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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8월 우수상 – 여름 씨, 저랑 낮맥 한 잔 하실래요?

여름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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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맞짱 뜰 방법, 반드시 찾아야 한다. 나는, 그 답을 낮맥에서 찾았다. (2020.08.05)

언스플래쉬

여름, 그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다. 끈적이고 텁텁하고 숨이 찬다. 남편은 땀이 많아 여름엔 옷을 두어 번씩 갈아입는다. 빨래통은 금세 차기 일쑤다. 아이들은 입맛을 잃고 매번 밥상 메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안 먹어!” 같은 협박을 해댄다. 

에어컨 아래 오래 있으면 편두통이 생긴다. 선풍기 만으론 역부족인데 아이들은 자꾸만 내 살에 부대끼며 ‘엄마, 엄마’를 찾는다. 자연스레 짜증과 무기력이 반복된다. 여러모로 힘든 계절이다. 여름은... 

 우자효 시인은 여름이라는 시에서 ‘포도송이처럼, 석류알처럼, 여름은 영롱한 땀방울 속에 생명의 힘으로 충만한 계절’이라고 여름 예찬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은 영롱한 땀방울이 아닌 주부의 땀방울로 여름존버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여름의 에너지가 너무나 버겁다. 햇살은 뜨겁고, 청춘은 활기찬데, 나만 바짝 말린 오징어처럼 감정의 수분을 쫙 뺏긴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의 긍정 에너지도 햇볕에 증발한 듯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름에게 굴복하긴 싫다. 내 기분을 계절 탓으로 돌리는 핑계 많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 특히 이번 여름은 코로나 19로 인해 여행도 힘들고 마스크까지 써야 해서 여름나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여름과 맞짱 뜰 방법, 반드시 찾아야 한다. 

나는, 그 답을 낮맥에서 찾았다. 영혼을 유연하게 해준다는 술에서 말이다. 본래 술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다. 낮에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여름만 되면 맥주가 땅긴다. 여름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맥주가 따라온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마시는 맥주, 공원 나무 그늘에서 마시는 맥주, 불 앞에서 요리하며 마시는 맥주, 심장이 얼얼할 만큼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야말로 나와 이 여름을 화해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낮맥은 밤맺과 달리 부담스럽지 않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살짝 달래는 용도로 쓰이기 딱 좋다. 혼맥과 책맥을 결합하면 더더욱 즐거워진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영혼을 위해 마시고 취하라"라고 했다. 알코올은 인간 본성의 신비로운 기능을 자극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름에 지친 내 영혼을 위해 낮맥을 택했다. 알코올의 힘을 살짝 빌려서라면 여름, 까짓것 좋게 봐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맥주를 마실 때 홀짝이는 건 재미없다. 쓰면서도 단 맥주의 오묘한 맛을 오장육부에서 누리려면 소리 내 벌컥벌컥 마셔야 한다. 이때, 목구멍을 톡 쏘아버리는 시원함! 캬아~하는 말끝을 타고 흐르는 투명한 액체를 손등으로 털어내면 여름의 갈증도 단번에 날아갈 것이다. 이 계절이 아니면 절대 느낄 수 없는 맛이라고 생각하니 여름에게 급호감이 생기기도 한다.

슬슬 관자 부위와 인중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맥주 5캔에 만원이라는 편의점 행사는 아직 유효할까? 지갑을 챙겨 집 앞 편의점을 가봐야겠다. 아 참, 냉장고에 맥주 넣을 공간도 비워놔야겠군.


조영지 밥 짓는 주부, 글 짓는 작가입니다. 매일 가족을 위해 소박한 밥상을 차려내듯 어디선가 당신을 위한 소박한 글을 차려내고 있겠습니다. 그때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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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영지(나도, 에세이스트)

밥 짓는 주부, 글 짓는 작가입니다. 매일 가족을 위해 소박한 밥상을 차려내듯 어디선가 당신을 위한 소박한 글을 차려내고 있겠습니다. 그때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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