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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자 이진경, 니체의 망치를 들다

‘니체의 눈으로 읽는 니체’ 시리즈 이진경 철학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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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어떤 게 ‘내 맘대로’인지 ‘남의 말대로’인지가 아닙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어떤 게 정말 살고 싶은 삶인지를 알아야 합니다.(2020. 07. 07)


나이가 들수록 가장 무서운 건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아무도 어떻게 사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나이 먹고 이것도 못하냐는 핀잔을 들을 땐 괜히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치솟는다. 어려서부터 학교 다니는 내내, 심지어는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이래야 한다’, ‘저래선 안 된다’의 법칙에 갇혀 산 탓이다. 오랜 세월 이런 잣대에 길들여진 우리는 자연스레 ‘한다더라’(They say)의 삶을 살게 된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니체의 눈으로 읽는 니체’ 시리즈의 저자 이진경은 이처럼 ‘그들’을 주어로 하는 우리의 삶을 ‘불안에 쫓기는 안심’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니체의 망치를 들고 묻는다. 지금 하려는 그 일이 정말 삶을 사랑하게 하는 것인지, 너는 사랑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 사랑할 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지….

‘니체의 눈으로 읽는 니체’ 시리즈는 『사랑할 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와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를 통해 각각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를 함께 읽는다. 철저히 삶에 기반한 텍스트를 니체적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사이에 왜 니체가 그토록 숱한 오해 속에 읽힐 수밖에 없었는지, 니체가 그 수많은 말을 통해 전하려고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체감하게 된다. 삶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이들을 위한 저자의 진심 어린 메시지를 준비했다.



코로나 사태로 강의와 토론의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글로써 강의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번 니체 ‘강의록’은 선생님께 무척 뜻깊을 것 같습니다. 

니체는 읽을 때도 즐겁고 힘이 나는데 강의할 때도 그랬어요. 좋은 삶을 사는 방법,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란 말하는 이에게도 큰 기쁨을 주니까요. 그런데 강의한 것을 손보고 책으로 내니 더욱더 기쁩니다. 눈앞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들,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 좋은 삶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많은 분들께 그런 삶을 전하고 ‘선동’하는 기쁨이 배가된 셈이니까요. 더불어 책으로 만들면서, 저 또한 여러 번 읽었던 책인데도 니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글을 쓰면서 정리할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제 스스로 모호했던 것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 즐거웠는데, 그걸 다른 분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니체에 관한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철학자라고 봐도 좋을 듯한데 실은 니체에 대한 오해도 만만치 않다고 느껴집니다. ‘니체의 눈으로 읽는 니체’라는 시리즈명이 그간의 오해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있을까요?

니체는 쉽게 읽히지만 아이러니하게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철학자입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비판과 반어적인 서술로 인해 거꾸로 읽기 십상인 대목이 많지요. 가령 논문(에세이) 스타일로 쓰인 『도덕의 계보』 제3논문에서 철학자의 금욕주의에 대한 니체의 논지는 거꾸로 이해하는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니체가 금욕주의를 비판하는 것만 염두에 두고 읽어서 그런 것인데, 니체는 사실 철학자의 금욕주의는 철학자의 삶에 필요한 것이란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 니체 철학의 핵심인 힘에의 의지 개념도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낸 책에서는 그래서 그 개념에 대해 꽤 길게 따로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

니체의 눈으로 읽는 니체는 맥락이 좀 다릅니다. 어떤 철학자도 자기가 사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반시대적으로 사유하고자 했던 니체였지만, 그 역시 어떤 한계 속에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의 언어와 지식 속에서 사유하고 쓰고 있는 겁니다. 이게 종종 니체의 문제의식을 흐리고 잡아먹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니체의 책 또한 니체의 문제의식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 니체 사유의 요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니체의 여러 저작 중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니체의 책은 많은 경우 단편들로 씌어져 있어서, 그가 정작 하려는 걸 제대로 이해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이 두 책은 에세이 스타일로 씌어져 있고, 그의 문제의식이 철학적 맥락에서 정리되어 있어서 그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기에 적합합니다. 그의 단편적 글들이 일종의 퍼즐조각이라면 이 두 책은 그걸 맞추어가며 읽게해 줄 퍼즐판인 셈이지요. 그래서 니체 자신도 자기 사상을 공부하는 입문서로 이 두 책을 권한 바 있습니다. 제가 두 책을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사랑할 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의 주제를 '필로비오스'로 요약할 수 있을 텐데요, '아모르 파티'를 '삶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니체를 적극적으로 읽으려는 시도로 느껴졌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해석에 도달하셨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철학을 뜻하는 필로소피(philosophy)는 ‘지혜(소피아)에 대한 사랑(필리아)’이란 뜻입니다. 지혜란 삶의 지혜지요. 그러나 소크라테스 이후 철학은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원불변의 것, 변치 않는 진리를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니체는 이런 사태를 비판하면서 철학을 삶으로 되돌리려 합니다. 삶의 지혜를 찾는 사유와 지식으로 되돌리려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그가 철학을 하는 입장은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요약될 수 있습니다. 흔히 ‘운명애’라고 번역되는데, 이는 이런 니체의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못하는 데다가 흔히 쓰는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말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모르란 말을 동사적으로 해석하여 ‘삶을 사랑하라!’라고 번역하는 게 니체의 사유에 부합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셈이지요.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에서 ‘한다더라’의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은 자칫 니체에 대해 ‘그저 내 맘대로 살라는 것인가’라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에 대해 책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 맘대로’란 대체 무엇일까요? 니체는 ‘나’라는 게 무엇이고, 또한 ‘마음’이란 무엇인지 묻습니다. 배가 고파 정신없이 음식에 덤벼들 때, 그건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내 위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고,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달려가는 것은 내 방광의 명령에 따른 것이지요. 그것은 나를 움직이지만, ‘나’라고 할 실체도 없고, ‘마음’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내 신체와 정신에 흘러가는 수많은 힘과 의지, 욕망과 주저 등이 섞여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곁눈질하는 삶을 그저 남의 삶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내 맘대로’의 삶도 그래요. 뭐가 내 마음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내 맘대로의 삶이 있겠어요. 

중요한 건 어떤 게 ‘내 맘대로’인지 ‘남의 말대로’인지가 아닙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어떤 게 정말 살고 싶은 삶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는 것 속에 작동하는 게 어떤 종류의 힘인지, 긍정적인 의지인지 부정적인 의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랑할 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그런 물음 속에서 사랑할 만한 삶을 얻었다면, 그건 ‘내 맘대로’이든 ‘남의 말대로’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 삶을 얻었다면 곁눈질하며 살지 않게 될 겁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의 삶이야’라고 자긍할 수 있는 삶을 얻게 됩니다.

설명을 듣다 보니 무턱대고 니체를 읽는 것보단 어떤 안내자를 만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니체 사유의 비약과 단절에 대해 설명해 주셨듯이, 선생님도 니체를 공부하며 여러 사유의 단계를 밟아 나가셨을 듯한데요, 처음 니체를 공부하게 된 계기와 인상, 그리고 지금의 니체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한때 혁명을 꿈꾸며 지하운동을 하던 레닌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란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회주의가 망했어요. 덕분에 허무의 심연을 보았습니다. 그 심연 속에서 평생을 밀고 가도 해결하기 쉽지 않을 물음을 얻었고, 그 덕분에 여러 가지 공부를 하며 책을 쓰고 있는 겁니다. 그 심연 속에서, 어떻게 이 어둠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디서 출구를 찾아야 할까를 고심하면서 많은 걸 다시 공부하고 읽었습니다. 니체도 그때 비로소 제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운 좋게도 그때 들뢰즈라는 훌륭한 안내자를 만났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 싶은 것을 찾아 읽는 방법을 얻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때 니체를 충분히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 번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가령 니체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힘에의 의지’ 개념에 대해서는, 니체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시작해 읽을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다르게 이해했던 것 같고, 많은 경우 뭔가 미진함이 사라지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령 『철학과 굴뚝청소부』나 『철학의 모험』에 썼던 걸 고쳐 쓰기도 했지요. 이번 책에서야말로 미진하다 싶은 게 깔끔하게 사라지고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영원회귀는 아직도 모호한 게 사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3권을 쓰면서 영원회귀에 대한 모호함이 비로소 사라져 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도 멈춰 있지 않고 조금씩 발전하는 생각들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워낙 관심을 갖고 있는 게 많고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서, 멈춰 있기 힘듭니다. 더구나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는 모두 멈춰 있지 말라고 가르치고, 덕분에 저도 끝없는 유목의 과정으로 삶을 다루고, 유목민이 되어 사유하는 길을 가게 되었고, 『노마디즘』이란 제목의 책도 냈지요. 

제 나름의 사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름대로 익어서 긍정적이고 자립적인 형태의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은 아마 『코뮨주의』(그린비)와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휴머니스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 그 책들을 사로잡은 문제의식은 ‘존재론’이었어요. 지금 보면 존재자의 존재론이라고 해야 할 사유인데, 하나의 존재자를 우주적 공동체로서 포착하려는 그런 사유였지요.

그런데 몇 년 전에 김시종 선생의 시를 만나게 되면서, 그러한 존재론은 여전히 빛의 존재론이었고, 세계성 안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후 어둠의 존재론, 세계성 바깥의 존재론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존재의 존재론’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지요.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도서출판b)과 『예술, 존재에 휘말리다』(문학동네)가 그 첫 번째 결실인 셈이지요. 아마도 당분간은 이 주제에 대한 사유를 계속 밀고 가게 될 것 같습니다.



*  이진경 

본명은 박태호. 1987년 출판한 첫째 책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 뜻하지 않게 허명을 얻으면서 본명은 잃어버렸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이고 지식공동체 <수유너머104>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학위논문은 서구 주거공간의 역사와 주체생산방식에 대한 것인데, 나중에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으로 출판되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노마디즘』, 『자본을 넘어선 자본』, 『코뮨주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삶을 위한 철학수업』, 『파격의 고전』, 『불교를 철학하다』,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 『예술, 존재에 휘말리다』 등의 책을 썼다.

니체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들뢰즈와 더불어 읽기 시작했는데, 스피노자의 눈에 니체의 수염과 입, 들뢰즈의 턱을 한 ‘어떤’ 철학자의 초상화를 꽤나 오랫동안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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