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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프트웨어 제품팀을 구성하는 방법

더 이상 예쁜 쓰레기는 만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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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위해서 다양한 기능을 넣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위해 만든 기능이다. 사용자의 마음을 헤아리자.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꾼다. (2019. 09. 16)

얼마 전, 어느 마케터의 아이디어를 깊이 들었다. 그는 작년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구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꽤 많은 시도를 했다. 고객 인터뷰를 수십 명이나 했고,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프로토타입도 만들어 보여줬다. 굉장히 열정적인 모습에 큰 호감이 생겼다. 특히,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이 마음에 들었다. 돕고 싶어졌다.

 

제품 개발 경험이 없어 아쉬움이 있었고, 기능이 너무 많았다. 직접 만들 기술력도 없었고, 고객군이 너무 다양했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전달했다. ▲조금 더 본질에 집중할 것 ▲제품을 만들기 전 PPT로 검증할 것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말 것.

 

좋은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전달했고, 앞으로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 내가 창업한 <도밍고컴퍼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날 말했던 내 조언을 얼마나 지키며 일했을까? 내가 내 조언을 창업 시절 들었더라면. 아니, 수 없이 들었던 그 이야기를 믿었더라면,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이 돼 있을까?

 

HP, 이베이 등 세계 최고 기업에서 일하며 제품 관리 분야를 선도해온 마티 케이건의 『인스파이어드』  를 읽으며, 내가 만들었던, 내가 만드는, 어느 마케터가 만들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그림1_인스파이어드.JPG
『인스파이어드』

 

 

예쁜 쓰레기

 

IT 업계에는 '예쁜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제품을 예쁘게 만들었지만,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제품. 말 그대로 쓰레기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나는 2011년부터 안드로이드 앱 수십 개를 출시했다. 은행 SI를 주로 했는데, 당시 은행들은 앞 다퉈 다양한 앱을 출시했다. 기능을 무더기로 집어넣어 무거운 앱을 출시하더니, 기능을 다 뺀 간단한 앱을 또 출시했다. 다국어 지원 앱도 별도로 만들었고, 누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게임을 넣기도 했다. 모든 은행 앱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 앱 중 이미 종료된 서비스도 많이 있다. 예쁜 쓰레기였던 것이다.

은행 SI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속했던 회사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앱을 출시했다. 늘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싫어서 주말 등을 활용해 스타트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부분 지금은 사라진 서비스들이다.

 

"제품에 관한 두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다. 첫 번째 진실은, 당신의 아이디어 중 최소 절반 이상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 진실은, 아이디어가 충분히 잠재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더라도 필요한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어 내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 몇 번의 이터레이션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돈 버는 데 필요한 시간(time to money)이라고 한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흔히 듣는 상식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진실은 파레토 법칙을 IT에 적용한 말과 비슷하다. 고객은 실행 시간의 80%를 전체 기능의 20%만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진실은 애자일, 린 스타트업 등 개념과 비슷하다. 조직을 작고, 민첩하게 해서 제품을 빠르고 반복적으로 출시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폭포수 모형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 행동에 녹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마 아는 것과 실제 행동이 같은 문제라면, <도밍고컴퍼니>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품을 만들면서 '예쁜 쓰레기'의 함정에 빠지는 팀을 많이 만났다. 고객을 위해서 다양한 기능을 넣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위해 만든 기능이다. 이들이 가장 쉽게 하는 변명은 '필요할 것 같아서'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느 업계나 쉽지 않지만, 정말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꾸는 것임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제품에 관한 시야가 바뀐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윈도 기본 앱 '메모장'

 

대학교 4학년, 한 학원에서 안드로이드 개발 과정을 듣고 있었다. 대략적인 수업을 진행한 강사가 학생들에게 미션을 내렸다. 윈도 기본 프로그램인 '메모장'을 그대로 만들어보라는 미션이었다.

 

 

그림2_메모장2 (2)-tile.jpg

생각보다 많은 메모장의 기능

 

 

메모장을 자주 사용했음에도 메모장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메모장을 사용하지 않는가? 글쎄, 나는 충분히 메모장을 많이 사용했던 사용자였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윈도 OS 자체도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나는 윈도 OS의 기능을 얼마나 사용했을까? 얼마나 알고 있을까? 눈앞에 있던 모든 것에 눈길이 가게 된 계기였다.

 

메모장으로 충격을 줬던 강사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 다 안드로이드 앱 만들어보겠다고 왔는데, 안드로이드 앱 만 원 이상 돈 주고 사본 사람 손들어봐요."

 

당시 30명에 가까운 학생 중 단 1명만 손을 들었다. 관점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메모장 기본 기능을 보며 개발자 관점을 깨달았고, 내 소비 패턴을 보며 소비자 관점을 깨달았다. 각 관점을 온전히 이해했다기보다는 각 관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예쁜 쓰레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논리다. 각 관점에 빠진 것이다. 제품 개발 관점과 고객 관점은 너무도 다르다. 고객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개발자는 '예쁜 쓰레기'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우리 팀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매우 깊이 깨달았다.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이 아니라면 엔지니어 팀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슬프지만, 나 역시 <도밍고컴퍼니>를 만들며 개발자 관점에 빠져있었다. 단순히 아이디어만 말하는 기획자 출신 대표들보다야, 직접 만들 수 있는 개발자 출신 대표가 훨씬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필드에서도 VC 등 많은 사람이 같은 의견을 주장했다.

 

나는 크게 오해했다. 단순히 개발자가 큰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만들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지, 어떻게 돈을 벌지 등 비즈니스의 기초도 모른 채 그저 기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분야에 능력치를 갖는 것은 한 분야에서 날카로움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팀'으로 일한다.

 

 

팀으로 일한다는 것

 

안드로이드 개발자, 스타트업 대표, 프리랜서 개발자, IT 기자를 거쳐 지금 팀에 합류하기까지 다양한 분야 경험을 쌓았다. 다행인 것은 완전히 헛발질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내가 지금 팀에 합류한 여러 이유 중 '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SI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팀에서 철수한다. 늘 팀이 바뀌는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SI를 선호하는 개발자도 보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 개발자는 SI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SI를 탈출하고 싶었다. 나를 방어해야 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늘 만들어 둬야 하는 그 환경이 싫었다. 꽤 그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 편이었지만,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용병은 지시한 것만 만든다. 미션팀은 진심으로 비전을 믿고 그들의 고객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제품 전담팀은 마치 사내 스타트업처럼 행동하고 느낀다. 그것이 제품팀에 바라는 모습이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나는 제품을 굉장히 아끼는 편이다. SI를 할 때도 철수한 뒤 종종 제품을 사용해보곤 했다. 내 제품이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일 때 그 짜릿함은 글로 표현하기 참 쉽지 않다.

 

 

그림3_CODEF.png

CODEF(//codef.io/#/)

 

 

내가 속한 CODEF(//codef.io/#/) 팀은 미션팀이다. 10명으로 구성된 CODEF 팀은 은행, 핀테크 기업, 공공 기관 등 다양한 기업 사이 데이터를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CODEF API를 활용하면 다른 기관과 제휴 없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CODEF에서는 나를 방어할 필요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 필요도 없다. 제품을 이해하고, 각자 자신의 포지션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팀을 이루면, 그저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으면 된다. CODEF 팀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각 포지션에서 역할을 다한다.

 

"제품팀은 가능하면 같은 장소에서 함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은 팀 구성원들이 바로 옆에 붙어 앉아서 일한다는 것이다. 같은 건물, 심지어 같은 층에 근무하는 것도 부족하다. 서로의 컴퓨터 화면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여야 한다. 같이 앉아서 일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서로 개인적인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역동성이 있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원격 근무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불필요한 회의, 이동 시간 등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는 것에 나 역시 매력을 느꼈다. IT 기자로 일할 땐 그 매력에 푹 빠졌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하지 못하는 많은 일이 있다. 굳이 만나서 할 필요가 없는 일도 있지만, 굳이 만나서 할 필요가 있는 일도 있다. CODEF는 매일 한 공간에서 일하고, 함께 먹는다.

 

 

결국 제품

 

축구를 좋아한다. 작은 축구공 하나를 보고 22명이 그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축구공이 가는 방향이 아닌 축구공이 갈 방향이 보이기 시작할 때 축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이 아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보일 때 제품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고객을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 사람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가치가 생긴다. 좋은 소프트웨어 제품팀을 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품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팀을 꾸리는 것 아닐까?

 

오세용(글 쓰는 감성 개발자)
 
6년간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했다.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도밍고뉴스>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따뜻한 커뮤니티 STEW>에서 함께 공부한다. 

 

//bit.ly/steworkr


 



 

 

인스파이어드마티 케이건 저/황진수 역 | 제이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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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세용(글 쓰는 감성 개발자)

6년간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했다.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도밍고뉴스>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따뜻한 커뮤니티 STEW>에서 함께 공부한다. http://bit.ly/stew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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