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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사막을 건너고 있습니다 (G. 이주현 기자)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37회)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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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변덕스러움이라든가 업앤다운이 심하다거나, 이런 경우와 조울병은 아주 다른 거거든요. 이건 진짜 질병이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정도의 광기로 나아갈 수도 있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병이거든요.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2020. 05.28)


불행에 물음표를 찍거나 저항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진실의 중요한 조각이다. 조울병을 그냥 내 부분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실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 약과 상담으로 단단히 죄어오는 조울병의 고삐가 언제 풀릴지 몰라 두렵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짜고 달고 쓰고 매운 맛을 봤다. 때론 비릿함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내 인생은 간이 잘 맞는다. 

이주현 저자의 에세이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이주현 기자 편>

오늘 모신 분은 징검다리를 놓고 싶다고 말하는 기자입니다. 사막과도 같은 조울의 시간을 건너온 경험,

그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 책을 쓰셨어요.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의 저자 이주현 기자님입니다. 

김하나 : 조울병을 다룬 책입니다. 제목에도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네요. ‘삐삐언니’가 이주현 기자님의 별명이죠?

이주현 : 그렇죠. 제가 어렸을 때 삐삐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남자 후배가 어느 날부터 저를 삐삐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걸 남자 후배가 이야기해줘서 더욱더 사람들이 편하게 불렀던 것 같아요. 여자 후배가 삐삐언니라고 했으면 너무 자매 같은 느낌인데 남자 후배가 하니까 뭔가 조금 중성적 느낌과 더 해맑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하나 : 삐삐언니가 조울의 사막을 건넜습니다. 

이주현 : 사실은 ‘건너고 있어’인 것 같아요. 

김하나 : ‘건넜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일은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셨군요. 

이주현 : 네. 그런데 사막이 많더라고요. 제1사막, 제2사막... 지금 잠깐 오아시스에 와 있는 기간에 책을 쓴 것 같아요. 

김하나 : 첫 시작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눈을 뜨고 ‘여기가 어디지?’ 싶었고 나는 묶여있는 장면으로 시작하죠. ‘그때가 두 번째 입원이었다’라는 걸로 책이 시작됩니다. 

이주현 : 네, 그렇습니다.

김하나 : 그때는 조울병의 발현으로 인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에 가게 된 거잖아요? 강제입원이 된 거였죠. 

이주현 : 그런 셈이었는데, 첫 번째 입원했을 때가 한 달 전이었던 거예요. 당시에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제 이야기를 들어 보더니 입원이 필요하고 조금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고 그때는 순순히 입원을 했는데요. 그러다가 열흘 쯤 지나서 ‘정말 여기서는 못 있겠다, 나는 아프지 않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부모님께서도 사실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냥 퇴원이 됐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하는데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이 됐던 거죠. 길거리에서 쓰러지고, 그렇게 되면서 엄마가 ‘이건 말라리아 약이야’라고 하면서 수면제를 주셨고, 잠이 든 채로 병원에 와 있었죠. 그래서 눈을 떴을 때 깜짝 놀랐던 거죠. 

김하나 : 왜냐하면 기자님이 ‘나는 말라리아에 걸려서 이렇게 오한이 들면서 열이 나는 거야’라고 계속 주장을 했기 때문에 (어머님이) 말리리아 약이라고 달래서 약을 먹였는데 그건 수면제였고 병원에서 깨는 걸로 (책이) 시작을 했는데요. 그런데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편견이 너무 심하잖아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이주현 기자는 정신질환으로 강제입원 됐던 적 있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고 무섭기도 한 일일 텐데요. 출판 앞두고 걱정이 되지는 않으셨어요? 

이주현 : 사실 이 책을 처음에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2013년이었는데요. 마흔을 앞두고 뭔가 자신의 삶을 한 번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어요. 그래서 2013년에 이 책을 썼었는데, 그때는 사실은 책을 내기가 조금 걱정스러웠었어요. 어느 정도 초벌 원고를 써놨는데 그걸 막상 출판한다고 하는 순간,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중간에 멈췄고요. 그때는 굉장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준비가 안 됐던 것 같아요. 다시 시간이 흘러서 이 책을 내게 되었을 때는, 이전에 쓴 글이 자신의 경험을 쏟아 붓는 수기형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글을 쓰면서 자신과의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이 나왔을 때도 독자와 나와 책과 어느 정도의 편안한 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하나 : 만약에 7년 전에 이 책이 나왔다면, 그 책은 정말 선구자적인 책이 되었을 텐데요. 마이크가 켜지기 전에 ‘요즘은 우울증이나 조울증, 마음의 상태나 병에 대한 책들이 정말 많이 나와 있더라’라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7년 전과 지금은 정말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이주현 : 그렇죠. 당사자들의 고백이 굉장히 많아진 것 같아요.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런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책을 낼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외국 사람들의 책도 많고, 사실 한국 사람들이 쓴 책을 보면 제가 조금 하드코어에 속하는 것 같고요. 병원에 강제입원을 한다든가 폐쇄병동에서 장시간 있어야 된다든가, 그런 것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것을 가지고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사실은 그런 징검다리들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제가 책을 쓸 용기를 냈던 것 같고 저도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요즘은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자신의 경험담 투병기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정신에 관련한 질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공감대 같은 것들도 훨씬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이주현 : 네, 맞습니다. 

김하나 : 그럼에도 저는 이 책을 읽고 ‘조울병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구나’라는 걸 절절히 느꼈어요. 

이주현 : 누구나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다 자신들이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나 조울증인가 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변덕스러움이라든가 업앤다운이 심하다거나, 이런 경우와 조울병은 아주 다른 거거든요. 이건 진짜 질병이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정도의 광기로 나아갈 수도 있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병이거든요.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실 제가 놀란 건,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도 조증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아, 이런 거구나’라고 조금 더 알게 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환자들이 울증이라고 할 때는 어느 정도의 짐작이 가는데 조증일 때 진짜 어떤 상태가 되고 어떤 걸 느끼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들도 많은 환자들을 보지만 본인이 아프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저도 이 책을 통해서 조증의 상태를 짐작해 보게 됐는데요. 당시의 심경이나 감각적인 부분들을 묘사해 놓으셨잖아요. 이를테면 시를 읽으면 의미가 통째로 이해가 된다든가, 질감이 지문에 읽히듯이 느껴진다든가, 그런 식의 너무나 느껴지는 표현들이었어요. 그리고 조증이 영어로는 ‘mania’이더라고요. 그런 상태가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약속을 너무 많이 잡고, 너무 활기찬 대화를 하고, 상대와 조금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데 너무 달려들어서 이야기를 하고...

이주현 : 같이 동포가 된 듯한 느낌인 거죠(웃음). 

김하나 : 오늘 잠깐 만났는데 동포가 되어서 얼싸안고(웃음).

이주현 : 그렇죠, 가족이 되었고(웃음).

김하나 : 그리고 상대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이주현 : 그렇죠.

하나 : 조증의 상태가 이렇고. 또 조증이 꼬리를 길게 남기는 게 훨씬 더 긴 울증의 상태이고. 이게 왔다 갔다 하는 거군요. 

이주현 : 그렇죠. 그게 사실은 무서운 점인 것 같아요. 자신이 한 번 조증과 울증의 패턴을 앓게 되면, 무서운 것은, 사실 아주 초기의 조증 단계에 있는 경우나 그것들이 계속 어느 정도 유지된다면 상당히 삶이 재밌거든요. 그렇지 않겠어요(웃음)?

김하나 : (웃음) 축제 같다고 쓰셨어요.

이주현 : 축제 같은 기분이 들 수 있죠.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자신감이 솟고 똑똑했나? 내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활기찬 영감을 주었나?’ 이렇게 착각을...

김하나 : 새로운 아이디어도 너무 많이 나오고요.

이주현 : 네, 그럴 수 있죠. 그런데 그게 관리가 되지 않고 점점 더 치달으면 정말 발을 조금만 디디면 절벽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실제로 ‘내가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어떤 광기의 세계로 갈 수 있구나’라고 하는...

김하나 : ‘광기의 절벽’이라는 표현이 있었죠.

이주현 : 네, 그 절벽으로 추락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요. 우리가 길거리를 지나갈 때 가끔씩 혼잣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거나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맥락 없이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 하는 불안감이 일기도 했어요. 실제로 치료를 받지 않거나 그러면 그렇게 되기도 해요, 사실은.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죠. ‘여기에서 조금만 미끄러지면 정말 문제가 있게 된다’라고 하는 점이 두려웠고, 또 하나는 ‘지금은 이렇게 고양되지만 조금 있으면 바로 엄청난 우울이 찾아온다’는 것이 굉장히 두려운 감정이 되죠. 

김하나 : (조증일 때는) 잠을 안 자고도 활력이 넘쳐나는 것 같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그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넘쳐나기 때문에, 신체를 알게 모르게 혹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주현 : 네, 맞아요. 마음의 문제가 몸의 문제이고 뇌의 문제이고, 다 연결이 되는 거잖아요. 우리도 돈을 너무 낭비하면 그 다음에 배고프듯이, 사람의 에너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너무 많이 써버리고 나면 그 다음에 고갈이 될 수밖에 없고. 어떻게 보면 그 고갈의 시기가 울증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이주현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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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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