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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의 “역사가 되기 전에 신화가 되어버린 5.18”

『안병하 평전』 이재의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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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처럼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폭력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이런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2020.06.08)


40년 전 그날, 그러니까 1980년 5월 17일부터 전남도청 최종 진압 작전 하루 전인 5월 26일까지 당시 안병하 도경국장의 행적과 삶을 쫓는 『안병하 평전』은 5.18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취한다. 시민군과 대척점에 있는 경찰의 시각에서 5.18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이재의 씨는 ‘최초로 광주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5.18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이다. 역사가 진실을 담지 못하고, 사실이 객관적 사료가 되지 못할 때 사건은 소문으로 남는다. 5.18 40주년의 의미와 과제를 이재의 저자에게 들어보자.  



올해 40주년을 맞은 5.18은 과거와 어떻게 달랐나요.

이번 5.18은 정말 달랐습니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술잔을 올리는 모습은 항쟁을 겪은 우리가 보기에 엄청난 충격이었거든요.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리고 국가를 표상하는 분이 저렇게 한다는 것이 매우 진정성 있게 다가왔고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5.18 단체 사람들은 언제 국가가 이런 모습을 보였나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5.18과 관련하여 일상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인도에 반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관점에서 신군부 세력의 5.18당시 행위를 살펴보겠다는 뜻으로 조사작업을 하는데, 여기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협력하고, 그 외에는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으로서 자료를 정리하는 일에 주로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5.18 관련 자료가 대단히 방대하거든요.  

5.18 관련 자료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들인가요. 

1988년도에 청문회에 제출된 군 자료는 왜곡된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1995~97년도에 생산된 약 14만 쪽 이상에 이르는 재판 및 수사기록 등에는 대단히 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기록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일차적으로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광주항쟁 관련 사실과 역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내용이 매우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료에는 5.18의 진상이 많이 나와 있는데 맥락을 살펴서 서사 구조를 입히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자료는 2012년에 5.18기록물이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일부밖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5.18 연구자들 역시 자료접근이 제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총론 수준에서만 조명하는 한계를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1997년 재판 이후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수뇌부가 군사 반란과 내란으로 처벌받았지만 곧바로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진상규명보다는 화해를 앞세우면서 ‘그냥 덮고 가자’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됐던 것입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5.18에 대한 사실관계를 깊숙이 파고들기보다는 총론적이 피상적인 이론적 접근에만 머물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오히려 신군부 입장에서 5.18 왜곡을 일삼는 지만원 씨가 상당 기간 면밀하게 연구해서 방대한 분량의 책을 냈습니다. 이 책들이 처음 나왔을 때  5.18 연구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등장한 보수 정권의 ‘역사 왜곡’ 시도와 맞물려 이 책들은 극우세력으로부터 꽤 큰 관심을 끌게 됐습니다. 더구나 ‘북한군 개입설’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지 씨의 주장은 그걸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확증편향의 근거를 제공했던 것이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판에 착수하게 된 계기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지만원의 역설’이라고 할까요? 터무니없는 왜곡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현대사 연구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국내 학계의 5.18 연구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5.18과 관련하여 설득과 감성의 논리는 팩트에 기반을 둘 때 의미가 있고 오래 갑니다. 학계에서는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 때 5.18 연구가 정점을 찍었다고 봅니다. 다만 팩트에 기반을 둔 연구는 거의 없습니다. 어느 특정 학문적 이론에 맞춰 5.18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 연구가 많았습니다. 5.18당시 신군부 입장을 대변하고 극우적인 입장에서 5.18을 볼 것을 강요하는 일은 확증편향적이고 대단히 큰 문제이긴 합니다만, 연구자들도 지만원 씨처럼 이런 기록을 봐야 합니다. 연구 인력이 감소하고 관심도 줄어드는 현실에서 더욱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결국 엄밀한 팩트에 바탕을 둔 연구 성과가 축적되지 않는다면 역사의 왜곡이 공고화되는 현실을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부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개정판을 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작업을 끝내고 『안병하 평전』을 쓰기 시작했던 겁니다.

『안병하 평전』를 집필하면서 느꼈던 색다른 경험은 어떤 게 있을까요.

평전에 묘사된 안병하 치안감은 대단히 모범적이고 강직합니다. 사실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 사람의 약점도 찾아보려고 꽤나 애를 썼습니다. 신화처럼 포장된 인물이 아니라 안병하의 인간적인 고민, 약점도 함께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걸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70년대의 성공한 고위 공무원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5.18 때 어떻게 발포명령을 거부하는 용기를 냈을까? 저는 그게 매우 궁금했습니다. 추측이지만 육사 시절에 항일 무장독립운동을 했던 분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그 시기의 경험이 어떤 의식을 심어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육사 8기 동기생들이 주도했던 5.16군사 쿠데타 합류를 거부한 것도 그렇고요. 이런 분의 평전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주변에서는 굳이 경찰을 띄울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도 했지만, 신군부의 쿠데타에 경찰도 함께 맞섰다는 사실은 5.18의 외연을 넓히는 일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어떤 책을 집필하실 계획이 있는지요.

80년 5.18 당시 신군부의 과잉진압과 발포에 대해서 안병하 도경국장만 반대 입장을 취한 게 아니었습니다. 신군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상적인 군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18 당시 31사단장을 비롯한 전남북계엄분소장과 참모들 대부분이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을 반대했으니까요. 그래서 육본과 보안사에서 (공수부대를) 직접 통제를 하게 된 거죠.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한 군인들의 증언이 나와야 합니다. 여력이 된다면 이러한 군인들의 시각에서 ‘거부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써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송암동 사건(1980년 5월 21일 외곽봉쇄작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사건과 5월 24일 11공수여단이 광주 송암동, 효덕동 지역을 지나가던 중 진압군 간의 오인사격전이 발생하였는데 화가 난 군인들이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그 상황을 자세하게 살펴볼 생각입니다.  

5.18과 관련하여 20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5.18은 어느덧 역사적인 사실이 되기 이전에, 빛바랜 신화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일정 정도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담은 객관적 사료 연구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팩트가 사라져버리고 의미만 남아, 결국 왜곡의 빌미거리가 생겨납니다. 5.18은 발생한 지 얼마 안 된 현대사의 비극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비극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지금처럼 대치 상황에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지난 촛불 시위 때도 군 수뇌부에서 계엄령을 발동하려고 했던 사실이 단적인 예입니다. 권력을 장악하거나 정권기반을 공고화하기 위해 반공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5.18 때처럼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폭력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이런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재의 

195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전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조선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했다.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의 일원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했으며, 그해 10월 체포돼 1981년 8·15 특사로 석방됐다.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기록) 초고를 1985년 작성했고, 2017년 이 책의 전면개정판을 공동집필했다. 2000년 내외신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Kwangju Uprising (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펴냈다. 현재 5·18 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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