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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펼쳐지는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세계

『방콕』 김기창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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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고통이 계속되는 이유는 그러한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 그 누군가의 고통에 눈 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면서 눈을 감지 않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 생겼어요.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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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에서 고독사 문제를 다루며 강렬하게 데뷔한 김기창 저자가 신작 장편소설  『방콕』  과 함께 돌아왔다. 김기창식 하드보일드 문체를 기억하는 독자에게 이번 소설은 반가운 소식이다.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누아르적 세계관, 건조하고 냉소적인 하드보일드 문체는 악의 조건을 실감나게 그린다.

 

방콕의 뜻은 천사들의 도시다. 소설의 주된 무대이기도 한 방콕은 휴양과 향락의 도시다. 그러나 소설이 조명을 비추는 방콕은 천국이 아니다. 생명과 권리는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소비재이며 돈만 있으면 무엇도 가질 수 있고 또 버릴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이제 김기창 저자가 보여주는 뜨겁고 혼란스러운 사투를 그리는 ‘방콕’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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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발표하는 두 번째 소설입니다. 두 번째 소설인 만큼 출간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장편소설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깨달은 느낌이에요. 저에게 지난 5년은 단지 두 편의 장편소설을 쓴 시간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요. 그중 뒤에 쓴 장편소설이 먼저 발표된 것인데, 물리적 시간의 공백과는 달리 ‘반타작’(?)을 했다는 만족감이 있어요. (웃음) 그리고 먼저 쓴 장편소설을 부지런히 수정해야겠다는 의욕도 더 생겼어요.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단편 연작도 쓰고 있는 중인데 가능하면 겨울이 가기 전에 1차 원고를 마무리하고 싶어졌어요.


첫 번째 소설이 『모나코』  였는데 두 번째 소설은  『방콕』  입니다. 작품을 떠올릴 때 장소에서 모티프를 얻으시는 편인가요? 작가님에게 ‘장소’가 갖는 의미가 각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스스로를, 내면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한계가 있는 소설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작가들보다 잘할 자신이 없어요. 그리고 이에 천착하는 소설이 많아서 피하고 싶기도 하고. 제가 원하는 건 외적인 것에 대한 시각적 묘사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에요. 직접적으로 내리꽂듯 내면을 말해 주는 방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싶어요. 그래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 ‘장소’가 중요해요. 또 한 가지, 어떤 ‘공간’은 말하지 않은 것까지 들려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모나코가 저한테는 그랬고, 방콕도 그런 장소였어요. 수명도 베팅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라와 천사들만 살지 않는 천사들의 도시. (웃음) ‘공간 3부작’의 마지막 장소가 되는 곳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어요.


이번 소설은 방콕과 한국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그야말로 ‘글로벌’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배경뿐만 아니라 인물, 사건의 스케일이 큽니다. 한국인, 미국인, 태국인, 베트남인이 등장하고 이들이 얽히고설키는 관계도 상당히 치밀한데요. 이처럼 ‘다국적’ 이야기를 구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농담으로 친구들에게 가끔 말하는 게, 앞으로 하나 되고 싶은 게 있다면 ‘코즈모폴리턴’이라는 거예요. 김현경 저자의  『사람, 장소, 환대』  에서는 이것을 계급적 측면에서 ‘근대의 거짓 약속’ 중 하나로 여기기도 하지만, ‘세계시민’이라는 정체성은 국가와 민족 같은 강한 울타리 안에서의 사고를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있다 보니 주인공을 한국인으로 한정 짓지 않고, 배경도 한국 이외의 곳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장소의 교차가 주는 서사적 효과가 분명히 있어요. 그것을 잘 활용하고자 했어요.


이 소설을 쓰는 데 영향을 받은 것이 있을까요? 음악이나 책, 영화 등.

 

얼마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7개 장편 소설을 모두 번역한 기념으로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었어요. 2017년에 쓴 글이었는데, 역시나 그에 대한 찬사가 난무하고 있었어요. (웃음)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은 ‘동정 없는 세상’이라는 기본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세계 안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을 지키고 찾아내려 고군분투하는 인물이 등장하죠. 이른바 챈들러 류의 하드보일드 소설들은 세상이 차갑고 건조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쓰인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이렇게까지 엉망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무언가 한참 어긋나고 잘못된 것이 보이지 않느냐고, 그런 질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방콕』  도 그런 의도를 담으려 했어요. 그리고, 소설 쓰면서 반복해서 들었던 음악은 영화 「굿바이 레닌」의 음악감독이기도 한 얀 티에르상의 「Porz Goret」와 『방콕』  에서도 언급한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I Put a Spell On You」입니다.


강유정 평론가는 이 소설을 한마디로 ‘존엄에 대한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방콕은 서로 다른 존엄의 가치가 상충하는 멜팅팟이라고도 했지요. 서로 다른 수준의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 가치관의 충돌을 통해 작가님이 표현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윤리적 선택이든 그렇지 않은 선택이든 그 결과는 예측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본의 아니게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가 형성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존엄’을 기준으로, 소설 속 표현처럼 ‘윤리의 안테나’를 세운 채 모든 말과 행동을 좀 더 섬세하고 신중하게 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물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개인을 윤리의 경계에서 줄타기시키지 않는 더 나은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존엄의 울타리를 인간 이외의 존재들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점점 확대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하나씩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좋았던 순간은 대사를 쓸 때예요. 그럴 때는 소설 속 인물들이 정말 살아 있는 존재처럼, 현실적 존재처럼 느껴져요. 곁에 있는 것 같아요. 말을 걸어주고 싶고, 껴안아 주고 싶고, 욕하고 싶어져요. 대사를 잘 쓰려고 신경을 많이 써요. 좋아하는 작가들도 레이먼드 챈들러를 포함해 대사를 잘 쓰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힘들었던 순간은 소설의 리듬과 삶의 리듬이 어긋날 때예요. 장편소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그 리듬을 일치시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현실에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 아프고 슬픈 순간들이 소설 속 순간과 맞지 않을 때, 문장이 헛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럴 때는 소설 분위기에 맞는 음악들 들으며 계속 환기를 시키고자 노력했어요.

 

『방콕』  을 쓰면서 작가님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방콕』  에 등장하는 인물의 말을 빌리면, ‘누군가의 고통이 계속되는 이유는 그러한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 그 누군가의 고통에 눈 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면서 눈을 감지 않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 생겼어요.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자 하는 의지도 커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 더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겠네요. 외적인 변화는 『방콕』  을 쓸 때는 마산에 있었는데, 책이 나온 지금은 서울에 있다는 것이에요. ‘공간’이 바뀌었어요. (웃음)

 

 

* 김기창


197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한양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이런저런 매체에 글을 쓰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다. 2014년 장편소설 『모나코』로 3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 외 저서로는 장편소설 『방콕』이 있다.

 


 

 

방콕김기창 저 | 민음사
한국의 공장주로부터 존엄을 침해당했다 여기는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복수에서 촉발된 고통의 연쇄를 추적한다. 다양한 층위의 권리와 존엄의 문제가 상충하는 사건을 통해 지금 우리가 도달해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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