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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 “신화를 읽는 것은 우리 자신을 탐구하는 일”

『신화의 언어』 조현설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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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연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동시대의 이야기에도 신화적 사유가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소설,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오늘날의 이야기 안에서 그것을 발견해나가는 즐거움이, 뱃사람을 부르는 사이렌처럼 저를 자꾸 유혹하는 것이지요.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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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신화를 읽어야 하죠?”

 

조현설 작가가 30여 년 동안 신화를 연구하면서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이다. 오래된 옛날이야기,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이야기인 신화가 지금 우리에게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일 테다. 『신화의 언어』 는 이런 질문에 대해 조현설 작가가 작심하고 쓴 답변이다.

 

그는 한국, 중국,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각지의 신화가 현대를 해석하는 비평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자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온 제주 신화를 통해 난민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왕의 명령으로 지역민이 숭상하는 나무를 베는 신화를 통해서는 “왕의 마음, 권력자의 시선으로 자연을 보는 한 되돌아오는 것은 자연의 저항”이라고 경고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자연의 저항’, 코로나 19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이다. 조현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아시아 신화가 우리의 현실과 매우 가까운 이야기로 느껴진다.

 

한마디로 『신화의 언어』 는 신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내공이 없으면 쓸 수 없는 책이다. 조현설 작가에게 신화의 어떤 점에 매혹됐는지, 비평적 도구로서 신화가 어떤 의미인지 등을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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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신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신화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학부 시절 한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만 학문적으로는 철학, 신학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존재에 대한, 신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궁리도 했습니다만 교직에 나가면서 가지 못한 길로 남았습니다. 또 한 가지 고심한 게 있었다면 시 쓰기였습니다. 시가 좋아 시만 쓰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생각도 했었지요.


그러다가 1989년에 학교에서 해직되어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창작에 집중하고 문학 이론을 공부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지라르와 리쾨르, 엘리아데와 레비-스트로스를 읽으면서 다시 신화와 만났습니다. 시에 대한 갈구와 종교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문학적 언어인 신화를 통해 꽃을 피웠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의 신화 공부는 문학, 인류학, 종교학을 통해 이뤄지는데 저는 문학 쪽에서 문을 열고 입장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신화를 해석할 때 ‘이야기 형식’에 특히 주목하는 것도 공부의 출발점과 관계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한국 신화나 중국 신화를 넘어서 우리에게 낯선 중국 소수민족이나 우데게이족 등의 신화를 다루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신화를 공부하시게 됐나요?

 

신화 공부의 당연한 경로라고 말하고 싶어요. 학위논문을 한국 신화로 쓰려고 했는데 한국 신화는 한국이라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군신화만 해도 한반도에 갇혀 있지 않고, 창세신화는 중국을 비롯한 유라시아 신화와 연속 선상에 있어요. 당연히 한국 신화를 해석하기 위해서 주변 민족들의 신화를 찾아 비교할 수밖에 없었지요. 자료를 찾아 중국으로 갔던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우리가 중국 신화, 일본 신화라고 부르는 것들은 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래서 과거의 신화 또는 죽은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들은 지난 20세기까지도, 또는 현재도 구전으로 신화를 전승하고 있어요. 살아 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살아 있는 신화는 굿판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신화지요. 이런 살아 있는 신화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적, 주변부적입니다. 그러나 그 내부에 오래된 신화적 전통이 살아 있고, 살아남은 자들의 지혜가 있습니다. 중심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주변부의 소수적인 신화, 소수 민족의 신화를 공부해야 합니다.

 

30여 년 동안 신화를 연구하셨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작가님을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 신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지요. 재미는 두 가지 때문에 생깁니다. 하나는 이야기 자체의 흥미입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집에 죽음의 신을 가두어 지상에서 죽음이 사라지게 했다는 네팔 구룽족 신화의 상상력은 기발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재미는 그게 전부는 아니지요. 왜 구룽족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런 질문은 신화 해석에 대한 탐구심을 불러일으키지요. 이 해석의 과정이 제게는,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너무 재미있습니다.


결국 신화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근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라는 개념도 제시했습니다만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인 한 여전히 우리는 신화적 인간, 신화적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동시대의 이야기에도 신화가, 신화적 사유가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소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등 오늘날의 이야기 안에서 그것을 발견해나가는 즐거움이, 뱃사람을 부르는 사이렌처럼 저를 자꾸 유혹하는 것이지요.

 

그런 신화의 매력 때문에 〈설국열차〉나 『신과 함께』 처럼 신화를 원형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창작되는 것 같습니다. 신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콘텐츠 중에서 특히 좋아하시는 콘텐츠가 있다면 독자분들께도 하나 추천해주세요.

 

20여 년 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를 보고 받은 인상을 잊을 수가 없어요. 신들의 숲과 인간들의 마을, 숲과 신들을 파괴하려는 인간들과 지키려는 신들의 대결, 그 사이에서 숲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사슴신(시시가미)의 모습을 보면서 신화적 세계가 저렇게 새로운 이미지로 재현될 수 있구나, 신화의 메시지가 이렇게 매력적인 콘텐츠로 재생될 수 있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노노케 히메> 안에는 늑대와 사슴을 조상신 또는 수호신으로 모시는, 아이누를 매개로 한 북방신화의 상상력이 들어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칭기스칸의 선조는 하늘이 점지하여 태어난 푸른 이리와 흰 암사슴”이라고 『몽골비사』 가 노래할 때 등장하는 바로 저 늑대와 사슴이 그렇습니다. 사슴신이 주인공 아시타카를 살리기 위해 출현하여 대지를 밟을 때 꽃들이 더미더미 피어오르던 판타지를 잊을 수가 없어요.


2003년에 이성강 감독이 <원천강본풀이>라는 제주 신화를 바탕으로 <오늘이>라는 16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이 작품을 보면 주인공 오늘이와 오늘이가 여행 중에 만난 장상이가 메마른 대지를 걸어갈 때 발길마다 꽃길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 장면이 <원령공주>에 대한 이 감독의 오마주라고 생각합니다. 두 작품 모두 신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파괴라는 주제를 담고 있어요. 두 작품을 함께 보기를 권합니다.

 

“신화가 오늘을 읽는 비평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책에서 신화를 통해 예멘 난민이나 미투 운동 같은 오늘날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비평적 도구로서 신화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화는 본래 인류가 세계와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해 고안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세계란 자연과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인간사회를 말합니다. 신화는 자연을 신으로 부르고, 우리 자신 안에 신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산에도 나무에도 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산을 함부로 훼손해도 안 되고 나무를 쓸데없이 베어내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신이 선물로 줄 때만 산을 개간하고 벌목하는 일이 허용됩니다. 이런 생각을 철학적으로는 생태주의(ecology)라고 하지요. 잘 아시다시피 근대화와 자본주의는 반생태주의적이잖아요. 우리 시대에 대한 비평적 시각이 여기서 마련됩니다.


한데 신화의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일민족신화’와 같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화는 특정한 목적하에 만들어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염황지손(炎黃之孫), 단군자손(檀君子孫), 만세일계(萬世一系)는 모두 근대 민족주의의 산물입니다. 민족기원신화는 이런 이념을 강화하지요. 하지만 이런 신화는 21세기 인류가 추구하는 다문화주의적 세계관과 충돌합니다. 코로나 이후 폐쇄적 국가주의, 전체주의로의 후퇴를 우려하는 지식사회의 목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신화 읽기는 ‘신화 만들기’의 메커니즘까지 비판적으로 읽는 비평적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신화의 언어』 에서 다양한 아시아 신화를 다루셨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화는 어떤 것인가요?

 

모두 좋아하지만, 굳이 고르라면 먼저 함경도 산천굿에서 노래로 불리는 신화인 <붉은 선비와 영산 각시>입니다. 앞에서 말한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아주 잘 담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영산 각시는 대망신에게 얻은 팔모야광주로 대망신을 살해하여 그 사체로 산천을 창조합니다. 팔도의 명산이 신의 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신화의 세계관이지만, 그런 능력이 대망신 안에 있던 팔모야광주라는 보주(寶珠)를 통해 발휘된다는 상상력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상상력보다 세계관이 더 매력적인 작품은 만주 신화 <타라이한마마>입니다. 이 신화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우수리강 일대에 사는 궈하러족은, 내부에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무력을 억제하는 방법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침으로써 공동체가 심복하는 지도자가 되어가는 타라이라는 여성 영웅의 행로를 이야기합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긴요한 리더의 윤리를 보여주지요. 이런 지도자야말로 공동체의 통합을 이끌어내고, 전염병과 같은 공동체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에는 신화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궁금합니다.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단기적으로 ‘한국신화 맛있게 읽는 법’이란 기획으로 교양서를 준비 중입니다. 그동안 여기저기 잡지에 실었던 글과 새로 쓴 글을 엮을 작정인데 신화와 한국 신화를 읽는 쉬운 코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바리데기 신화를 비롯한 한국 신화의 심층을 탐구하는 전문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계획이 있지만 구체화되지 않았으므로 주머니에 넣어 두겠습니다.

 

 

 

* 조현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전공했고, 동아시아 건국신화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구비문학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신화, 서사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했던 고모부 덕분에 이야기에 쏙 빠져 사는 아이가 되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옛날이야기 연구를 아예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시를 좋아해서 가끔 시도 쓴다.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 신화의 역사와 논리』(문학과지성사, 2003). 『문신의 역사』(살림, 2003),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 2006), 『마고할미 신화 연구』(민속원, 2013) 등이 있다.

 

 


 

 

신화의 언어 조현설 저 | 한겨레출판
신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보존한 “인류 보편의 언어”이기도 하다. 시대를 초월해 인간이 고민했던 주제, 이를테면 우리가 죽은 뒤 당도할 내세는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왜 서로 협력해야 하는지 같은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이 신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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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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