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도, 에세이스트] 2월 우수작 – 명료한 경험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살면서 한 번만 가고 다시는 가지 않은 음식점이 수두룩하다. 먹어봤으니까 됐고, 가봤으니까 됐다는 마음으로 두 번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미련 역시 없다. (2020. 02. 03)

김레바.jpg
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2월호 주제는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살면서 한 번만 가고 다시는 가지 않은 음식점이 수두룩하다. 먹어봤으니까 됐고, 가봤으니까 됐다는 마음으로 두 번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미련 역시 없다. 그런데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뱉지 못해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해버린다. 한번 생긴 인연이면 웬만하면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 그러기 위해 나 역시 또 만나고 싶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 누군가를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만나지면 만나야 하는 거고, 웬만하면 또 만나는 식이었다.


반면에 우리 집 개 래오는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거의 없는 까칠남이다. 까만색에 4kg 정도되는 날씬한 체형의 닥스훈트인 래오는 등뼈가 다 드러나게 마른 채로 길거리를 헤매다가 구조되어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개를 처음 키워보는 순진한 우리 가족은 모든 개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영리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래오는 영리하기만 했다. 산책 중에 혹이라도 귀엽다며 아는 체 하는 모든 사람들은 향해 단전에서 끌어올린 우렁찬 소리로 짖었다. 자연스레 래오를 데리고 다닐 때는 나도 긴장하게 되었다. 사는 곳이 주택이라고 하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라 래오가 오고 한 달쯤 지나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들렸다. 어느 날은 래오와 길을 가는데 아주머니들 무리가 “저 개야. 쬐끄만 게 지나만 가도 짖어대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내가 멈춰서 사과를 하는 동안 래오는 옆에 서서 그 아주머니들을 향해 짖어댔다. 이웃이고 뭐고 다 상관없다는 식의 너의 자세.


귀여운 인형 같은 강아지를 바랐던 일곱 살 딸은 래오의 그런 성품(?)에 처음에는 좀 실망했지만 래오의 성향에도, 주변 이웃들의 반응에도 곧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딸 아이와 래오를 데리고 산책을 가다가 동네 김밥집에 들렸다. 그런데 주인 부부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래오를 보고 반가워하더니 내가 미처 경고하기도 전에 김밥에 넣는 볶은` 당근 한 줄을 들고 래오에게 다가갔다. 순간 놀랐지만 다행히 래오는 짖지 않았다. 당근에 약한 건지 꼬리까지 흔들어대며 좋아하는 걸 보고 당황스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래오를 보며 주인아저씨는 “아고, 예쁘다.” 하며 쓰다듬어주는데 이건 아주 생경한 광경이었다. 포장이 다 된 김밥 값을 내고 나와 걷는데 딸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은 좋은 날이야. 다른 사람이 래오한테 예쁘다고 했잖아.”


아이도 놓치지 않고 본 것이다. 보기 드물게 화목한 래오의 풍경을.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저 김밥집에 다음에 또 갈까?” 아이가 좋다고 답했다. 래오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료하게 두 번째 다시 가고 싶은 음식점이 생겼다. 이 인연에는 좀 부담 없는 미련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레바 김 영화 속 명대사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컨텐츠를 좋아해서 팟캐스트 <미드처방전>을 진행한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yes24.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레바 김(영어 강사)

내향형인데 외향형처럼 회화를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원어민처럼 하려다가 자신감을 더 잃어보았다. 사람들을 응원하는 고치기 힘든 습관이 있다. 2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해 영어와 심리를 접목한 유튜브 채널 '일간 <소울영어>'를 운영하고 있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