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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50화 : 누구나 노력하면 일본인이 될 수 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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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나 마차를 탈 때에 차부 마부의 언행을 보면 이상했다. 서투른 중국어로 행선지를 말하면 반말지거리로 대충 대답하고는 말을 몰았다.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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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자기가 아무리 변명하려 하여도 아우는 이미 그를 믿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형은 아우가 울다가 잠든 사이에 살그머니 잠자리를 빠져 나와 부자 상인들이 묵는다는 여관 골목으로 갔다. 깊은 밤이 되어 주위가 고요해지고 모두들 잠들었을 무렵에 형은 몰래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방 저 방으로 다니다가 잠기지 않은 어느 방문을 발견하고 몰래 기어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벽에 걸린 외투를 더듬었다.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가죽지갑을 꺼내어 방문을 나서려는 바로 그때에 잠들었던 사람이 인기척에 깨어났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달려 나가 복도를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지갑을 훔쳐가려던 도둑을 잡은 것이다. 한밤중에 소란이 일어났고 중국인 경찰이 달려왔다. 아침이 되어 사정이 알려지자 장터가 떠들썩해졌다. 형은 도시에 있는 본서로 넘어가기 전에 아우를 만나야 한다고 애걸했다. 어느 장터 아주머니가 가엾게 여기고 아우를 데리고 왔을 때 형은 포승에 묶여 자동차에 타기 직전이었다.

 

 “형 왜 그런 짓을 했어?”

 

 “네가 십 원짜리를 만져보게 해달라고 그랬잖아.”

 

 “형을 믿지 못한 내 잘못이야. 아저씨 제 잘못이에요. 저도 잡아가 주세요.”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그제야 앞뒤 사정을 헤아리고 눈물바람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아우가 형을 떠나 보내며 노래한다. 서막이 그렇게 막을 내린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형은 이제는 늠름한 청년이다. 몸집도 탄탄하고 근육도 알맞게 붙은 수말 같은 남아였다. 그의 성을 ‘박’이라고 하자. 박은 이제는 대도시에서 사업가로 성장해 있었다. 그는 절도죄로 형무소에 갔는데 소년원이 따로 없던 시절이어서 어른 수감자들의 잔심부름이나 하면서 팔 개월을 복역했다. 박 소년 외에도 소년수들이 십여 명 있어서 밤에는 함께 모여서 자고 낮에는 옥사나 간수들의 사무실 등지에 배치 받아 청소, 배달, 잡역 등을 해냈다.

 

박은 처음 한 달 동안은 날마다 거리에 떼어놓고 온 아우 걱정으로 애가 달아 앉기만 하면 눈물을 흘렸고, 그래서 별명이 울보가 되었다. 그가 배치 받아 출입하는 감방 중에 경제범들의 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박 소년은 중국인 첸 씨를 알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간수나 죄수들 모두 박을 부를 때 ‘어이 울보야’ 했지만 첸 씨는 어떻게 그의 성을 알았는지 ‘포준’이라고 불렀다. 그게 박군이란 말이라고 누군가 조선 사람이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박은 첸 씨의 부탁이라면 열심히 심부름을 해주었다. 중국어는 밖에서도 몇 마디씩 배운 적이 있는데다 중국 사람들 틈에 몇 달씩 살다 보니까 점점 늘어서 박 소년은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었다.

 

첸 씨는 목축농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그도 가난한 농가에 태어나 굶주리며 자랐는데 겨울이면 마을 부근에 들개가 무리지어 몰려다니는 것을 보고 저놈을 잡아먹으면 온 식구가 굶주림을 면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덫을 놓자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잘도 빠져 나가거나 개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차츰 덫 만드는 기술이 늘고 어떤 미끼를 써야 효과적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들개란 세구라고 부르는 만주견인데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재빨라서 사람은 물론 짐승도 따를 수가 없고 저희끼리 협동도 잘하여 토끼나 사슴 때로는 멧돼지까지 몰아서 잡기도 하였다. 만주 지방에서 개를 잡는 것은 그 가죽을 얻고자 함이었다. 겨울이 춥고 길어 방한이 긴요하니 무엇보다도 모피가 필요했다. 개털모자니 개털조끼니 하는 것은 예전부터 이 지방 사람들이 개의 가죽을 방한용으로 썼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아마도 개가 흔하여 손쉽게 얻었다는 얘기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개의 모피가 사람 몸에 가장 알맞았을 것이었다. 바다나 강가에서야 물에 강한 수달피라든가 물범모피를 쓰겠지만 내륙에서는 토끼로는 양에 차지 않으니 차라리 흔한 개털을 썼을 것이다.

 

첸 씨는 개를 한두 마리씩 잡아 식구들의 양식으로 쓰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길러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개가 들어갈 수 있는 판자 울타리를 만들어 위에는 칡넝쿨로 그물을 엮어 덮었다. 서너 마리씩 잡게 되자 그는 목줄에 매어 키우기 시작했고 만주 세구는 강아지를 육 개월만 키우면 교미기가 되어 한 배에 열다섯 마리씩이나 낳았다. 그는 이들을 잡아 고기도 팔고 털가죽을 모아 시장에 내었다. 나중에 질 좋은 털가죽을 얻기 위해서 남방으로부터 중국 삽살개를 몇 마리씩 들여다 번식을 시켜 큰돈을 벌었다.

 

몇 년 사이에 사업 규모가 성장하여 그는 다른 짐승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 군대와 중국 군대 모두가 소가죽이 긴요한 군수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군마는 보병의 필수품이기도 했다. 전국시대 이래로 손 큰 목축업자는 마지막으로 우마를 길러야 큰돈을 벌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는 소 열 마리에 종마 한 쌍으로 시작을 했다. 봉천 외곽에 너른 초지를 빌려서 목축을 시작했고 몇 년이 못 가서 백여 마리의 소와 수십 필의 말을 기르게 되었다.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봉천에 주둔하던 중국군벌 장작림 휘하의 장군 부대에 우마를 납품하기로 했으나 계약 기일을 지키지 못했던 때문이었다.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소가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일정기간 옥살이를 하고 풀려 나가면서 박 소년에게 형기가 끝나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박 소년이 팔 개월 만에 석방되어 예전의 읍내 장터로 달려가니 아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모는 물론 세상에 하나뿐인 형이 사라졌으니 눈먼 아이가 그해 겨울을 혼자 견뎠을 것을 생각하고 박 군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 종일 울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굶주려 헤매다 어느 눈 덮인 들판에서 얼어 죽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년은 기차를 타고 봉천으로 가서 팔십여 리 밖에 있는 첸 씨의 목장까지 걸어서 찾아갔다. 첸 씨는 오래 기다렸다며 박군을 반겨 맞았다. 집에는 부인과 딸이 있었다. 중국군의 북벌 난리 때에 외아들을 잃은 그는 소년을 수양아들로 삼았다. 그리고는 학교에까지 보내주었다. 첸 씨는 박군이 봉천에서 중학교를 나오자 상업전수학교까지 보내 주었다. 상업학교에서는 영어 일본어를 가르쳤고 박은 일본의 신문물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면서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봉천의 일본 영사관에는 협화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어서 일본 또는 조선의 책과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매우 인상적인 글귀를 보게 되었다.

 

 “누구나 노력하면 일본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조선에 새로 부임하던 일본 총독의 담화문 제목이었다. 만주국에서는 종래의 중국어에서 일본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이십대의 박 군은 스스로 자문했다.

 

 “나는 누구인가. 중국인, 조선인, 일본인, 셋 중에 누굴까?”

 

하고 나서 그는 머리를 흔들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만주국 사람이다!”

 

그런데 인력거나 마차를 탈 때에 차부 마부의 언행을 보면 이상했다. 서투른 중국어로 행선지를 말하면 반말지거리로 대충 대답하고는 말을 몰았다. 일본어로 말하면 정말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 일부러 그러는지 퉁명스럽게 중국어로 혼잣말 비슷히 욕을 하고는 입을 내밀고 달려갔다. 어쩌나 보려고 일본말로 호통을 치며 ‘너 지금 뭐라고 말했느냐’고 외치면 그제야 화들짝 놀라 굽신거리며 고분고분해진다. 여기서 일본이 상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태도였다. 한번은 일부러 조선말로 행선지를 말하자 그는 거만하게 고개를 돌리며 중국어로 당당히 말했다.

 

 “너의 발로 걸어가라. 조선인은 태우지 않는다.”

 

박군은 스스로 만주인이라고 중얼거렸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부끄러워졌다. 그는 차츰 더욱 세련된 일본어로 말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사정이 연극 줄거리에 다 나오지는 않는다. 그냥 학교에 다니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연유만 나온다. 일철은 이러한 현지 사정을 나중에 만주 노선을 타는 자기와 같은 조선인 기관조수에게서 들었고, 철도국에서 시행하는 대륙여행 학습 때에 만주의 대도시에서 직접 경험하게 된다. 첸 씨는 박군이 상업학교를 나와 일본어에 능숙해진 것을 알고는 매우 기뻐했다. 이제 거칠고 신용이 떨어지는 군벌 군대보다는 냉정하지만 거래는 합리적으로 하는 일본 군대와 납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박은 조선을 기억하지 못했고 가본적도 없었다. 다만 도회지의 호텔에서 어딘가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듯한 잘 차려 입은 지식층이나 사무직 또는 상사에 근무하는 조선인들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상대편도 이쪽을 아래위로 살핀다. 서로를 경계하는 표정이 복잡해진다. 그들은 일본어로 떠들다가도 그렇게 눈이 마주치면서 복잡한 서로의 표정 속에서 오랫동안 시선에 시달려 왔다는 것을 눈치 챈다. 카페에 저희끼리 있을 적에 거리낌 없던 일본어 대화는 막상 일본인 관광객의 무리가 이곳저곳에 앉게 되면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고 조용해진다.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카페에서 나가버릴 것이다. 박은 어느 날 저녁식사를 끝내고 첸 씨 가족과 차를 마시다가 무심코 말한다.

 

 “만주인은 정말 더러워요. 곳곳마다 문짝도 없는 변소를 좀 보세요. 길거리 아무데서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변 대변을 봐요. 그들에게 위생을 가르쳐야 해요.”

 

아버지 첸씨, 어머니, 누이동생 세 사람이 갑자기 찻잔을 든 채 조용해진다. 첸 씨가 너그럽게 웃으면서 박에게 말한다.

 

 “얘야 우리가 그 만주사람들이란다.”

 

 박은 할말을 찾아서 허공으로 눈길을 돌리고 올려다보다가 간신히 대답한다.

 

 “제가 잘못 말했어요. 그들은 만주인이 아니라 토민입니다. 우리 가족이 진정한 만주인이지요.”

 

가족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첸씨는 말없이 웃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만주인을 가르쳐야 하고 일본인은 조선 사람인 너를 가르쳤나 보다.”

 

그러나 첸씨가 사려는 깊었으나 그 정도로 세심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은 봉천시의 호텔을 드나들었고 지배인으로부터 일본군 경리장교들을 소개 받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여급들이 시중 들어주는 카페로 초대하여 술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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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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