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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작가가 서점을 가는 이유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김주성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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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도 존중한다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도 줄어들 것입니다. (201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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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북한 작가 김주성이 5년 동안 책을 통해 만난 한국, 한국인, 한국 사회에 대해 쓴 책이다. 또한 그것은 자유, 시민, 민주주의, 정의, 글쓰기에 대한 김주성의 사색이기도 하다. 일본, 북한, 한국이라는 국가 그리고 그 경계에서 때로는 도망치고 또 때로는 정착하고 싶어 했던 디아스포라 김주성은 책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과 세상을 대면하고 대화한 흔적을 이 책에 담았다.

 

김주성은 일본 도쿄에서 출생한 재일조선인 3세다. 어린 시절 또래 일본인 친구들에게 ‘조센징’이라고 놀림당하며 자랐다. 1979년 아버지와 함께 북송선을 타면서 ‘북한 인민’이 됐다. ‘내 나라’라고 생각하고 살러 간 북한이었지만 이번에는 또 ‘쪽발이’, ‘째포(재일교포)’라 불리며 성장기를 지내야 했다. 북한 조선작가동맹의 현직 작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2009년, 지식인으로서 북한의 통치이념과 체제의 한계를 고뇌하다 탈북을 결심, 대한민국의 시민이 됐다. 북한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던 그는 이제 자유인이 되어 서울의 거리를 거닐며 마음 닿는 대로 책을 읽고 독서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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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작가 소개를 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를 만큼 파란만장한 여정을 지나오셨는데요. 그 여정의 끝, 혹은 시작일 수도 있겠네요.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가셨다고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가요?

 

비교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북의 문화 차이는 저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점이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면 보이는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충동도 커지기 마련이죠. 그 결과 저는 책 읽기보다 영화 보기, TV 보기에 빠져 책의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영상 매체를 통해 보고 느낀 사회는 재밌고 편안하기만 했습니다. 쉽게 말해 한 손에는 커피잔, 다른 손에는 과자나 빵을 들고 편하게 누워서 스크린을 보다 보니, 독서 의욕은 사라지고 작가의 본분마저 잊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성신 씨를 만나게 되었고, 평범한 사람이 아닌 작가로서 한국 사회를 다시 한번 살펴보라는 충고를 받게 되었죠. 그게 계기였습니다. 볼거리가 많은 남한에서 굳이 “책을 봐야 해?”라고 안일했던 나의 의식을 깨우쳐준 계기 말이죠. 이후 저는 <경향신문>에 “남한에서 책 읽기”를 연재하면서 한국 사회를 다르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간 계셨던 일본도, 북한도 한국과는 언어, 체제, 문화 등 모든 것이 달랐을 텐데요. 한국 책은 사실상 처음 읽어보는 게 아니었을까요? 여태껏 살아온 한국, 그리고 책으로 바라본 한국, 어떻게 다르던가요?

 

서로 다른 것은 당연했지만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고 초창기에 북한에서도 양주를 마셨다고 했더니 ‘자본주의적 문화요소’는 철저하게 금기시하고 엄하게 통제하는 북한에서 양주가 말이 되느냐며,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비난은 가보지 못하고 가볼 수도 없는 곳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과 교육의 산물일 거라고 이해하고 넘겼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나서야 저 역시 한국 사회를 편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쉽게 말하면 북에서 몰래 매체를 통해 엿봤던 한국 사회를 기준으로 판단했던 것이죠. 한마디로 가려 있던 한국 사회의 이면을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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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내가 우물 밖으로 뛰쳐나와 처음으로 남한 사회를 보았다”는 대목이 그랬고, 남한 사회에도 과거의 아픔과 모순들이 있다는 점을 깨닫는 부분도 그랬고요. 2008년에 한국에 오셨으니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한국인, 한국 사회를 만나 그 속에서 살아오며 김주성 작가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말 그대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망망대해에 뛰어든 셈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드넓은 바닷가에서 쳐다만 보고 뛰어들 생각도 못했죠. 어부가 잡아온 갖가지 물고기를 먹으면서 백사장에 앉아 있었다고나 할까요. 어느 순간 배를 뭇고 용감하게 바다에 뛰어들어보았더니 힘들게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모습도 보였고 호화 유람선에서 향연에 취해 있는 사람도 보였으며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10여 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양극화가 심화되고 진영논리가 강화되면서 온갖 갈라치기와 갈등으로 사회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결국 피해를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힘없는 국민들이더군요. 결국 저는 수없이 만들어진 ‘내편’과 ‘네 편’ 중에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국민의 편이며 대한민국의 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말이죠. 
 
미디어가 만들어낸 탈북자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요. 탈북한 북한 작가의 책이라고 하면 몇 가지 주제가 예상되거든요. 탈북 수기라든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거나. 하지만 이 책은 지금 여기, 한국에 사는 김주성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데요. 어떻게 이런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되셨나요?

 

저는 북한 사람이 북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은 있어도 북한 사람이 남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은 많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거기에 북한 사람에 대한 편견과 관점을 깨고 싶다는 동기도 크게 작용했고요.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지향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남한 사람들이 탈북한 사람들에게 품고 있는 이러저러한 스테레오타입을 깨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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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현직 작가로서 활동하셨습니다. 소설도 쓰셨고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는 아직 변변한 소설 한 편 쓴 적이 없다고 하셨죠. 영화도 봐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하고, 맛집도 찾아다녀야 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도 해야 하고, 밥벌이도 해야 한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살아오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과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를 집어 들게 되었다고 하셨죠. 어떤가요? 북한에서의 글쓰기, 한국에서의 글쓰기. 달리 질문하면 남북의 ‘작가놀음’이 어디서 차이가 나던가요?

 

북에서의 작가놀음은 체제와 우상화를 위한 세뇌교육용 선전선동 작품을 만드는 놀음이었다면, 남한에서의 작가놀음은 개인의 이름도 알리고 중요하게는 사회의 모순도 솔직하게 지적하여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놀음인 것 같아요. 아무튼 북한 작가들은 목줄에 메여 주인이 끌고 다니는 대로만 보고 듣고 느낀다면 남한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 같습니다. 그리고 창작에 대한 보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도 있고요. 물론 북한에도 원고료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죠.

 

책의 띠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나는 책으로 5.18을 배우고, IMF를 겪었고, 종교와 부동산을 만났다”라고요. 그런 한국 사회의 현상들이 몸소 현대사를 겪어온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읽혔을 것 같습니다. 우리를 읽는 낯선 방법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아주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내가 몰랐던 한국의 과거랄까요, 민주주의, 자유, 경제성장 과정의 우여곡절까지. 특히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솔직히 한국은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생활수준이 높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상승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겠죠. 특히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던 IMF가 큰 충격이었어요. 배우인 유아인 씨와 김혜수 씨를 좋아해서 그냥 재미로 <국가부도의 날>을 보다가 당시의 진실이 궁금해지더군요. 결국 환난의 시대를 다룬 안은별의 『IMF 키즈의 생애』 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더군요. 덕분에 한국의 청년들에 대한 선입견도 바로 깨우쳤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국민들의 애국심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죠. 나에게 차례진 행복과 즐거움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북한에서 온 아내에게 그 환난의 시기에 많은 국민이 집에 있던 금을 나라에 냈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랬더니 돌반지를 비롯해서 금으로 만든 것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숨겨놓더라고요. 아내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그런 시기가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책에서 소개해주신 에피소드가 있죠? "김 선생님은 북한 사람처럼 안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이에게 "그런가요? 그럼 남한 사람은 어떻게 생겼습니까?"라고 대답한다고요. 여전히 탈북자, 재일조선인 등 더 넓은 의미의 코리안에 대한 경계나 벽이 높습니다. 미디어가 그분들을 같은 국민으로 보기보다는 차이를 드러내고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인데요. 작가님 책은 그 차이와 오해들을 좁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세요?

 

민주사회에서는 모두에게 생각과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속박을 받을 수도 없고 또 받아서도 안 되는 거죠. 그러니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은 민주 시민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와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도 존중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발전할 것이고 차별과 편견도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사랑과 정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국민의 품격이 곧 대한민국의 품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언어와 피부색이 달라도 다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김주성 저 | 어크로스
“북한에서는 몰랐다가 남한에 와서야 비로소 맛본 ‘자유’의 진미가 때로는 달지만 때로는 쓰기도 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도 책이라는 창문을 열고부터였다. 자유와 인권에 대한 끝없는 모색과 의지와 노력이 이곳을 북한보다 훨씬 나은 나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책을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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