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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그래픽 노블』 장은수 번역가 인터뷰 

그래픽 노블로 만나는 현대 고전 『기억 전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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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은 최초의 예술 장르입니다. 그림을 그려 놓고 이야기를 얹는 것은 동굴 벽화 시절부터 인류가 해 온 행위죠. 그래픽 노블은 꼭 두세 번 읽습니다. 대사 위주로 빠르게 훑어 읽은 후,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장면 연출을 중심으로 봅니다. (2020.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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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0만 부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이자 청소년 필수 고전으로 손꼽히는 『기억 전달자』 의 그래픽 노블이 출간되었다. 『기억 전달자』 는 미국의 대표적인 청소년 소설 작가인 로이스 로리의 뉴베리상 수상작으로 국내에는 2007년에 소개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출산, 직업, 감정 등 모든 것이 완벽히 통제되는 미래 사회를 그림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논쟁거리를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만화상인 아이스너 상을 수상한 P. 크레이그 러셀이 각색과 그림을 맡아 로리의 독창적인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영화, 연극, 그리고 그래픽 노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되고 있는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원작과 그래픽 노블을 모두 옮긴 장은수 번역가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 전달자』 를 더 깊이 느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기억 전달자』 를 번역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 등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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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인 『기억 전달자』  이야기부터 들어 보고 싶습니다.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우선 ‘언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주의적인 작품 속 세계는 ‘기억’을 제거하고, ‘언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어쩌면 ‘언어 강박’이야말로 모든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실체이며 억압 사회의 진짜 모습이기도 하죠. 작가 로이스 로리는 수많은 신조어를 통해 이를 훌륭하게 작품에 구현합니다.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지점도 이 말들을 어떻게 옮길까 하는 것입니다. ‘Giver’ ‘Receiver of Memory’ ‘Release’ 같은 조어들이 수시로 나옵니다. 흔히 쓰는 말들도 다른 단어로 호칭하죠. ‘comfort object’ 같은 단어가 수시로 튀어나옵니다. 일단 번역했다가 나중에 단어를 고치고, 단어를 고치면 전체 문단을 단어에 맞게 손보고…… 이런 과정을 몇 번씩 되풀이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죠. ‘Giver’ ‘Receiver of Memory’는 라디오 방송에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기억 주는 사람’님!” “기억 받는 사람, 어서 오게.” 이런 대화는 어색하죠. ‘기억 전달자’ ‘기억 보유자’로 쓰니까, 입에 붙는 느낌이었습니다. ‘Release’는 ‘예비군 소집 해제’에서 따와 ‘임무 해제’로 옮겼죠. ‘comfort object’는 동물 인형인데, 조어를 살려서 ‘위안물’로 옮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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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이 지나 그래픽 노블 번역을 다시 맡으셨습니다.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점이 기대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원작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흥미로우셨는지요?  

 

 ‘가능할까?’ 처음 든 느낌은 의심이었죠. 영화의 실패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그래픽 노블은 영화보다 표현 폭이 훨씬 자유로우니까 오히려 작품을 더 풍요롭게 다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들었고요. 이 작품을 옮기며 가장 놀랐던 것은 원작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로이스는 ‘언어의 마법사’ 같은 작가인데 정교한 단어 선택, 간결한 대사, 풍부한 묘사로 독자의 머릿속에 장면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내죠. 단어와 묘사가 없으면 시퀀스 재현에 엄청난 힘이 들 텐데, 영화와 달리 러셀은 제가 소설에서 느꼈던 것을 모두 살려 냈습니다.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컬러 표현입니다. 조너스의 일상은 흑백인데, 러셀은 조너스가 전수받은 기억에, 나중에는 조너스 주변의 풍경에 색감을 입혀서 소설이 가진 정서적 느낌을 적절히 살려냈습니다. 여기에 주목하면서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억 전달자』 에는 다양한 여러 화두가 담겨 있는데요, 번역자로서 작품의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작품의 주인공 조너스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차별도, 계급도, 고통도, 질병도, 다툼도, 혼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삶이 계속되죠. 갈등은 최소화되고 효율은 극대화된 유토피아입니다. 그러나 이 매끄러운 완벽함은 사람들의 ‘다름’, 즉 개성과 차이를 말살함으로써 성립합니다. 완벽한 유토피아는 곧 완벽한 디스토피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디스토피아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 자체가 조너스가 살아가는 사회와 별다른 게 아닙니다. 가령, 수능이야말로 유토피아/디스토피아입니다. 조너스네 마을처럼 수능에도 공정이라는 그럴듯한 합목적성이 있고, 국가에 의해 잘 관리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점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점수를 통해 모두의 인생 진로가 결정되는 유토피아입니다. 동의하시나요? 안 하시겠죠. 한 발만 물러서면 수능은 모두가 점수만 욕망하는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니까요. ‘점수’라는 언어로 모든 것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죠. “늘 같음” 자체, 모두 같은 것을 욕망하는 것 자체가 디스토피아입니다. 작품에 나오듯, ‘사물 너머를 보는 눈’이 없으면, 이 끔찍한 진실을 망각한 채 살게 됩니다. ‘기억 보유자’의 존재는 우리한테 지혜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기시킵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와 다르게 살았다면, 미래에 우리가 다른 삶을 살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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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님이 그래픽 노블에서 손꼽는 장면이 있다면요?


89쪽에서 124쪽까지 ‘기억을 전수받는’ 장면들을 좋아합니다. 삶은 기쁨과 슬픔, 좋음과 나쁨, 즐거움과 쓰라림, 평화와 전쟁, 희망과 절망, 신남과 지루함 등으로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혀 있습니다. 어느 한쪽만 있는 것은 우리 삶의 실체일 수 없습니다. “우리 딸 꽃길만 걸어라.” 이런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사실 조너스네 마을과 같은 세계관이죠.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소박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사실은 완벽한 허위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자갈밭을 어떻게 걸을지 배우지 못한 인간은 사소한 고통에도 금세 쓰러집니다. 중요한 것은 ‘꽃길을 걷는 법’이 아니라 ‘자갈밭을 헤쳐 나가는 힘’이죠. 조너스는 오전에는 고통의 기억을, 오후에 즐거움의 기억을 전수받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슬픈 현실에서도 기쁨을 이룩하고 따스함을 일으켜서 서로를 격려하는 사랑이 있다면, 세상에 고통이 있다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죠. 이 절망을 저 희망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

 

만약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기억 보유자'가 존재한다면, 어떤 감정 혹은 기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것이죠. ‘기억 보유자’의 임무는 본래 사람들을 대신해 인류의 기억 전체를 보유하는 것이니까요. 어떤 기억도 그 자체로 더 소중하고 덜 귀중한 건 없습니다. 모두 ‘더 나은 세상’을 향해서 노력하는 인류의 기억, 즉 역사라는 강물을 함께 이루는 물방울들입니다. 좌절이나 고통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쟁에서 평화의 서사를, 절망에서 희망의 시를 써 나가는 게 최선입니다. ‘더 좋은 삶’ 역시 있습니다. 쓰라림 속에서 즐거움을 이룩하고, 상실 속에서 회복을 일으키고, 지루함 속에서 신남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양자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둘을 하나로 ‘연결’해서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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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이기도 하지만, 민음사 대표를 역임하시고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를 맡고 계신데요, 장르로서 그래픽 노블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래픽 노블은 최초의 예술 장르입니다. 그림을 그려 놓고 이야기를 얹는 것은 동굴 벽화 시절부터 인류가 해 온 행위죠. 그래픽 노블은 꼭 두세 번 읽습니다. 대사 위주로 빠르게 훑어 읽은 후,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장면 연출을 중심으로 봅니다. 작가가 대사와 지문과 장면을 어떻게 하나로 이어서 연출하는지, 면 분할과 색 입힘을 어떻게 특징 있게 하는지 생각합니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찾아내면 아주 즐겁죠. 언어와 그림이 어울리고 헤어지는 긴장을 즐기는 것, 이게 그래픽 노블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기억 전달자』 『멋진 신세계』 , 『시녀 이야기』 를 잇는 SF 명작, 정치와 사회를 비판한 『동물농장』 과 같은 고전에 뒤지지 않을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기를 기대하시는지요?


이 작품을 저는 ‘기억’과 ‘언어’와 ‘표현’에 대한 소설로 봅니다. 이 세 가지야말로 인간성의 정수이고, 전체주의가 작동하는 길목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느 단어를 쓰며,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드러냅니다. 첫 장면에서 조너스가 자기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기억을 떠올려 가면서 단어를 고르는 장면을 떠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또 ‘정직’ 같은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사랑’ 같은 단어가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언어를 섬세히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주의에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전체주의자는 늘 비슷하면 같다고 말하니까요. ‘원숭이’를 ‘백두산’으로 만들지요. 조지 오웰은 이들이 전쟁을 평화라고 외친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모두가 각자 다른 것을 욕망하면서도 문제없이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입니다. 단어를 섬세히 골라 쓰면서 다름을 다르다고 말할 때, 민주주의가 비로소 작동합니다. 좋은 문학은 유토피아를 이루어 주겠다고 주장하는 모든 세력과 싸웁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종교든 말입니다. 『기억 전달자』 는 이러한 문학의 임무를 잘 수행한 작품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억 전달자로이스 로리 원저/P. 크레이그 러셀 그림/장은수 역 | 비룡소
그래픽 노블은 P. 크레이그 러셀의 섬세한 그림을 통해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계에 색깔을 불어넣는 조너스의 여정을 따라간다. 원작의 텍스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압축적이고 간결해진 전개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쉽게 걸음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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