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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5월 대상 - 비 오던 날을 기억해?

부모님께 꼭 전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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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 사이사이를 우스꽝스럽게 달리고 싶었다. 항상 어깨를 움츠리고 다녔던 날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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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5월호 주제는 ‘부모님께 꼭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이 있었다. 건물들이 빗줄기에 뭉개져 두루뭉술하게 보일 만큼. 아주 거세게. 초등학교 고학년의 나는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과 이유도 모른 채 멀어진 것이다.

 

사춘기를 겪고 있던 나는 부모님께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했다. 꼬인 매듭의 시작을 나도 알 수 없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때 마음을 주고받은 친구들이라고, 이 사실을 말하면 부모님이 친구들을 미워할까 봐 혹은 친구들이 날 더 미워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문제의 원인은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못난 것이고, 내가 찌질한 것이고, 나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그런 마음에 홀린 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나의 우울함을 증폭시키며, 이 장마는 언제쯤 끝날까 생각했다.

 

"비 맞으러 나갈까?"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아빠는 갑자기 말을 걸었다. 비를 맞으러 나가자니. 모든 사고 회로가 순식간에 멈추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현관문을 열어 나가고 있었다. 평상시 잠옷 그대로. 낡아빠진 슬리퍼를 신은 채. 평소의 엄마 같았으면 감기 걸리게 뭐 하는 짓이냐며 한 소리 거들었을 텐데, 그날은 묵묵히 우리를 밖으로 보내줬다. 비가 퍼붓는 골목으로.

 

밖으로 나가니 비는 안에서 볼 때보다 더 거세게 내렸다. 나는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비를 마주하고 있었다. 주춤거렸다. 차마 빗속으로 불쑥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아빠는 먼저 걸어 나갔다. 아빠의 머리칼이 굵어지기 시작했고 안경은 수많은 물방울로 채워지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눈가와 입가에 한가득 주름을 지으며 들어오라고 했다. 시원하다고, 개운하다고. 조심스레 처마를 벗어나자 순식간에 정수리가 차가워졌다. 생각보다 무게감 있는 빗줄기에 몸이 움찔거렸다. 비는 나의 살갗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빠가 말한 시원함이 비의 온도인지, 비의 무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봤고, 나는 이상한 우월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마치 세상에 나와 아빠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입을 벌려 온 비를 다 받아먹고 싶었다. 빗줄기 사이사이를 우스꽝스럽게 달리고 싶었다. 항상 어깨를 움츠리고 다녔던 날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아빠는 나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고, 아빤 다시 큰 목소리로 별일 없냐고 물었다. 힘들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사춘기 소녀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고, 물론 그날도 ‘똑같지, 뭐.’라는 거짓을 이야기했지만, 아빠의 물음에 위로를 받았다. 아빠의 음성이 비가 되어 빠짝빠짝 타들어 가는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준 것이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우리를 보고 못 말린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나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달큼한 물로 샤워를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나른함이었다. 나는 그날 거실에서 부모님이 맥주를 마시던 소리까지 기억한다.

 

부모는 자녀가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고 있을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나의 표정 하나 목소리 하나의 변화를 알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싶었을 것 같다.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나에게 부모님은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위로해준 건 아닐까. 나는 아직까지도 당시 일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들에게 어린 꼬마의 외로움을 눈치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함께 비를 맞았던 골목의 밤을 기억하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따뜻한 위로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 마음을 항상 생각한다고 전하고 싶다.


김영 글을 읽고 쓰며 조금씩 전진하는 대학생입니다. 하던 가락대로 즐거웁게 헤쳐나가고 싶습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http://www.yes24.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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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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