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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이든 행복이든 너를 감싸게 하라

영화 <뷰티풀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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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자의 이야기는 실화다. 영화 원작은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의 동명 책 『뷰티풀 보이』 와 아들 닉 셰프의 회고록. 책은 출간되자마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데이비드는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다. (2019.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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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보이>의 포스터

 

 

엔딩 자막이 오를 때 찰스 부코스키의 시 <Let It Enfold You>를 낭독하는 ‘티모시 샬라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영화의 우울한 정서 때문에 가라앉아 5분 이상 이어지는 긴 시를 듣는 일은 각별하다. 찰스 부코스키가 누구인가. ‘언더그라운드의 왕’ ‘하층민의 시인’으로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 작가였다. 20세기 뛰어난 문인인 그는 하급 노동자의 일생을 허례허식 없는 단문과 평이한 언어로 그렸고, 도덕에 반하는 파격적인 대목조차도 안티를 넘어 고유의 문체로 인정받는 문제적 삶을 살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하기까지 60권의 소설과 시집, 산문집을 다수 펴냈다. 
 
“평온이든 행복이든 그대를 감싸게 하라/ 나 젊은 시절엔 이런 것들이 한심하고 촌스럽게 느껴졌다./ 난 증오로 가득했고 생각은 꼬여 있었다./ 위태로운 훈육을 받고 자랐고/ 난 화강암처럼 완고했다. (......) 하지만 좋은 순간들이 다시 오면/ 골목길의 싸움 상대처럼 싸워 쫓아내지 않았다./ 날 감싸게 하고 나도 그 안에서 즐겼다./ 그것들에게 어서 오라 환영했다.”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주인공 ‘닉 셰프’는 약물중독자 청년이다. 닉의 아버지 ‘데이비드 셰프’는 스티브 카렐이 연기한다. 두 배우는 <뷰티풀 보이>에서 연기의 불꽃을 피운다. 약물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애끓는 아버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중독 때문에 예술적 재능마저도 속수무책으로 포기하는 아들. 부자를 둘러싼 세계는 암울하다. 그러나 재발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찾아오는 삶의 환희도 있다. 두 사람은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진단할 만큼 망가진 아들을, 아버지는 끝까지 지켜보고 끌어안는다.
 
이 부자의 이야기는 실화다. 영화 원작은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의 동명 책  『뷰티풀 보이』  와 아들 닉 셰프의 회고록. 책은 출간되자마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데이비드는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다. 데이비드는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해서 하루에 약물중독 사망자가 150명에 이르는 미국의 현실을 증언하고 자신의 고뇌를 밝힌다. 공허를 메우기 위해 시작한 약물이 그 가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고백하는 일은 전 세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기적적으로 그의 아들 닉은 8년 동안 약물 복용을 중단한 상태. 하지만 재발의 위기가 언제 찾아올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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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뷰티풀 보이>의 한 장면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는 뮤지션 존 레넌 인터뷰어이기도 했다. 존 레넌이 아들 션을 위해 부른 노래 ‘뷰티풀 보이’는 금세 데이비드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결국 책 제목으로도 썼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아들아”라는 후렴구는 다정하고 명민한 아들이 약물에 취해 괴물이 되어가도 버릴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유효하다.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아픈 청춘을 연기하고자 7킬로그램을 감량했다. 가는 나뭇가지처럼 떨면서 그는 세상을 마주한다. 독서광 청년 닉, 자책하는 닉, 사과하는 부드러운 닉, 세상을 원망하는 황폐한 닉은 티모시 샬라메로 구현되어 관객에게 그 떨림을 전한다. 영화의 플롯이 비교적 단순하고 연출이 다소 성기지만 몰입할 수 있는 건 역시 배우 덕분이다.
 
아들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한 아버지, 충분히 사랑을 표현했다고 믿는 아버지였지만 아들의 가슴에 난 큰 구멍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들 역시 그 구멍의 정체를 몰랐다. 약물을 하면 그 구멍을 마주할 필요가 없어져 좋았던 날들이 블랙홀이 되어 삶을 빨아들이는 것을.
 
그들의 인사말은 “모든 것”이다. “널 향한 내 마음은 모든 거야. 세상 모든 것보다 사랑해”라는 말의 암호나 다름없다. 이혼한 뒤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를 홀로 만나러 가는 공항에서 어린 닉이 시무룩하고 불안해하자 무릎 꿇은 데이비드가 맹세한 인사말이다. “모든 것”에는 손을 놓지 않는다는 다짐도 담겨 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잡은 손은 놓지 않으리란 강력한 주문이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모든 것”을 건다. 산 사람을 애도할 수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기에.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그러나 아들에게 모든 것을 거는 아버지의 마음은 변함없다. 많이 슬프고 강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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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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