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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2020년대 한국 소설가와 영화 판권

<월간 채널예스>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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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여했다. 파주출판문화단지의 한 레스토랑에서 다른 참가 작가들을 처음 만나 서먹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내가 전업 소설가라고 하자 해외 작가들이 모두 눈을 크게 떴다. 뭐! 풀타임 라이터! 베스트셀러 작가시군요! (202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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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_ 이내

 


대학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 강의실에서 만난 소설가 지망생들은 겁에 질려 보였다. 졸업을 앞둔 학생일수록 그랬다. 작가의 삶이 팍팍하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았다. 왜 하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로 소설을 쓰고 있단 말인가, 이 나라 사람들은 책도 안 읽고, 21세기에는 더 그렇고, 이 언어는 번역하기 정말 까다롭지 않은가, 하고 한탄하는 젊은 작가도 여럿 봤다.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소설가 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런 조언에는 글 쓰는 삶을 꿈꾸는 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런 말만 들으면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학생들이 그런 상황을 모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매년 책을 내고 그게 1만 부씩 팔려도 연 수입이 1500만 원밖에 안 된다는 소린데 그건 도저히 못 하겠다’고 지레 좌절하는 듯했다.

 

한국 소설가들의 생활은 팍팍한 게 맞다. 졸업 후 바로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계획은 한사코 말린다. 다만 공포에 짓눌려 꿈을 포기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려는 예비 작가가 있다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다른 일면도 보여주고 싶다. 2020년대 한국 소설가가 최소한 한 가지 점에서는 다른 나라 소설가나 20세기의 선배들보다 처지가 낫다. 21세기 한국이 세계적인 영화 강국, 드라마 강국인 덕분이다. 빛과 그늘이 있는 사안일 텐데, 밝은 부분만 먼저 적어본다.

 

미국영화협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영화시장은 세계 5위 규모다. 인도보다 더 크다. 한국은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50퍼센트가 넘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2010년 이후 자국 영화 점유율 순위에서 한국은 늘 세계 4위 아니면 5위다. 한국보다 자국 영화를 더 사랑하는 나라는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 발리우드가 있는 인도, 외화 수입을 제한하는 중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강세인 일본뿐이다.

 

드라마는 어떤가. 방송사가 많아지면서 제작 편수가 급증했고, 몇몇 작품의 인기는 ‘탈(脫)한국’했다.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세계 시청자 수가 한국 인구보다 훨씬 많을 거다. 2017년에 한국 드라마 수출액은 2억 달러를 넘었고, 《미스터 션샤인》은 한드 제작비 4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이 말인즉슨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이 지금 눈이 벌게져서 원작 콘텐츠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소설로는 모자라 해외 소설( 『솔로몬의 위증 , 『화차』 , 『백야행』 ,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까지 살핀다. 기사 검색으로 영상 판권이 팔렸다는 한국 소설을 대강 훑어 봤다. 웹소설은 제외하고 최근 5년 사이에 발간된 종이책만 옮긴다.

 

『고시원 기담』 (전건우), 『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균』 (소재원), 『밀주』 (이정연), 『청계산장의 재판』 (박은우), 『현장검증』 (이종관), 『의자왕 살해 사건』  (김홍정), 『평양을 세일합니다』 (박종성, 윤갑희),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장르소설 작가의 책만 팔리는 거 아니냐는 핀잔이 있을까봐 『개와 늑대의 시간』 (김경욱),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뜨거운 피』 (김언수), 『딸에 대하여』 (김혜진)도 보탠다.

 

출간 5년이 안 되었는데 이미 영상화가 된 소설도 있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조선 마술사』 (이원태, 김탁환), 『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등등. 재작년에 나온 정진영 작가의 『침묵주의보』 는 황정민 배우 주연으로 올해 하반기 JTBC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드라마 가제는 <허쉬>라고 한다.

 

위에 열거한 것 이상으로 많은 소설들의 판권이 팔렸으리라 짐작한다. 지난해 영화화 계약을 맺었다고 들은 동료 소설가의 작품 관련 기사는 아무리 검색해도 안 보인다. 출판사가 보도자료를 내거나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하지 않으면 기자들이 알 길이 없으니. 나는 영화와 드라마 판권 계약을 6건 맺었는데, 기사로는 3건만 찾을 수 있었다.

 

판권 판매를 굳이 알리지 않는 이유는 도중에 ‘엎어지는’ 프로젝트가 많아서다. 감독과 배우를 섭외하고 투자를 받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수도 없다. 그런데 사실 원작자는 기획이 중간에 좌초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 계약할 때 돈을 받으니까(러닝개런티 비중을 높게 잡았다면 아쉽긴 하겠다). 게다가 요즘은 대부분 제작사가 일정 기간 내 작품을 만들지 못하면 원작자가 다시 판권을 회수해가는 조항을 둔다. 그렇게 돌려받은 판권을 다른 곳에 되팔 수 있다.

 

판권 수익은 적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 계약을 한 소설들 상당수가, 인세 수입보다 판권 수익이 훨씬 높을 거다. 2018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저예산 영화를 제외하고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인 상업영화 40편의 제작비 평균이 103.4억 원이었다. 당신이 그런 영화를 만들려는 프로듀서라면, 성패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원작을 확보하는 데 돈을 얼마나 쓰겠는가? 다른 제작사가 같은 작품을 노리고 있다면? 해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제작비는 높아지고, 원작료의 ‘시세’도 우상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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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먹고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작가들이 들으면 부러워하지 않을까? “한국 소설가들은 판권 잘 팔려서 좋겠다, 나도 영화 강국에서 살고 싶다” 하고. 이들 국가에서 자국 영화 점유율은 20퍼센트 안팎이다.

 

이건 득(得)이 아니라 독(毒)이다, 라고 하실 분도 계실 것 같다. 소설가가 판권 판매를 의식하면서 영화 프로듀서가 좋아할 내용을 쓰게 되지 않겠는가 하고.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영상 시장이 싹 사라지더라도 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인세 하나만 바라보는 작가도 대중영합이라는 유혹은 여전히 받을 테니.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영화나 드라마를 열심히 보니 책을 안 읽는 거라는 비판은 어떨까. 그보다는 지나치게 긴 노동과 학업 시간이 독서율을 떨어뜨리는 주범 아닐까.

 

재작년에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여했다. 파주출판문화단지의 한 레스토랑에서 다른 참가 작가들을 처음 만나 서먹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내가 전업 소설가라고 하자 해외 작가들이 모두 눈을 크게 떴다. 뭐! 풀타임 라이터! 베스트셀러 작가시군요! 우와, 대단하다!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다들 사연을 들려 달라며 성화였다. 그때는 생각을 못했는데, 내 전업 작가 생활은 분명히 한국 영상산업의 덕을 보고 있다.

 


 

 

솔로몬의 위증 1 미야베 미유키 저/이영미 역 | 문학동네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등교거부 등의 교육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어느 곳보다 폐쇄적이고 기묘한 공간인 학교. 그곳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그들만의 규범과 계급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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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강명(소설가)

기자 출신 소설가. 『한국이 싫어서』,『산 자들』, 『책 한번 써봅시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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