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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46화 : 밀정의 종류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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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가산과 가족까지 버리고 목숨을 바쳐 일제와 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의 앞잡이가 되어 몇 푼의 생활비와 작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더욱 많았던 것이다. (2019.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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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최달영은 속으로 여러 가지를 따져보고 궁리해보았다. 한참이나 대답이 없자 모리가 상의 안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지난번 일의 상여금, 이십 원이다. 다음에도 일을 잘하면 공에 따라 상여금을 주겠다.”

 

달영은 돈 이십 원을 받아들자 얼결에 대답해 버렸다.

 

 “옛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한 달에 삼십 원이면 보통학교를 나와서 이십 대 일이나 되는 경쟁을 거쳐 순사 시험에 합격하고 순사보가 되어야만 받는 월급이었다. 뒤에 알았지만 주재소의 조선인 순사 보조원들은 정식 순사보로 발령 받은 자들이 아니었고, 최달영처럼 끄나풀이 되어 활동하며 나이가 들어서 순사보조원이라고 부를 뿐이지 자기와 똑같은 임시 고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진짜 순사보다도 시정에 나가면 조선인들에게 권세가 막강하였다. 이러한 자들을 조선인들은 앞잡이, 끄나풀, 또는 여우라고 불렀고 친일 사회단체의 공개적인 장을 맡아 앞잡이들을 총괄하는 각 기관의 조선인 촉탁들을 꿩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공안기관 용어로 정탐 또는 밀정이라고 칭했다.


한일 합병 직후에 헌병 3천여 명, 경찰 2천 6백여 명, 그리고 헌병보조원 4천 8백여 명에 순사보 3천여 명, 정탐 3천명이었다. 헌병보조원과 순사보도 밀정역할이 위주였으니 정탐과 합치면 1만 8백여 명이고, 헌병과 경찰의 한 사람당 2인의 개인밀정을 합치면 전국적으로 그 수는 어림잡아서 2만 5천여 명이 되었다. 이러한 직임이라도 얻어 보려고 해마다 이십 대 일의 경쟁을 통과했으니 들지 못한 자들까지 잠재적인 앞잡이로 본다면 그 숫자는 수십만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가산과 가족까지 버리고 목숨을 바쳐 일제와 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의 앞잡이가 되어 몇 푼의 생활비와 작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더욱 많았던 것이다.  


밀정의 종류는 대개 네 가지로 분류가 되었다. 첫째는 최달영의 경우처럼 고용밀정이라 하는데 월급이나 상여금에 혹해서 직업적으로 개인이나 기관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 그와 같은 자들은 경찰서 헌병대 특무기관 등에 고용된 밀정과 순사나 헌병의 정보원 노릇을 하는 개인밀정으로 구분된다. 둘째는 어느 사건이나 정보를 위해서 필요한 기간만큼만 밀정질을 하는 임시적인 촉탁밀정이 있었다. 이 경우에도 상여금을 탐내서 하는 예가 대부분이었다. 셋째는 밀고자인데 말하자면 준 밀정이다. 이해관계나 원한 때문에 자발적 능동적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제보자와 구별된다. 제보자는 물으니까 대답한다는 식으로 피동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정보 제공의 행위에 이해관계가 없기 마련이다. 넷째는 순사나 헌병이 수사나 탐문의 필요에 따라 직책으로 밀정질을 하는 경우이다. 민간인 또는 활동가로 변장해서 직접 침투하거나 또는 자기의 개인밀정을 사용해서 간접으로 정보를 입수하기도 한다. 기관에서는 밀정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 밀정을 정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유형 중에서 중심은 어쨌든 고용밀정과 촉탁밀정이었다. 그중에서도 밀정업자라고 부를만한 거물들이 있었다. 이런 부류는 일진회 같은 친일단체의 간부를 역임하거나 독립운동가 중에서 변절한 자들이 총독부 경무국 촉탁이니 일본 외무성 촉탁 따위의 직함까지 받아서 유지나 권력자로 행세했다.


최달영의 활동범위는 영등포 역전 주재소에 속해 있었지만 영등포 구역에만 한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동북으로는 노량진 용산에서 서남쪽으로 부평 인천, 남으로는 관악산 너머 시흥 안양까지 사건에 따라서 출장을 나갔고 잠복 미행 침투 등 근무형태에 따라서 변장을 했다.


처음 일이 년은 모리 형사의 개인 밀정으로 주로 범죄 탐문을 다녔다. 직속상관인 모리 형사의 수사 지시에 따라서 행동하기도 했지만 차츰 경험이 쌓이고 노련해지면서 스스로 먹잇감을 찾아다니면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그는 후배 보조를 데리고 다녔고 그에게 지시하여 도박꾼 회사 조직을 미행하게 하였다. 대개 연평 굴비파시가 시작되는 봄이면 그는 인천 연안부두로 나가서 선주들의 도박이 벌어지는 판을 노렸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시흥이나 김포 고양 같은 경성 주변의 부농들 도박판을 덮쳤다. 회사란 도박으로 전과가 있는 전문 도박꾼들이 특기에 따라 모인 조직 범죄단을 말한다. 기샤가 재빠른 솜씨로 화투장을 바꾸거나 숨기고 상대방에게 맞춤한 패를 주어 판돈을 과감히 걸게 하여 싹쓸이를 했다. 어수룩한 도박꾼인 것처럼 판에 끼어서 부추기며 기샤의 속임수를 돕는 자를 조슈라 하고, 장소를 마련하고 밑천을 대는 자를 슈진이라 하며, 돈 많고 도박을 즐기는 고객들을 모아 오는 자를 오야라고 하였다.


이들은 대개 서너 명에서 많으면 칠팔 명씩 한 구미를 이루었다. 이러한 조직과 방법도 대개는 개화기를 지나고 조선의 갑오잡기나 투전에서 화투로 변하면서 일본 도박꾼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처음에 최달영은 도박판을 덮쳐서 판돈을 압수하고 방면하는 식으로 이득을 보더니 몇 번 해보고 나서는 회사의 오야와 협의를 하게 된다. 즉 밤새도록 도박판이 벌어지고 새벽녘이 되면 판돈이 쌓이기 마련인데 그때쯤에 급습을 하여 꾼들이 따거나 소지한 돈을 모두 압수하고 방면하거나 아니면 달아나게 하고서는 판돈만 먹기도 하였다. 그 대신에 회사의 영업 행위는 보장을 해주었다. 도박꾼과 이들을 단속할 경찰이 한 패가 되는 식이었다. 최달영은 그야말로 실용본위가 되어 모리에게 건수마다 상납을 했다. 삼 년쯤 되어 야마시타 군의 유능함은 경찰 본서에 알려지게 되었고 형사의 개인밀정에서 정식으로 순사 보조로 특채 되었고 고등계로 발령을 받았다. 그것이 재작년의 일이었다.


최달영은 고등계로 온지 채 일 년이 못되어 영등포 사옥동 제사공장의 불온 파업을 사전에 적발 분쇄했다. 영등포 고등계의 사찰 목표는 공장지대의 특성상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저항을 사전에 포착하는 일이었고 그 중에 주의자들을 잡아내는 일이었다. 삼십 년대로 넘어오면서 만주에서는 무장투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었고 농촌과 공장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소작쟁의와 파업이 전국적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최달영은 순사보조였지만 서에서는 그를 조장으로 세 사람의 순사보조를 거느리도록 했다. 최달영의 지휘자는 고등계 과장인 일본인 경부였다.


달영은 본서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야마시타 정탐조는 구역을 나누어 사찰을 하고 나서 저녁에 모여서 정보를 취합하곤 했다. 최달영은 제사공장이 세 군데나 모여 있는 사옥동 현장으로 돌아다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여공들의 눈에 띄기나 하고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 하청공장인 제사공장은 방직공장에 비하면 환경이 열악하여 숙련공들은 나이도 과년하고 임금이 조금 나은 편이어서 양평동 일대에 두세 명씩 어울려 쪽방을 얻어 자취를 하는 여공들이 많았다. 최달영은 이런 동네 어구에 국화빵 좌판을 차렸다. 그가 이전에 국화빵을 한 번이라도 구어 봤을 리가 없었다. 원래는 역전 광장 모퉁이에 국화빵 노점상이 나와 있었다. 국화빵 노점은 경성 문안에서나 더러 보였는데 영등포역이 늘 행인으로 붐비는 곳이라 국화빵 장수는 열흘이 못가서 노가 났다. 어느 날 최달영은 행인이 뜸해질 무렵에 짐 정리를 하며 귀가할 준비를 하던 국화빵 장수에게 다가갔다.

 

 “누구 허가를 받고 여기서 장사를 하는가?”

 

 “옛, 허가라굽쇼? 댁은 뉘십니까?”

 

 “나는 역전 주재소에서 나왔다. 여기서 장사하려면 우리 허가를 받아야지.”

 

 “아이고, 그런 줄 몰랐습니다.”

 

 “따라 와.”

 

장사꾼은 울상을 짓고 리어카를 끌며 야마시타 달영의 뒤를 따라왔다. 그는 우선 책상 앞에 국화빵 장수를 앉혀 놓고 조서를 받는다. 주소 성명 나이를 쓰고 경위를 물어 적어가기 시작한다. 다 쓰고 나서 야마시타 달영이 으름장을 놓았다.

 

 “빵틀을 압수당하고 구류를 살아야 되겠군.”

 

 “하이고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노모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한참이나 고민하는 표정으로 책상 모서리에 펜을 똑똑 두드리고 있던 야마시타는 드디어 말을 꺼냈다.

 

 “요오시, 그럼 이렇게 하지. 내일부터 노점을 열기 전에 여기 와서 내게 국화빵 굽는 기술을 가르쳐 준다. 내가 기술을 다 배우게 되면 자네는 한 달 동안 우리에게 빵틀을 빌려주기로 한다. 그 대신에 기한이 끝나면 자네에게 노점 터를 허가해 줄 것이다.”

 

 “한 달씩이나요? 그러면 우리 식구는 길바닥에 나앉게 됩니다. 아이들은 굶어 죽습니다요.”

 

 “아아, 걱정마라. 한 달 생활비를 줄 것이다.”

 

그는 서슴지 않고 십 원을 꺼내어 내밀었고 국화빵 장수는 지폐를 몇 번이나 뒤집어보고 살펴보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고맙습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요.”

 

 “쌀 두 섬 값이니 충분하겠지.”

 

얼굴에 번진 눈물을 대충 닦고 나서 그보다 서너 살 위로 뵈는 국화빵 장수가 못내 궁금했던지 물었다.

 

 “헌데 순사 나리가 국화빵 장수를 하시렵니까요?”

 

야마시타 달영은 눈을 끔벅하면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도둑놈을 잡으려고 잠복근무하려는 거다.”

 

노점상은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단 사흘 동안에 최달영은 국화빵 굽는 기술을 익혔다. 그는 리어카를 끌고 사옥동과 양평동이 길 하나를 두고 경계가 되어있는 서민 주택가 골목 입구에 국화빵 노점을 차렸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노렸던 대로 행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차츰 늘어나 빵이 구워져 나올 때까지 줄을 서기도 했다. 빵틀은 주물 판이었고 구멍 열 두 개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네 줄로 옴팍하게 눌려 있었다. 주물판 아래는 갈탄 불이 타올랐다. 동그란 구멍은 국화 무늬가 찍혔는데 라드 기름을 붓처럼 생긴 솔에 묻혀 재빨리 구멍에다 차례로 발라준다. 한 손에는 묽은 밀가루 반죽이 들어있는 구리주전자를 들고 구멍 안에 가득 차지 않게 절반쯤 가늠하여 차례로 부어준다. 네 줄의 구멍들을 다 채우면 설탕을 섞은 으깬 팥을 길쭘한 대나무를 절반으로 쪼갠 대롱 같은 것으로 푸욱 떠서, 역시 대나무로 만든 차 숟가락처럼 생긴 것으로 밀가루 부어놓은 구멍 위에 한 점씩 떼어 넣는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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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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