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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박지음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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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설이 무리해서 밝아질 수 없다면 어둡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의미’ 있는 글을 써나가는 작가로 기억되겠습니다.

박지음ⓒ저자제공

박지음의 첫 번째 소설집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에는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저마다 편견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삶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지 고군분투한다. 문학 지원금 심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는 신인 작가가 있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되는 직장인, 몇천 원을 쪼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수험생도 있다. 안정감을 줘야 할 가족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해 다른 탈출구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를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뻔히 보이는 것들을 못 본 척하기도 한다. 

이번 소설집은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 들끓는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제각기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매 작품, 온 힘을 다해 작품 속에 ‘의미’를 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박지음 작가는 비극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설 때 돌파구가 열린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비극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작품을 쓸 때에도 그것은 단순히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극복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현실의 벽 앞에 선 그녀들의 이야기

이제 막 첫 책이 나왔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래 기다리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책이 출간되어 무척 기쁘고 설렙니다. 마치 아이를 출산한 듯한 기분에 내 책이 어디 가서든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품 속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기혼 여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러한 인물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직접 취재를 하면서 글을 쓰시는 편인지요? 

생활 속에서 겪는 심리적 충격으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작품 대부분은 낯선 장소로 떠났을 때, 그 장소에서 느껴지는 냄새나 시각적으로 발견된 독특함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이렇게 영감을 얻고 나면 그 공간에 대해 조사하고 취재를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표제작인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여행을 갔다가 만난 독신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 후 그녀들을 근 1년은 만나면서 취재를 했습니다. 녹음기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저를 낯설어하다가,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쏟아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레드락」 또한,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라는 도시에서 있었던 조카의 결혼식에 갔다가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그곳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을 화제로 교포들과 저는 토론을 벌였습니다. 저는 광주의 일을 겪고 진상규명집회를 하다가 잡혀가 고문당했던 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애프터 광주’에 대해서 고심했습니다. 작품을 썼다가 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톰볼로」는 여수 정유단지에 갔다가 그곳에서 나는 강한 석유 냄새, 그곳의 사택, 고립감 등을 보면서 ‘닿지 못하는 관계’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여수 정유단지를 설계하신 분을 알고 있었기에 그곳에 대한 자료조사가 원활할 수 있었습니다. 

제 소설에 기혼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제가 기혼 여성이라 무의식적으로 설정을 그렇게 하는 듯합니다. 현재 기혼 여성이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방식은 주로 ‘돌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가정 안에 있는 여성의 심리가 히스테리 외에도 다른 심리적 층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돌봄 서사 외에 여성이 가진 ‘유리천장’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비극을 접하면서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작가님이라면 인물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제 소설집 속 여성들은 정은경 평론가님이 해설에서 말씀하셨듯, ‘누런 벽지’를 찢고 나온 여성들입니다.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라는 단편 속 여성을 말합니다. 소설을 쓰면서 저는 인물들이 그렇게 불행해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현실 속 비극은 더 끔찍하니까요. 하지만 읽으신 분들이 모두 어둡고 비극적으로 보시는 데는, 심리적 고립이 더해지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녀들은 끝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실제 삶 또한, 그러한 연장 선상에서 계속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들이 찾는 돌파구는 자신의 비극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이겠지요. 

그 인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결코 그녀들을 ‘누런 벽지’ 속 여자처럼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제가 그려낸 단면 속에서 불행했다면, 그 단면을 찢고 나가-미치지 말고- 자기의 길을 찾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의 목소리를 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녀들에게 팍팍한 현실을 만들어준 제가 작가로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네요.

소설집에 모두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요. 그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나 인물, 아끼는 문장이 있을까요? 

가장 아끼는 작품은 일곱 번째에 있는 「톰볼로」입니다. 이 작품을 쓰고 한 자 한 자 다듬으면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결코 닿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설에 설정해놓은 ‘고양이 섬’은 현실에 없습니다. 고양이를 이 소설 안에서 너무 잔인하게 죽였다는 자책감에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제 고양이를 볼 때마다 「톰볼로」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마치 작품 속 캐릭터가 살아서 제 눈앞에 돌아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가장 아끼는 인물은 「햄버거가 되기 위하여」라는 단편 속에 있는 스무 살의 여자입니다. 매일 굶으면서도 꿈에 부풀어 설레던, 어린 제가 많이 투영돼 있어서입니다. 지금 그녀를 만나게 되면 불고기버거 세트를 실컷 사주고 싶답니다. 

작가님의 약력을 보면 '진도 출생'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그 때문인지 「영등」과 같이 진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눈에 띕니다. 이러한 배경 외에도 소설을 쓸 때 영향을 주는 요소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설을 시작하게 되는 씨앗이 되는 것들은 어떻게 찾아내는지도 궁금합니다. 

진도에서 출생했다는 것은, 성장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 지역의 시대적인 사건을 체득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80년 광주의 사건을 몸소 겪지 않았지만, 그 사건을 겪었던 선생님께 지도를 받으며 망월동을 찾아가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영등」에 살짝 등장하듯이, 팽목항에서 뒤집힌 배는 진도 출신인 제게 자라온 섬에서의 상흔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동네 분들이 한꺼번에 배를 타고 우수영에 갔다가 배가 뒤집혀 모두 돌아가신 적이 있습니다. 또 그들의 가족들이 겪었던 불행들을 보고 자랐습니다. 

저는 답답할 때 갯벌이 펼쳐진 대부도를 자주 찾아가는데요. 제가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바다는 저에게 힘이 되고, 그래서 저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하게 되나 봅니다. 「영등」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섬을 아름답게 표현해보고 싶어 심혈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진도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해서, 문장의 무게를 덜고 서사도 잘 읽히게 썼습니다. 

제가 소설을 시작하게 되는 씨앗은 이렇게 자라온 저의 심성과 새로운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광활하거나 축축하거나 붉거나 뜨거운, 또는 아픈-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을 형상화해 저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제 생을 걸 만큼 매력적입니다. 

독자들에게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나요?

자기만의 벽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유리천장’이나 떨쳐낼 수 없는 삶의 비극이라도, 자신을 위해 넘어서거나 돌아가거나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 결심을 하는 데, 제 글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말씀해주세요. 

현재 쓰고 고치고 있는 소설은 장편소설입니다. 한 남자가 실종된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썼던 소설을 계속 고치고 있습니다. 

이번 소설집을 읽은 분들이 제 글이 어둡다고들 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밝은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싶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쓸 단편들에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유리천장’을 넘어가는 방식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또래의 ‘혼족’인 여성들이 결혼이나 외모, 일에 대해서 사회적 편견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슬기로운 마흔 생활’을 테마로 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동안 누런 벽지 안만 다루었다면, 이제 누런 벽지 밖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다루고 싶습니다. 

제 소설이 무리해서 밝아질 수 없다면 어둡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의미’ 있는 글을 써나가는 작가로 기억되겠습니다.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네바 강가에서 우리는
박지음 저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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