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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Shift : 맞벌이 여성의 가사와 육아

<월간 채널예스>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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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몸과 머리가 영혼이 익히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번역을 더 고심했는지도 모른다. (201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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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즈음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만나는 이웃과 인사를 했다. “퇴근하시나 봐요.” 중학교 교사로 우리 딸과 같은 학년인 아들과 대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분이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싶었는지 그녀는 불쑥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으면 좋겠어요. 다들 밖에서 저녁 먹고 오면 좋겠어요.” 나는 안다는 의미로 웃고 나서 먼저 내리며 생각했다. ‘저 엄마도 세컨드 시프트(second shift)가 어지간히 싫으신 거구나.’ 물론 자녀들이 어렸을 때처럼 헐레벌떡 전전긍긍하진 않겠지만 퇴근 후 조용한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 오죽할까.  “second shift” 는 버클리대 사회학과 교수 엘리 러셀 혹실드가 1989년에 출간한 책의 제목으로 직장에서 임금 노동을 하고 집에서는 가사와 육아를 거의 도맡는 맞벌이 주부들의 현실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나는 페미니즘 책을 다수 번역하며 이 용어를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은 만났다. 워킹맘들의 가사 노동 육아 노동을 이야기할 때 저자들은 어김없이 세컨드 시프트를 사용했고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마음에 차는 역어를 찾지 못해 원문을 중얼거린다.


shift는 교대제 근로에서의 근무를 뜻하고 병원처럼 2교대나 3교대를 하는 직장에서 shift가 나온다면 주간근무나 야간근무라고 번역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 여성의 가사와 육아를 말하고자 할 때 2교대 근무, 두 번째 근무라고 번역하면 독자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직장에서 퇴근하면서 씁쓸한 얼굴로 “나 집으로 출근할게.”라고 말한다던 워킹맘들을 떠올렸고, 두 번째 출근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또 하나의 직장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지만 출근이나 근무나 직장은 임금 노동을 연상시키고 집안일과 육아는 무임금 노동이다. 두 번째 일터라고 할까. 쉼터 아닌 일터라고 할까. 그렇다. 맘카페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찾아보니 일의 연장선, 퇴근 후 출근, 집으로 출근 등이 있었다.  『집으로 출근』  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와 있긴 한데 아빠 육아에 관한 책이다.

어쩌면 내 몸과 머리가 영혼이 익히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번역을 더 고심했는지도 모른다.


마감이 닥쳐 점심도 거르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일하다 카페와 작업실을 나와 집으로 향할 때 한번이라도 마음이 편안했던 적이 있었던가? 왜 그렇게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을까? 냉장고 사정을 떠올리고 부족한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면서 한숨 쉰 적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이런 나에게 누가 진수성찬을 차려줘도 부족하건만 나는 생선을 굽고 찌개를 끓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무엇보다 남편보다 수입이 적었으므로 가사 노동을 90프로 때로는 100프로를 전담해왔다. 신혼 때부터 이 문제로 싸우기와 체념하기를 오가다 아이가 크면서 부담이 줄고 남편이 주말 저녁 식사를 책임지게 되면서 당분간은 휴전 상태다. 그러나 수입의 비율로 비교했을 때도 우리 가정의 가사 분담 비율은 부당하며 난 오늘도 음식물 쓰레기봉투의 끈을 묶으며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저녁만 되면 밥하기 싫은 주부를 주인공으로 한 대서사시의 한 연을 완성한다.


나는 앨리 러셀 혹실드의 대표작  『감정 노동』  은 번역되었지만 『Second Shift』는 번역이 되지 않은 줄 알았다가 이미 오래 전에 번역 출간이 되었다는 걸 발견하고 환호했다.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표지로 말이다. 번역가는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해 황급히 넘겨보니 double shifts는 곱빼기 근무로, second shift는 제 2의 근무로 번역되어 있었다. 그러나 번역어를 참고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은 충격적으로 흥미진진했다. 거의 3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왜 여전히 시의적절하고 통렬하다는 평을 듣는지 바로 이해했다. 저자는 여섯 살 이하의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정을 방문 관찰하고 심층 인터뷰를 했는데 우리 집, 윗집, 아니 한국의 모든 맞벌이 가정의 풍경과 정확히 일치했다. 특히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회와 배우자를 향한 여성의 대응 방식과 그 밑바탕에 깔린 심리의 분석이 너무나 날카로워 소파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을 정도였다.   

 

혹실드 교수가 나를 인터뷰했다면 어떻게 해석했을까? 난 이 책을 US 오픈 페더러 경기를 보고 졸고 SNS을 하는 도중 틈틈이 읽고 있었는데 아마 이렇게 해석했겠지.  


“경기도에 사는 중산층 맞벌이 가정의 N 프리랜서는 가사 분담 문제로 남편과 갈등을 빚었으나 만족스러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마음껏 보면서 게을러지는 전략을 사용했다.”


다양하고도 전형적인 맞벌이 부부들의 사례를 통해 나의 가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이 책이 새로운 제목과 표지를 입고 나왔으면 좋겠다. 번역은 그대로 두고 제목만 바꾸면 될 텐데. 세컨드 시프트 세컨드 시프트...


내 책도 아닌데 혼자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감정 노동앨리 러셀 혹실드 저 | 이매진
감정노동을 이론적으로 함께 고찰하고 있으며, 감정노동자와 그 결과물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감정 그 자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상품화된 감정과 그렇지 않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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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노지양(번역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와 EBS에서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나쁜 페미니스트》, 《위험한 공주들》, 《마음에게 말 걸기》, 《스틸 미싱》, 《베를린을 그리다》, 《나는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했다》 등 6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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