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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소설/시 MD 박형욱 추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플로리다』 『디디의 우산』 『딸에 대하여』 『상냥한 폭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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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위태롭고 흔들리더라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삶을 닮은, 삶을 담은 소설들을 소개합니다. (2020.05.14)

우리는 여리고 약합니다. 잦은 불안과 외로움에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가항력의 이별에 휘청이기도 합니다. 울음으로 다 털어내지 못하는 아픔 앞에서는 스스로 눈물이 되어버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또 우리는 의연하고 강합니다. 젖은 눈을 쓱쓱 닦고 까끌한 입을 단단히 고쳐 물고 다시 다음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래서, 그럼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위태롭고 흔들리더라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삶을 닮은, 삶을 담은 소설들을 소개합니다.

 


『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저, 정연희 역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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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듯 밤마다 오래오래 달을 쳐다보면 옛날 만화가 맞는다는 사실을, 달은 사실 웃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달이 보고 웃는 대상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 외로운 인간은 너무 작고, 달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알아차리기에 우리 삶은 너무 순식간이다.
_ 『플로리다』  중에서, 26쪽

 

『운명과 분노』의 작가 로런 그로프가 십이 년간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쓴 단편을 모았습니다. ‘선샤인 스테이트 Sunshine State’라고도 불리는 플로리다는 일 년 내내 따뜻하지만 여름은 무덥고 습하며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야자수와 뱀, 라쿤을 만날 수 있는 곳. 우리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은 소설 속 인물들의 불안과 공포가 햇빛 가득한 도시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더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책은 끝내 모든 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거나 쉽게 희망을 예단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그저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안도감을 줍니다. 작은 틈새까지 은근하게 스며들어 일상을 잠식하는 두려움과 외로움, 『플로리다』 는 그 곁에 가만 다가와 앉습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디디의 우산』  (황정은 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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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자고 d는 생각했다. 더 행복해지자. 그들이 공유하는 생활의 부족함, 남루함, 고단함, 그럼에도 주고받을 수 있는 미소, 공감할 수 있는 유머와 슬픔, 서로의 뼈마디를 감각할 수 있는 손깍지, 쓰다듬을 수 있는 따뜻한 뒤통수…… 어깨를 주무르고, 작고 평범한 색을 띠고 있는 귀를 손으로 감싸고, 따뜻한 목에 입술을 대고, 추운 날엔 외투를 입는 것을 서로 거들며, dd의 행복과 더불어, 행복해지자.
_ 『디디의 우산』 중에서, 18-19쪽

 

『디디의 우산』 을 '그럼에도'로 읽었습니다. 이별은 이미 제 일을 끝내고 떠났습니다. 헤어짐의 시간은 충분히 체감할 겨를도 없이 끝나버렸고, 이제 그 자리에는 돌덩이 같은 부재만 남아있습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있지만, 그럼에도, 모두는 오늘을 지내고 내일을 살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 시간에 그럼에도 함께 행복을 기대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불어오는 비바람이 버거울 때 펼쳐볼 책입니다.

 

 

『딸에 대하여』  (김혜진 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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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 앉은 그 애들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나는 이 애들이 나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딛고 서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이 애들은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그곳에 서서 이 애들이 무엇을 보는지, 보려고 하는지, 보게 될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_ 『딸에 대하여』  중에서, 149-150쪽

 

『딸에 대하여』 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입니다. 성소수자인 딸을 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화자인 엄마는 딸과 딸의 연인, 직장인 요양병원의 환자와 동료들에 대해 끊임없이 독백을 이어가고, 그것은 엄마의 지나온 삶으로, 내면으로 연결됩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요. 사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친밀함과 손잡고 오는 폭력은 더 커다란 고통이 되기도 하지요. 이 소설이 던지는 다양한 화두는 가족,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속에서 더 날카롭게 빛납니다. 밀도가 높은 소설입니다. 문장과 문장, 인물과 인물 사이 촘촘한 말과 감정들을 읽어 내려가는 희열이 큽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저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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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가 그녀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안나의 탄식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아니었다. 경은 그녀의 오류를 바로잡고 자조 섞인 문장을 얼마든지 수정해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평소보다 조금 더 짙은 위악을 떨고 싶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었다.
_ 『상냥한 폭력의 시대』  중에서, 220-221쪽

 

정이현이 그리는 '상냥한 폭력의 세계'는 '미소 없이 상냥하고 서늘하게 예의 바른 위선의 세계'. 삶이 쌓일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유연한 듯 더 고집스러워지는, 투명한 듯 더 두껍고 견고해지는 벽, 현실을 닮았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거울 속에서 마주한 내 모습처럼 구석구석 못난 부분들을 적나라하게 비춥니다. 적당한 가면 아래 숨긴 진짜 얼굴은 부지불식간 튀어나와 서로를 당황하게 하고, 차갑고 잔인한 ‘나’는 ‘남과 같음’으로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지요. 상냥한 폭력의 세계에서 여기, 오늘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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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형욱(도서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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