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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7화 : 나는 지금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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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측은 어제까지 한 식구처럼 지내온 노동자들을 서로 불신하고 반목하게 만들었고,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 요구에 대하여 법적으로 가처분신청을 하여 압박하고 있습니다. (201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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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네 여기는 남부 열병합발전소의 굴뚝입니다. 높이는 사십오 미터, 이 굴뚝의 지름은 육 미터구요, 굴뚝 둘레에 있는 이 공간은 일 미터 넓이입니다. 그냥 작은 걸음으로 한 이십 보쯤 될 겁니다. 이 바깥쪽 퍼런 천막은 바람벽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밧줄로 난간에 튼튼히 붙들어 맸습니다. 안에 등산용 일인 텐트를 쳐 두었구요, 침낭과 그 안에 또 담요가 이렇게 있습니다.”

 

진오가 이곳에 올라오게 된 이유와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이야기하려고 하자 김형이 말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나중에 혼자서 셀카로 말하고 찍어.”

 

변호사도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동영상을 올릴 거니까 잘 준비해서 찍으세요.”

 

 “혹시 아냐? 이 동영상 올리면 조진태가 협상하자고 나올지두 모르잖아.”

 

김형이 그렇게 말했고 변호사는 소형 카메라를 삼각대에 끼우고 초점 맞추기며 정지와 진행에 관하여 가르쳐 주었다.

 

 “요즘엔 간단해져서 핸펀으로 찍는 거나 똑같습니다.”

 

그들의 굴뚝 체류시간이 사십 분을 넘기자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사가 입가에 두 손바닥을 모으고 외쳤다.

 

 “내려올 시간 지났습니다. 이젠 내려오시죠.”

 

김형이 아래에다 대답해 주었다.

 

 “알았어요. 지금 내려갑니다.”

 

그가 카메라와 삼각대를 진오에게 넘겨주면서 다시 말했다.

 

 “낼 아침에 식사 배낭 올라오면 넣어서 내려 보내.”

 

의사와 변호사가 진오와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운동 계속하시구요,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드세요.”

 

 “저희도 회사 측에 계속 협의할 것을 촉구 중입니다.”

 

세 사람이 차례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진오는 난간에 서서 그들이 굴뚝 아래 지상에 내려설 때까지 지켜보다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에게 청와대 앞에 도착한 오체투지 일행의 사진들이 휴대전화로 전송되어 왔다. 진오는 삼각대 위의 카메라를 보면서 몇 마디의 말들을 준비해 보았다.

 

 “우리들이 길게는 이십여 년에서 십 년씩 일해 오던 공장이 매각되던 2006년부터 5년동안 싸워서 간신히 고용, 노동조합, 단체협약이라는 3승계를 조건으로 새로운 회사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헐값에 이 공장을 사들인 조진태 회장 측은 적자를 이유로 노동자 전원을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사측의 권유에 응한 노동자들 중심으로 어용노조를 만들었습니다. 권고사직과 희망퇴직을 하고나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거죠. 비정규직을 조건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각자 위로금과 퇴직금을 받고 어용 노조지회를 만들어 우리 노조가 승계한 세 가지 조건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이들 새로운 경영진은 처음부터 노조파괴와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그리고 공장 청산을 목표로 삼고 구매액의 배를 남겨먹는 매각처분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동한지 겨우 일 년 육 개월 만에 공장 청산을 하려는 것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자본 측은 어제까지 한 식구처럼 지내온 노동자들을 서로 불신하고 반목하게 만들었고,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 요구에 대하여 법적으로 가처분신청을 하여 압박하고 있습니다. 농성자, 그리고 천막, 플래카드, 구호사용 모두를 그 처분 대상으로 하여 수억 원의 배상금을 때렸습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향하여 혼자 중얼거리고 있던 이진오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울컥 하면서 목소리가 막히고 말았다. 온 세상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자본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은행 법원 공권력 모두가 저희들끼리 한통속이 되어 힘 있는 자들의 손을 들어준다. 그는 갑자기 부끄러워서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혹시 아냐? 이 동영상을 올리면 조진태가 협상을 하자고 연락을 해올지 하던 김형의 농담에 어쩐지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사회를 해롭게 하거나 누구의 신세를 지겠다는 게 아니다. 그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해고된 동료들의 일상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임금을 받지 못하고 수년 동안 버티어 온 그들의 나날은 마치 가뭄 속의 나무들처럼 서서히 메말라가고 나뭇잎에서 가지와 뿌리에 이르기까지 병들어가는 중이었다. 단비를 맞는 대신 누군가 가끔씩 바가지에 퍼다 나무 밑동에 부어주는 물로 몇 년을 견디어 온 것이었다.

 

저녁에 오체투지를 마친 사람들과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다시 공장 뒤 공터에 모여들어 삼백일 기념 문화제의 마무리를 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이진오를 격려하는 구화와 함성을 외쳤고 진오도 화답하여 짧은 연설을 했다. 저녁밥이 올라오고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곧 어둠이 찾아왔다. 바람이 차갑기는 했지만 역시 봄밤이어서 한겨울처럼 살을 에는듯하던 냉기는 사라졌다. 그는 난간을 한 번에 스물 댓 걸음씩 백 번을 헤아리며 걸었다. 온몸을 쓰는 셋 동작은 겨울 동안 하지 않고 있어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는 오늘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 지퍼를 올리지 않은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오늘 수고가 많았구나.”

 

어느새 할머니 신금이가 와서 머리맡에 앉았다.

 

 “할머니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언제 얘기 말이냐?”

 

 “철도관사에 살았다면서요? 울아부지 학교에 가던 무렵인가요?”

 

 “아니야 우리가 그리루 간 게 중일전쟁 나고 이듬해였나 그럴 거야. 그러니까 느이 아부지 지산이가 다섯 살이었지.”

 

할머니 신금이는 그 해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 가족이 버드나무집을 팔고 철도관사로 옮겨간 것은 이일철이 부산에서 신경까지 잇는 대륙열차의 기관수로 발령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수송시설과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역의 선로와 기관차의 개량에 힘을 기울였다. 경인선은 경성에서 인천을 사십 분에 주파하는 초특급열차가 투입되어 하루에 열세 번의 왕복이 가능해졌다. 철도국은 증기관차의 성능을 개량하여 열 시간 이상 소요되던 경성 부산 간을 8시간으로, 12시간 소요되던 경성 신의주 간을 8시간 54분으로 단축하려고 시험운전을 계속했고 드디어 달성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과 만주를 잇는 대륙철도의 궁극적 목표는 부산 안동 간을 16시간에, 그리고 동경 신경 간을 72시간에 주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일철이 야마구치의 기관조수로 화물차를 몰던 무렵에 부산 신경 사이에 직통 급행열차 히카리 호가 등장했고, 부산 봉천 사이에는 노조미 호가 등장하여 일본 동경에서 신경 사이의 소요시간을 12시간이나 단축했다. 함경도 두만강 방향으로는 경성에서 선봉 웅기까지 직통 여객열차와 경성 청진 사이에 직통 화물열차가 운행 되었다. 또한 부산 경성 사이를 6시간 45분에 주파하는 아카츠키 호가 등장했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새로이 부산 북경 사이를 38시간 45분에 주파하는 직통 급행열차가 운행되었다. 일본의 철도당국이 이처럼 열차의 속력 증가에 매진했던 것은 일본, 조선, 만주, 중국의 시간적 거리를 최대한 좁힘으로써 조선과 중국대륙을 일본에 강고하게 편입시키려는 것이었다.

 

일철은 부산에서 신경까지 가는 직통급행열차 히카리 호의 기관수로 발령 받았다. 사실 이 노선의 기관수와 기관차는 삼교대로 운행되었다. 경부선 조와 경의선 조, 그리고 안동선 조, 각각 3인씩 9명이 감당했다. 맞교대로 정원의 배가 되는 18명이 이 노선을 감당했는데 전쟁 전에는 그들 중에 겨우 두 명이 조선인이었다.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일본인이 10명이라면 조선인은 8명이 되었고 일제 말이 되면 반 수 이상이 조선인 철도원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수송에서 여객보다 더 시급한 군수물자를 나르는 화물차의 운행이 증가하고 수많은 조선인 조수들이 기관수로 임명되었다. 많은 일본인 철도원들은 군대의 하사관이나 장교로 징집되었던 것이다.

 

이철이가 일년 반의 징역을 받고 감옥에 가고 한여옥이 만주로 떠나고 나서 그 이듬해 연말 즈음에 막음이 고모네는 샛말 옛집을 떠나게 되었다. 어느 날 막음이 고모가 아침 일찍 신금이를 찾아왔다. 

 

 “지산이 에미야 문 좀 열어라!”

 

신금이는 아침부터 고모가 웬일인가 하여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을 끌고 달려 나가 문을 열었더니 막음이 고모가 옷깃에 모피가 달린 처음 보는 외투를 입고 보퉁이 하나를 들고 서있었다. 처음 보는 고모의 털외투 차림에 눈이 휘둥그레해진 조카며느리 금이는 언젠가 태주점을 보는 할미에게 갔다가 막음이 고모가 수만 리 타관에 나가 살 팔자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 만주에라두 가는 거유?”

 

신금이가 그랬더니 막음이 고모는 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에그머니 놀래라! 참 신통방통하기두 하다. 왜 자리 깔구 점집을 열지 않나 몰라.”

 

금이는 자기도 얼결에 그렇게 말해놓고는 고모가 놀라는 내색을 하여 더 이상 다급하게 묻지 않고 이실직고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만주로 출장 갔던 강 대목이 어제 돌아왔구나.”

 

양평정에 영단주택 오백 채를 건설하는데 백 채 하청을 맡았던 허 사장이 일본 본사의 전무와 함께 출장을 갔던 터였다. 만주에도 조일 이주민의 영단주택을 짓는다고 하더니 드디어 공사계약이 이루어져 솔가하여 만주로 이사를 간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그녀는 단숨에 말하였다.

 

 “그래 어디루 간답디까?”

 

 “어디긴 어디야, 신경이지.”

 

 “어머나! 만리 타관이라더니……”

 

 “거긴 어마어마한 도시 대처라구 하더구먼. 거시기니 머시냐, 경성은 거기 비하면 촌이라구 하던데 뭘.”

 

막음이 고모가 한바탕 늘어놓고 나서 보퉁이를 끌렀다. 안에는 사슴뿔 하나와 손바닥만한 버섯이며 검은 석이버섯 등속이 들어있었다.

 

 “이게 선물 받은 거라는데 모두 그쪽의 머시냐 특산물이라든데. 녹용 한 쌍인데 내가 하나 뺏어왔지. 오라버니 쇳가루 자셔서 잔기침 하시잖아. 해소 기침에 특효가 거시기니 녹용이라구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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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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