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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떨림과 울림』 리커버 기념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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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리에게 지구가 얼마나 특수한지 이야기해 줍니다. (2020.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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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 이 출간 3개월여 만에 옷을 갈아입었다. 『떨림과 울림』 은 삶, 죽음, 존재, 타인, 세계를 ‘물리’라는 과학의 언어로 다시 읽는 방법을 안내한다.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떨림과 울림』 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 교양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상욱 교수는 『떨림과 울림』  리커버 특별판에 부치는 글을 통해 “물리를 다정하게 소개하려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며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독자에게 감사의 떨림을 전하기 위해 특별판의 표지는 떨림 가득한 그림으로 정했다. 독일 작가 데니스 기치의 작품인데, 작가는 나와 동갑이다. 만난 적 없지만 어쩐지 친구같이 다정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그의 떨림이 내게 울림을 주었다고 말해주고 싶다.”_ 『떨림과 울림』 특별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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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떨림과 울림』  리커버를 기념하여 김상욱 교수와 독자들이 서울 통의동 보안스테이에서 만났다. 이날 행사는 50여 명의 독자가 참여한 가운데 강연과 질의응답 순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오후 7시 반, 행사가 시작되고 김겨울 작가의 소개를 받고 등장한 김상욱 교수는 “리커버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자리인 만큼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를 준비했다”며 어릴 적 모습을 화면에 띄우고 강연을 시작했다.

 

 

사진으로 보는 김상욱의 과거와 현재

 

“저는 서울 미아리에서 태어났어요. 돌잔치 때는 연필을 잡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소문난 범생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서 강연하거나 TV 프로그램에 나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판, 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 『4차원의 세계』 , 『양자역학의 세계』 를 보고 물리학에 눈을 떴습니다.

 

물리학자를 꿈꾸며 대학에 진학하고 석,박사과정을 거쳐 마침내 물리학자가 됐지만 김상욱 교수가 접한 물리학의 모습은 예상과 달리 가혹했다. 석사 과정 때 진공을 뽑는 장치 옆에서 찍은 사진을 소개한 그는 “당시에 실험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고, 이런 생활에 지쳐 물리학의 세계를 떠나는 친구들도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박사과정 중에 교환학생으로 간 하버드대에서 높은 환율 때문에 고생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당시에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고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에 유럽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수가 되기 전에 계약직 연구원으로 떠돌아다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독일 연구소에서 일했던 경험이에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는데요. 무언가를 잘해야 또 다른 무언가가 결정되는 시절이었어요. 살기 위해서 물리를 했을 때죠. 이런 시간을 거치고 2004년에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알쓸신잡>으로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린 김상욱 교수는 현재 <금요일 금요일 밤에>, <선을 넘는 녀석들>에 출연 중이다. “예상하지 않았지만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살고 있다”고 소감을 밝힌 그는 마지막으로 예능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을 소개하면서 “현재 과학 예능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스케일’은 인간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이 예술 작품을 직접 가서 보는 이유는 ‘크기’ 때문이다. 김상욱 교수는 데이비트 호크니의 그림, 에펠탑, 일본 오다이바에 있는 건담 프라모델의 사진을 순서대로 보여하면서 ‘스케일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물리학자에게 크다 또는 작다는 의미 없는 이야기에요. 에베레스트산이 큰가요, 작은가요? 지구보다 작죠. 즉, 기준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크기는 의미가 없어요. 물리학에서는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예술품을 감상할 때는 기준이 있어요. 바로 휴먼 스케일입니다.”

 

이어서 또 다른 사진을 화면에 띄우면서 2017년 광주에서 열린 현대 예술가 토마스 사라세노의 ‘행성 그사이의 우리 展’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행성을 표현한 사라세노의 조형물을 소개한 그는 ‘사라세노의 작품을 보며 또 한 번 스케일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흔히 행성이라고 하면 ‘아주 크다’라고 생각하겠지만 행성은 은하, 우주 전체랑 비교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사라세노는 이걸 크게 만들어 놓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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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을 이야기할 때 수성, 금성, 지구, 목성, 토성과 같은 ‘행성’을 빼놓을 수 없다. 지구의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자전 속도는 행성마다 다르므로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하루’의 기준도 달라진다. 수성이 한 번 도는 동안 지구는 59번 도는데 이는 만약 우리가 수성에 산다면 아침에 집을 나선 뒤 20일 이상 학교 또는 직장에 있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목성은 공전주기가 12년이에요. 지구가 태양계를 한 바퀴 돌면 1년인데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면 공전 주기가 길어집니다. 만약 목성에 사는 고3이 수능 있다면 12년 후에 수능 시험을 보는 거예요. 고3이라면 목성에 가기 싫어하겠죠?”

 

인간은 달의 상대적 거리만 알 수 있을 뿐 절대적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달의 크기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다. 김상욱 교수는 드뷔시의 ‘달빛’을 들려주며 예술 작품과 행성으로 설명한 강연, ‘스케일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행성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고 싶은 말은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는 지구에 사니까 하루가 24시간이고 1년이 365일인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과학은 우리에게 지구가 얼마나 특수한지 이야기해 줍니다.”

 

 

김겨울이 묻고 김상욱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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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분간의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은 사전에 독자들이 제출한 질문을 토대로 사회를 맡은 김겨울 작가가 질문하고 김상욱 교수가 답하는 방식으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김겨울: 독자분들께 미리 받은 질문으로 함께 이야기해 볼게요. 강연 내용과 관련 있는 질문이네요. ‘예술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계기가 있나요?’. ‘과학자로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합니다’라고 하셨어요. 


김상욱: 오래되지 않았고요. 동경대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도쿄의 국립 신미술관을 간 적이 있어요. 살바도르 달리 기획전을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예술에 깊이 감동했어요. 나중에 달리 작품을 찾아봤고, 달리가 양자역학과 관련돼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리학의 변화와 서양 철학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그리던 시기가 맞물렸던 거죠. 알고 보니 양자역학 학회와 전시가 같은 시기에 열렸더라고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같은 혁명을 이뤄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현대 미술에 빠졌습니다. 초현실주의가 큰 계기가 됐죠.

 

김겨울: 고전 미술은 잘 안 보시나요?

 

김상욱: 관심이 없었는데 미술관에서 고전 미술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어요. 제가 역사를 좋아하는데요. 역사 속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이 고전 미술이더라고요. 특히 초상화에서 당시 권력자들의 모습이 보여서 흥미로워요. 고전 미술이 역사에서 빠진 부분을 채워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김겨울: 문학에도 관심이 상당하신 것 같은데 문학적인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김상욱: 제가 처음 출판한 책이 있는데요. 그걸 보시면 이런 생각이 안 나실 거예요. (웃음)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다만 인문학자, 예술가랑 대화하면서 많이 다듬어진 거죠. 책을 내고 나면 주변의 반응을 들으면서 노력하기도 했고요.

 

김겨울: 다음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양자역학의 미래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입니다.

 

김상욱: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제를 다셨는데요. 이전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어요. 일단 혁명은 지나고 난 후에 평가하는 거로 생각하고요. 이런 구호를 지나치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공포심을 유발해서 사람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지우고 말씀드릴게요. 양자역학은 변하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부예요. 양자역학 없이 현재의 문명이 설 수 없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이상한 거죠. 양자역학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고 미래에도 그럴 거예요. 다만 새로운 일이 주어질 뿐이죠. ‘양자역학’과 ‘미래’는 양립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김겨울: 많은 분이 궁금해하셨어요. ‘떨림과 울림’이라는 제목을 어떻게 지으셨나요?


김상욱: 이럴 때 멋있게 답을 하고 싶은데요.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원래 전문가한테 맡기는 스타일이에요. 제목을 짓는 건 출판사 고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출판사에서 다섯 개의 후보를 주면서 의견을 구하긴 했는데요. 4개는 비슷하더라고요. 보는 순간 ‘떨림과 울림’이었어요. ‘떨림과 울림’은 물리의 진동과 공명에서 온 거고요. 이공계 수학의 70% 이상이 이 두 가지를 이해하기 위한 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개념이에요.  만약 제목이 진동과 공명이었으면…..(웃음) 책의 취지 자체가 과학을 인문학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는 취지니까 취지에 맞게 지은 거죠.

 

김겨울: 서문도 나중에 쓰셨나요?

 

김상욱: 당시에 <알쓸신잡> 때문에 엄청 바빴는데 출판사가 서문 쓸 시간으로 이틀을 줬어요. 이동하는 KTX에서 썼습니다. 2~3시간 걸린 것 같아요. 떠오르는 대로, ‘이게 최선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이걸 내가 썼나?’ 하면서 감탄했죠.

 

김겨울: 역시 글은 마감이 만들죠(웃음)


김상욱: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이에요. 마감이 있어야 그런 글이 나와요. 다시는 못 끌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겨울: 다음으로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과학 도서 추천해 달라’고 하셨어요.

 

김상욱: 『코스모스』 를 많이 추천하는데요. 단점이 있어요. 오래된 책이거든요. 하지만 인문학의 느낌으로 과학을 가장 잘 소개한 책이라는 장점 때문에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자주 소개합니다. 이보다 더 알고 싶다면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 를 소개하고 싶고요. 특히 앞부분이 아주 좋습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틀’이라는 이야기를 비과학자가 쓴 책인데요. 과학자가 봐도 가슴이 뛰는 글입니다.

 

김겨울: 물리학자를 꿈꾸는 아이와 함께 오신 어머니의 질문이에요. 아이를 위해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김상욱: 지금부터 ‘물리학자가 되겠다’라고 정하지 말고 그냥 물리를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중,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물리는 실제와 다르니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대학에 가서 배우는 물리랑 실제로 물리학자가 돼서 하는 물리가 또 달라요. 그러니까 정규교육이 실망스럽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원하는 걸 찾아서 끝까지 공부하면 좋겠어요. 잘 모르지만 찾아 나가는 게 결국 인생인 것 같아요. 중간에 꿈이 바뀔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실망하지 마세요. 좋아한다는 걸 한다는 기분으로 다른 해야 할 것들도 하면서 살다가 나중에도 물리가 계속 좋으면 물리학자가 되어 있을 거예요.

 

겨울: ‘같이 물리학을 공부한 분들이 이 책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하셨네요.

 

김상욱: 저도 궁금해요. (웃음) 그런데 절대 말을 안 해요. 논문이라면 편하게 이야기할 텐데 이건 책이잖아요. 특히 교양 과학에서는 디테일을 희생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어떤 디테일을 어떻게 희생할 것인가’가 관건인데 이건 완벽히 주관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책에 대해서는 주로 덕담을 하는데 사실 저도 진짜 속마음이 궁금해요. 물론 저도 다른 사람이 쓴 교양 과학서에 관해 이야기한 적은 없습니다. 이야기 안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동료들의 생각이 궁금한 건 사실이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쓴 책이니까 독자들의 생각이 더 중요해요.

 

 

 

 

 


 

 

[예스리커버] 떨림과 울림김상욱 저 | 동아시아
나의 존재를 이루는 것들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죽음을 어떻게 성찰할 수 있을지, 타자와 나의 차이는 무엇인지… 엄밀한 과학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물리학자만이 안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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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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