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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거(TENGGER), 세계가 주목한 가족 밴드

자연의 노래를 기록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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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공연 일정으로 서울에 있지만 우리는 한국의 밴드도 아니고 일본의 밴드도 아니다. 어디에 있어도 우리의 정체성은 아웃사이더적이다. (2019. 09. 11)

여행하는 가족, 자연의 소리. 텐거(TENGGER)의 영적인 여정은 세계로부터의 주목을 받았다. 장엄한 산봉우리와 찬란한 바다, 차분히 흐르는 강과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소리를 체화하여 거대한 순환 속 일부가 되는 것이 그들의 소박한 목표다. 한국인 있다(Itta)와 일본인 마르키도, 아들 라아이(Raai)의 텐거는 지금 이 순간도 푸른 지구의 어딘가에서 자연의 노래를 기록하며 무한한 영감을 기록하고 있다.BBC, 스테레오검, 피치포크 등 다양한 해외 매체에서 호평받는 <Spiritual 2> 발매 후 첫 한국 공연을 앞둔 텐거를 서울 을지로의 한 복합 문화공간에서 만났다. 어린이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 낮 공연 이후의 만남이었다. 수줍고도 화목한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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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거(TENGGER). 좌측부터 있다, 라이, 마르키도.

 

 

음악 팬들에게 텐거를 소개해달라.

 

있다 : 음악을 하는 밴드 이전에 '여행하는 가족'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고유의 문화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로컬 뮤지션들과 교류, 현지 공연도 하며 체화된 느낌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피드백을 전달한다.

 

텐거(Tengger)라는 이름은 몽골어로 '경계 없이 큰 하늘'이라는 뜻이다.

 

있다 : 2005년 마르키도와 만나 2인조 밴드 텐(10)으로 활동했다. 있다에서 숫자 1을 가져왔고, 마르키도의 '마르'가 일본어로 원과 윤회의 의미가 있어 '0'을 가져와 텐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이름으로 더욱 확장하고 싶어 여러 이름을 찾다 지금의 단어를 이름으로 삼았다.

 

지금은 공연 일정으로 서울에 있지만 우리는 한국의 밴드도 아니고 일본의 밴드도 아니다. 어디에 있어도 우리의 정체성은 아웃사이더적이다. 그런 경계와 구분 짓기를 없애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주로 지내는 곳은 일본인가.

 

있다 : 텐으로 활동할 땐 집이 없었다. 세계 여러 곳에 투어를 다니고,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는 식으로 지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서 처음 제주도에 3년 정도 머물렀다. 일본 시코쿠 섬 88개 사찰 순례를 마치고 순례길 중간에 오래된 고민가를 하나 마련하여 작업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집을 통해 시코쿠를 방문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레지던스의 기회를 주고 있다. 아이가 올해 학교 갈 나이가 되어 일단은 서울에 살기로 했다. 1학년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에 비하면 서울은 크고 복잡한 대도시다. 그런 차이가 음악에 영향을 주지 않나.

 

있다 : 서울과 자연 속을 오가며 다양한 메시지를 얻는다. 젠트리피케이션, 환경 문제에 대해 더욱 와 닿는다.도시의 삶은 아무래도 자연에 비해 각박하고 또 초조할 텐데.있다 : 마르키도는 시골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집에서 음악 만들어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도인 같이 사시는 분이다. (웃음) 반대로 나는 공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고쿠 갔다 다시 서울로 오면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공연하며 그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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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시코쿠 섬 일대의 88개 사찰을 순례하며 그 공간의 소리를 담아 앨범을 발표했다.

 

있다 : 마르키도의 고향이 시코쿠다. 불교에 관심이 많아 인도도 다녀왔다. 나는 모태 신앙이 카톨릭인데, 순례길에 대해 알고 나서 마르키도에게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두 살짜리 아이를 업고 순례길에 올라 들르는 사찰마다 고유의 소리를 담아 <Minishiko> 앨범을 발매했다.

 

순례길의 소리를 담아 앨범을 만든 이유가 있다면?

 

있다 : 앞서 말씀해주신 대로 스트레스 받고 힘든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가상의 순례를 가능케 해주고 싶었다. 시코쿠 순례길은 1200년의 역사를 지닌 유명한 순례 코스라 일본에선 순례를 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한 오스나후미(お砂踏み)라는 간이 순례소가 있고, 순례길 중간중간에도 그런 장소가 있다. 시코쿠 전역 곳곳에서,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도 '미니 시코쿠 88개소'라는 순례 체험 코스가 있다. 그것이 <Minishiko>의 콘셉트가 되었다.

 

건장한 성인이 순례를 하면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순례길이 험해서 순례 도중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영적인 순례를 꿈꾸지만 현실의 사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저희의 선물이다.

 

<Spiritual 2>의 앨범 커버 역시 시코쿠의 영산 이시즈치 산을 담고 있다.

 

있다 : 일본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다. 높은 산이지만 주위 산봉우리에 가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앨범 커버 모습은 정상에서 봉우리를 촬영한 모습이다. 그러나 산을 '배경'으로 생각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산 자체가 주는 영적인 기운,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상서로운 기운을 담고자 했다.

 

산의 이미지처럼 앨범도 'High', 'Middle', 'Low' 등 수직적 구성이 두드러지는데.

 

있다 : 모두 같은 사운드 소스로 이루어진 곡이다. 산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 크라우트 록 밴드 노이(Neu!)의 <Cassette Music>의 오마쥬다. 워낙 존경하는 뮤지션이라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언급한 대로 <Spiritual> 시리즈는 크라우트 록의 성향이 유독 강한 앨범이기도 하다.

 

있다 : 이 시리즈는 크라우트 록 스타일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크라우트 록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 영미권의 팝 대신 독일에서 우주, 자연, 환경 등 거대한 서사를 소리로 표현하고자 했던 아티스트들의 노력이 저희의 여행하는 정체성과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1과 2의 차이를 두고자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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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것이 2005년이니 올해로 14년 동안 같이 음악을 하고 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있다 : 처음 텐을 시작할 땐 컬래버레이션의 느낌, 즉흥의 느낌이 강했다. 텐거가 된 후 '밴드'가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르키도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있다 : 마르키도가 월드 투어로 서울에 왔을 때 내가 정기적으로 참여하던 '불가사리'라는 공연에서 처음 만났다.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첫눈에 반했다. 2005년 당시 불가사리 공연을 이끌던 사토 유키에 씨가 공연 비자 없이 유료 공연을 한다는 이유로 해외 추방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마르키도와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열렸던 음악 페스티벌을 계기로 텐을 결성했다.

 

텐 활동 이전 마르키도가 했던 음악을 소개해달라.

 

마르키도 :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하여 밴드를 시작했다. 노이즈, 익스페리멘탈, 드론 사운드를 주로 담았다. 하이노 케이지, 매지컬 파워 마코 같은 일본의 유명 아티스트들과도 협업했다.

 

게임 음악의 요소와 더불어 <Spiritual> 시리즈에는 장난감 소리도 포함되어있다.

 

있다 : 불어서 또는 흔들어서 소리 내는 장난감 소리를 넣었다.

 

텐 활동 이전 있다의 음악 세계도 말해달라.

 

있다 : 건반으로 멜로디를 만들고 시를 쓴 다음 노래를 만든다. 어릴 때 성당에 다니면서 미사 반주하고,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을 자연스레 접했다.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든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2002년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는데, 앨범 패키지를 꾸려 게릴라 형식으로 공연을 하고 여러 퍼포먼스 하는 분들과 콜라보레이션하며 음악 커리어를 이어왔다.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미지센터)에서 프리 뮤직 기획할 때도 참여했다. 정태환, 알프레드 하르트, 김대환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했다. 그러면서 사토 유키에의 '불가사리'에 합류하며 익스페리멘탈 씬에 발을 디디게 됐다.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음악을 했다. 이름을 '있다'로 지은 이유가 누구든지 만나고 싶어서였다.

 

음악을 직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다면.

 

있다 : 고3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노래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밴드 꾸려 음악 했지만, 지방에 있었기에 학교 마치고 서울 올라와서 첫 솔로 앨범을 만들었다. 친구 어머니께서 하시는 가게에서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직업으로 한다'는 염두를 두고 시작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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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 텐거의 음악도 분명 달라졌을 텐데.

 

있다 : 아이가 태어나면 제약이 많이 생기지 않나. 그 전에는 무리한 일정도 많이 잡았는데, 시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여러 한계가 있었다. 출산 후 아이를 돌보느라 음악을 그만둔 친구들도 많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어떤 방법으로 계속 음악을 해나갈지를 고민했다.

 

그래서인지 라아이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매 공연마다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있다 : 라아이의 생일날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르키도와 나의 공연 도중 아이가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를 찾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음악을 연주하면 자연스레 무대에 올라와 춤을 추고 장난감 악기를 연주한다. 뮤직비디오는 아이의 성장을 담는 매개체다. 요즘은 욕심이 생겨서 주인공 할 거라고 말한다(웃음).

 

텐거는 여행하는 가족, 노마드적 삶을 지향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음악 시장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자연스레 각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있다 : 우리가 동양인인 건 분명하지 않나. 자연스럽게 묻어난다고 보고 어느 정도는 이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향후 텐거가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형태의 음악일까.

 

있다 : 앞으로 해봐야 알 것 같다. 이 아이를 데리고 계속 서울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시간과 환경에 반응하며 음악을 만들어 갈 것이다.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영감을 받은 장소가 있다면.

 

있다 : <Spiritual 2>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코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시코쿠의 바다, 산을 바라보며 음악을 만들었다. <SEGYE>의 녹음 장소는 을지로 4가 미싱상가 골목에 위치한 대안 공간 Slow Slow Quick Quick이었다. 한창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를 하던 때라 그 정서가 앨범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다. . <Spiritual>은 일본의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을 녹음했고, 을지로의 신도시 아래층에 위치한 신도시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약간의 후반 작업을 거쳤다.

 

이전에도 해외 매체의 주목이 많았지만 이번 앨범은 BBC, 스테레오검, 페이더(Fader) 등 해외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주목이 덜해 아쉽기도 하다.

 

있다 : 어떻게 보도자료를 내고 홍보를 해야 할지 잘 모른다. 밴드캠프에 올린 것이 그나마 홍보라고 생각했다. 보통 다른 밴드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몇 시간 후인 오후 8시, 텐거의 공연이 시작됐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위로 신비로운 소리가 이어지다 끊어지면서, 라아이의 자유로운 몸짓이 어우러지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순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름밤을 수놓은 거대한 자연의 소리와 이를 연주하는 소박한 한 가족의 조화가 바쁜 도시의 하늘에 울려퍼지며,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탄생했다.

 

 

인터뷰 : 김도헌, 황선업

사진 : 김도헌, 텐거(TENGGER)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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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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