 우리가 모두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어떨까? 어떤 누군가를 우리와 다르다며 등 떠밀어 외롭게 내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떨까?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저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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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수련(정신분석학 박사)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에서 정신분석 임상을 실천하고 있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썼고,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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